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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걸리잔 속 와인…창극의 한계 깨고 싶다”
그리스 신화 담은 실험적 창극‘메디아’작곡가 황호준
대사 거의없는 송스루 형식 등
국립창극단 사상 첫 시도 눈길

국악인의 길 이끈건 아버지 황석영
어릴때부터 사물놀이패등 보며 자라



“창극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번 가보는 거죠.”

국립창극단이 오는 22~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올리는 ‘메디아’는 여러모로 실험적인 작품이다. 서구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신화를 담은 창극은 극단 사상 처음이다. 대사가 거의 없이 노래(창)로만 구성된 ‘송스루(Song through)’ 창극도 첫 시도다.

작곡가 황호준(41)은 작품 의뢰를 받은 뒤 한 달 반가량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했다. 국립창극단의 작품으로서 창극 양식의 미래 방향성까지 내보여야 했다. 그만큼 고민이 컸다. 그전까지 창극은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등 우리 고전을 가져다 썼고, 현대 창작극이라 해도 기껏해야 소리꾼 영화 ‘서편제’를 빌려온 정도였다. 이번엔 “우리 판소리 발성으로 소리를 질렀을 때 그리스 신화 속 등장인물의 내적 정서나 심리가 표현될 수 있을까”란 전인미답의 고민이었다.

그는 처음 대본을 받은 지난 2월 한 달은 등장인물의 정서를 내재화하기 위해 대본만 붙들었다. 친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모성애 파괴, 극단적 분노감, 모성을 뛰어넘는 자기정체성과 존재감 등은 춘향전 같은 우리 판소리에는 없는 정서다. 그는 “‘엄마가 애를 어떻게?’란 생각에 너무 우울해져 있으니 천장이 아래로 내려오더라”고 토로했다.

 
창극 ‘메디아’에서 작곡가는 보조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체 소리로 그리스 비극의 감정에 관객을 빠져들게 만드는 지대한 역할이다. 황호준 작곡가는 이번 작품으로 “창극의 한계를 깨고 싶다”고 했다. 
                                                                                                                                                 [박해묵 자/mook@heraldcorp.com]

등장인물 정서 파악 다음에는 음절에 맞춰 말맛과 뉘앙스를 살려야 하는 고민이 뒤따랐다. 그는 지난해 국립오페라단과 함께한 창작오페라 ‘아랑’의 작곡을 할 때와 비교했다. 오페라는 연음과 모음을 주로 써서, 닫히고 센 발음이 많은 우리말로 부르면 맛이 잘 살기 어렵다. 그는 “서양 오케스트라와 성악가가 부르는 ‘아랑’이 와인 잔에 막걸리를 부어 마시는 거라면, ‘메디아’는 이와 반대로 막걸리 잔에 와인을 집어넣는 것”이라며 “그것이 이상하지 않게 보이도록 데코레이션과 장치를 설치하는 작업”이라고 비유했다.

황 작곡가가 ‘막걸리 잔 속 와인’을 완성하기 위해 선택한 데코레이션은 코러스다. 창극으로 치면 도창(노래를 끌어가는 해설자)이다. ‘메디아’에서의 합창은 하나의 선율이 아니라 여러 선율로 성부를 나눠 화음이 되게 부른다. 기존 창극에선 없던 시도다.

황호준은 지난해 오페라 ‘아랑’,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400여편의 곡을 발표해 왔다. 그가 국악인의 길로 들어선 데는 부친인 소설가 황석영의 영향이 컸다.

그는 지금은 광주문예회관으로 바뀐 광주 자택에서 어린 시절 수백 장의 클래식 LP를 듣고, 자택을 드나들던 문인과 사물놀이패 등을 지근거리에서 보며 자랐다. 그는 “1980년대 엄혹한 환경에서 들불야학하던 처녀 총각 영혼 결혼식을 시켜준다고, 옆집 보지 못하게 커튼 치고 굿판하는 것처럼 몰래 식을 올리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초등학교 다니던 때 처음으로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나는 작곡가가 되어야지’”라고 떠올렸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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