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조경을 바라보는 이순지(42) 대림산업 조경부문 차장의 ‘철학’이다. 고가의 나무나 권위 있는 작가의 조형물보다는 입주민이 직접 가꾸는 정원과 소박한 텃밭,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마당 등을 감상하는 평상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유년시절 부터 조경디자인에 ‘꽂혀’ 20여년 간 조경에 묻혀 생활한 이 차장으로선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이다.
이 차장이 대학에서 조경을 배우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조경이란 그저 주택단지 내에 규격화된 나무를 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경전문가를 찾기 힘들었고 원하는 기업도 많지 않았다. 그가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도시계획, 건축인허가 등 조경분야의 언저리에만 머물렀던 이유다.
그러나 조경에 관한 이 차장의 남다른 시각은 건축, 토목 등 조경에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섭렵한 데서 비롯됐다. 이 뿐 아니다. 조경설계사무소에서 일하던 2000년, 그는 서울대 조경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며 더욱 학구열을 불태웠다. 7년 전 대림산업이 그를 ‘디자인전문가’로 발탁한 것도 그의 열정과 전문가적 식견 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차장은 조경에 인간의 삶이 담겨야 한다고 여긴다. 아파트 단지 내에 ‘감성초화정원’을 만들고 입주민들이 직접 가꿀 텃밭자리를 꼭 만들어놓는 것도 그래서다. 그는 “권위와 인공미를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 그대로를 아파트 단지에도 옮겨 놓고 싶었다”며 “입주민들이 누리는 ‘힐링 공간’을 구현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차장이 생각하는 조경의 방향은 ‘주민 참여형’이다. 입주민들이 단순하게 정원을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아야 진정한 조경이라는 것. 자신들이 가꾸고 싶은 꽃이나 화초를 직접 심어 키우는 방식이다. 최근 유행하는 ‘옥상정원’의 콘셉트와 같은 맥락이다.
이 차장은 “보통 아파트 정원이라고 하면 크고 값비싼 나무를 심어놓는 것만을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입주민들이 직접 관리하며 공동체적 인식을 발휘할 수 있는 커뮤니티형 정원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현재 구상중인 박사 논문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 차장은 “조경 디자인에서 귀족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고 일반인도 참여 가능한 ‘버내큘러 디자인(vernacular design)’을 논문 주제로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공사비에서 조경과 녹지 조성에 드는 비용은 3~5%에 불과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질 경우 해당 주거단지의 가치는 수직상승한다”며 “자연산 노송을 베어다 아파트 단지에 심는다고 조경이 완성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입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조경이 바로 입주민에 의한 커뮤니티형 조경이며, 입주민을 위한 힐링형 조경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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