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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생 토크> “홀딱 벗고, 김세진 다보여 줄 것”
프로배구 제7구단 러시앤캐시 초대사령탑 김세진
스타출신이지만 감독경험 없어
사령탑 제의받고 일주일 고민

신치용 ‘관리’·김성근 ‘믿음’접목

선수로 해설자로도 100점 만점
감독으로 100점 ‘트리플크라운’ 도전



2006년 12월, 21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은퇴식에서 그는 “지도자로 코트에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6년 하고도 4개월 후, 그는 코치도 거치지 않은 채 신생팀 창단 감독으로 깜짝 컴백했다. 1990~2000년대 한국 남자배구를 대표한 ‘월드스타’ 김세진(39). 이달 초 프로배구 제7구단 러시앤캐시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돼 다음 시즌부터 ‘감독님’으로 벤치에 앉는다. 그는 “이렇게 일찍 지도자로 코트에 돌아올 줄 몰랐다”고 몸을 낮췄지만 부임 1주일 만에 코치진과 선수단 구상을 꼼꼼하게 마친 완벽주의자다. “스타 출신 감독이 지도자로 성공하기 힘들다고 하죠? 제가 어떻게 하나 한번 보세요.” 당돌하기까지 한 자신감이 왠지 미더웠다.

▶“난 배구쟁이, 유혹 뿌리치기 어려웠다”=인터뷰한 날도 구단주인 최윤 아프로파이넨셜그룹(브랜드명 러시앤캐시) 회장과 배구 얘기만 하다 새벽까지 자리가 이어졌다고 했다. 최 회장의 부탁은 단 하나, “최대한 끈끈한 열정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최 회장은 16명의 감독 지원자를 다 뿌리치고 지도자 생각도 없던 김세진을 직접 낙점했다. ‘경험’ 대신 ‘가능성과 열정’을 믿은 것이다.

김세진 역시 최 회장의 열정을 믿고 손을 잡았다. “감독 제안 받고 일주일 고민했어요. 그런데 지난 시즌 방송해설하면서 러시앤캐시가 드림식스를 운영하는 모습을 봤잖아요. 그때 보여준 최 회장의 엄청난 배구열정이 제 마음을 움직인 거죠.” 김세진 감독은 솔직했다. “저 사실 돈도 벌 만큼 벌고 있고, 하고 있는 일(사업ㆍ방송ㆍ겸임교수)도 많아요. 다 놓치기 싫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배구쟁이’더라고요. 창단 감독에다 모든 그림을 다 내가 그릴 수 있다는데 그 유혹, 배구인이라면 뿌리치기 어려워요.”

▶“신치용의 관리, 김성근의 믿음”=김세진 감독의 선임 소식에 많은 배구인과 팬들의 반응은 ‘충격 반, 신선함 반’이었다. 김 감독은 “충격이 훨씬 더 컸겠죠?”라며 웃었다. 지도자 경험이 일천한 초보에 슈퍼스타 출신 감독. 기대의 눈길 못지않게 우려의 시선 또한 따갑다. 그는 스타 출신이지만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팀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팀 꾸려지면 옷부터 벗을 겁니다. 홀딱 벗고 선수들에게 다 보여줄 거예요. 감독 혼자 잘났다고 나서면 팀 망가집니다. 선수들 기 살게 만들어주고 대신 훈련 땐 눈물 쏙 빠지게 해야죠. 빠르고 끈적끈적한 팀이 목표예요.”

 
“초보감독에 신생팀이다 보니 처음부터 좋은 성적은 힘들겠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도 할 거에요. 그거 이길 때쯤 아마’김세진 배구‘ 하나 만들어질 겁니다.” 두려움 대신 자신감과 열정으로 무장한 김세진 러시앤캐시 감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러시앤캐시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수많은 제자 중 유독 김세진에게만 “아들같은 선수”라며 애정을 쏟았던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너라면 잘 할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창단 멤버로 들어가 그 팀에서 은퇴했으니 내가 아는 팀은 삼성화재가 전부다. 게다가 대한민국 1등팀 아닌가. 당연히 삼성화재의 장점을 흡수하고 싶다”고 했다. 가장 닮고 싶은 감독의 모습으로 “신치용 감독의 관리, 김성근 감독의 믿음”을 꼽은 김 감독은 “좋은 선배들이 많이 계시지만 이제부턴 경쟁자다. 결국 감독은 외로운 길을 가야한다. 많이 다치기도 할 거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도와준다면 자신있다”고 했다.

▶“빠르고 끈끈한 팀, 선수들이 웃는 팀”=선수로도, 해설자로도 100점 평가를 받은 김세진 감독은 이제 지도자로서 ‘트리플 만점’에 도전한다. 선수시절에도 겉으론 설렁설렁, 쉽게 플레이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김세진은 연습벌레에 완벽주의자다. “성격이 워낙 예민해서” 뭐 하나 대충하는 것이 없었다. 2007년 처음 방송해설을 맡았을 때도 남몰래 전담강사를 고용해 석달간 스피치 훈련을 받기도 했다. “은퇴한 뒤 지갑에 만원 한 장 없어 밖에 못나가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고생한 거에 비하면 앞으로 깨지고 다치더라도 ‘그까짓거’ 하고 넘길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선수들이 코트에서 웃는 모습을 보는 거, 그게 지금으로선 가장 큰 목표에요.”

김세진 감독의 진정한 꿈은 20년 후에 맞춰져 있다. “이제까지 너무 화려하게 살아왔어요. 앞으로도 얼마간은 그러겠죠. 하지만 60세 이후엔 조용히 한국 배구를 지원하며 살고 싶어요. 배구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내 인생의 황금기는 아마 그 때가 될 거예요.”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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