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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아트> ‘10억 작가’ 꼬리표가 버겁다는 스타작가의 고뇌
홍경택 ‘Pen 1’ 홍콩 크리스티경매
9억6800만원 한국작품 최고가경신
유럽 컬렉터 전화 낙찰에 한껏 고무
“작품 안보고 가격만 띄우는건 싫어”



“지난 몇년간 ‘7억원의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앞으론 더하겠네요. 같은 그림이 리세일에서 10억원 가까운 값에 팔렸으니 말이죠. 제 그림이 해외 마켓에서 높은 값에 팔린 건 반가운 일이지만 (작품은 가려진 채) 가격만 논해지는 작가가 되는 건 원치 않아요. 작품값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색색의 볼펜과 색연필이 화폭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처럼 집적된 ‘Pen(펜) 1’이라는 작품이 홍콩 크리스티의 ‘아시아 현대미술경매’(25일)에서 열띤 경합 끝에 663만홍콩달러(한화 약 9억7100만원)에 팔린 작가 홍경택(45)은 의외로 담담했다. 앞으로 ‘10억원 작가’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닐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는 것.

홍경택의 ‘Pen 1’은 작가가 1995~1998년에 그린 ‘Pen’ 시리즈 중 하나. 캔버스 3폭을 이어붙여(259×581㎝), 볼펜과 연필을 터질 듯 배치한 그림은 파워풀한 매력을 선사한다. 지극히 평범한 소재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각적 충만감을 전해주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07년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가 넘는 648만홍콩달러(7억7760만원)에 판매되며 기염을 토했다. 단박에 홍콩 크리스티 한국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대형 화폭 밖으로 원색의 필기도구가 쏟아져 나올 듯한 홍경택의 ‘Pen 1’(259×581㎝ㆍ유화). 집적의 아름다움을 독특한 조형어법으로 치열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당초 3000만원이었으나 국내에선 외면 받았다. 최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9억6800만원에 낙찰되며 최고가를 다시 경신했다.

그런데 이 그림을 7년간 보유해온 외국인 수집가가 경매에 그림을 다시 내놓으며 리세일이 이뤄진 것. 그러자 ‘과연 호황기의 가격이 유지될 것인가’라며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많았다.

홍경택의 ‘Pen 1’은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고가 작품만 따로 모아 열리는 이브닝세일에 포함됐다. 다행히 리세일에서도 반응이 뜨거워, 홍콩 크리스티 한국미술 중 최고가를 다시한 번 경신했다.

“2007년 팔렸던 제 그림이 경매에 다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뒤론 사실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잤어요. 유찰되거나 값이 뚝 떨어지면 엄청 망신이잖아요. 낙찰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죠. 무엇보다 거품이 아니었음이 확인돼 반가웠고요. 앞으로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함을 절감했죠.”

사실 최고가를 두 번이나 경신했지만 홍경택에게 주어지는 소득은 없다. 차액은 온전히 컬렉터 몫이다. 그렇더라도 홍경택은 자신의 작품이 글로벌 아트마켓에서 꾸준히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크리스티 이브닝세일을 지켜본 서진수 강남대 교수(미술시장연구소장)는 “180만홍콩달러에서 경매가 시작된 ‘Pen 1’은 플로어(경매장)와 전화응찰자가 경합을 벌이며 16회의 호가를 거쳐 663만홍콩달러에 전화응찰자에게 낙찰됐다. 한국미술의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결과”라고 분석했다. 홍경택 작품을 구입한 사람은 유럽계 컬렉터로, 전화응찰을 통해 낙찰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호동 토박이인 홍경택은 스타작가가 됐지만 여전히 천호동 뒷골목의 낡은 건물에서 조수들과 밤낮없이 작업 중이다. 그는 말한다.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줄 알지만 정반대다. 무명생활이 무척 길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동생이 모아놓은 알록달록한 펜이 눈에 들어와 미친 듯 그린 게 ‘Pen’ 연작이다. 너무 힘들어 나중엔 탈진할 정도였는데 공모전에도 떨어지고 아무도 사주지 않았다. 지금 9억원이나 하는 ‘Pen 1’은 고작 3000만원이었는데…”라고 했다.

펜 책 등이 무수히 집적된 그의 회화에 대해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주변 집기를 강박적 기하구조 속에 재배열하는 패턴화의 열정, 총천연색의 대폭발 초현실적 형상주의와 팝아트의 재기발랄이 한데 묶였다”고 평했다.

그의 그림은 모 그룹 회장이 수집하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강렬해 볼 수가 없다고 하자 홍경택은 “그럼, 그림 앞에 커튼을 치세요”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그렇다. 그의 그림은 몹시 강렬하고, 또 몹시 가볍다. 그런데 그 가벼움 속에 우리의 삶이,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인 현대인의 고통과 절실함이 녹아들어 있다.

홍경택은 늘 새로운 작업을 갈망한다. 최고가 경신 후 ‘Pen’ 시리즈의 주문이 많지만 책 연작, 펑케스트라(Funkchestra) 등 갖가지 시도를 거듭 중이다. 모노드라마처럼 손(手)을 주제로 한 작품도 선보인 바 있다.

최근 그는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로비에 ‘펑케스트라 인 무브’라는 타이틀의 6채널 영상작업을 설치했다. 사이키델릭한 화폭 중앙에 존 레논, 메릴린 먼로, 백남준 등 유명 인사를 표현한 ‘모뉴먼트’, 꽃과 새를 어우러지게 한 ‘밸류어블’, 화려무쌍한 패션이미지를 다룬 ‘패션쇼’ 시리즈가 화려하게 결합된 참신한 작품으로 이 또한 반응이 매우 뜨겁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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