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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대통령과 장관임기 함께하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번 내각이 박근혜정부 임기를 함께하는 건 어떨까. 정치적 소모품으로 삼기에는 장관자리가 너무 중요하지 않은가. 장관이 긴 호흡으로 정책을 챙기면 공직사회 기강부터 당장 달라질 것이다.



개발 시대를 살아온 중ㆍ장년층들에게 얼마 전 타계한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경제기획원 장관’이라는 직함이 훨씬 익숙하다. 1969년 박정희 정권에 ‘차출’된 그는 무려 10년 가까이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가 오래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은 남덕우’라고 공공연히 치켜세우며 무한 신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소신과 열정으로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했고, 그 결과는 우리 경제의 든든한 초석 마련으로 이어졌다. 오죽하면 ‘김일성이 내려와 정권을 접수해도 경제기획원 장관은 남덕우’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경제에 ‘남덕우’가 있었다면 과학정책 분야에는 ‘최형섭’이 있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의 요람이자 산실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대 소장을 지내다 1971년 과학기술처 장관에 임명됐다. 이후 7년 넘도록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과학입국’의 토대를 차곡차곡 쌓았다. ‘과학기술 기반 없이는 산업기술 개발은 없다’는 그의 신념은 박 대통령과의 철학과도 일치했다. 퇴임하는 날까지 연구실과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시대 상황과 정치 환경이 달라지면서 남덕우 최형섭 같은 장수 장관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장수는커녕 재임 1년을 넘기기가 빠듯한 게 작금의 장관들 처지다. 국방 외교 법무 문화 산업 재정 복지 등 주요 부처 장관들의 평균 임기는 특히 짧아 노무현정부의 경우 11.4개월로 1년도 채 안 됐다. 그나마 이명박정부 주요 장관들은 평균 16개월로 박정희 정권 말고는 가장 길었다. 그래야 1년 남짓이다. 현행 헌법 아래서는 5년 이상 장관을 하기가 불가능하다지만 ‘업무를 파악할 때가 물러날 때’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곤란하다. 이러니 장관들의 영(令)이 서지 않는 것이다. 부처 장악 능력이 떨어진다느니, 소신 있는 조직관리와 정책 집행이 안 된다느니 하는 지적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박근혜정부가 4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다. 직선제 최다 득표로 화려하게 당선됐지만 인사 난맥으로 정권 출범과정이 그리 순탄치 못했다. 인사 때문에 적지 않은 맘고생을 했으니 새 정부는 인사로 정권의 명운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번 내각이 임기를 같이 하는 것이다. 아예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는 건 또 어떤가.

국면 쇄신용이니, 선거용이니 하며 정치적 소모품으로 삼기에는 장관 자리가 너무 중요하다. 정치 상황에 관계없이 장관들이 국정에만 전념토록 대통령이 바람막이가 돼 준다면 못할 것도 없다. 박 대통령 자신도 지난 대선에서 ‘책임 총리’ ‘책임 장관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가.

장관이 정권과 임기를 함께한다면 당장 공직사회의 분위기부터 달라질 것이다. 장관이 긴 호흡으로 정책을 챙기면 조직의 기강은 자연스레 잡히게 마련이다. 줄서기와 복지부동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의 고질병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무엇보다 장관 후보자를 고르고,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과정에서의 정치ㆍ사회적 소모전도 대거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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