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을 만든 작가이자, 오는 6월1일부터 이탈리아 북동부의 유서깊은 도시인 파도바 시(市) 초대로 대규모 작품전을 갖는 조각가 김영원(66, 전 홍익대 미대 교수)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1910-1987)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김영원은 홍익대 대학원에 막 입학했을 무렵, 호암 이병철 회장의 눈에 들었다. 1975년 대학원 조소과 실기실 구석에, 완성되긴 했으나 거의 처박아 놓다시피 했던 그의 석고조각 ‘기다림’을 어느날 찍어간 사진작가가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이병철 회장의 미술품 수집 등을 측면에서 돕던 사람이었다.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소녀를 석고로 빚은 김영원의 조각은 나름대로 문학적인 작품이었다. 함초롬한 정감이 느껴지던 조각이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대학원 1년생이 만든 석고 조각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전국을 다니며 각종 조각 작품을 카메라에 담던 사진작가의 사진을 자세히 훑어본 이병철 회장이 “이 소녀상 썩 좋구먼. 청동으로 만들어달라고 해라”고 지시해 제작한 적이 있다.

김영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약 90cm 남짓한 크기의 석고 상을 청동 주물로 떠서, 시청앞 삼성빌딩 회장실에 설치했다. 그런 다음, 이병철 회장과 마주 앉아 차를 한잔 마시게 됐다. 그 자리에서 이 회장이 소녀상을 로비에도 세우고 싶으니 크기를 키워 한 점 더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달랐다. ‘이 작품은 더 이상 크게 만들면 그 맛이 살지 않는다’며 고사했다”.

삼성 이병철회장,풋내기작가 김영원의 ‘인물조각’에 반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총수이자, 빼어난 안목을 지닌 미술품 컬렉터의 제안이니 수용할 만도 한데, 당시 그는 반골 기질이 만만치 않았던 것. 이후로도 이 회장은 김영원의 작품을 특히 좋아해 몇점 더 사들였다. 단란한 한 가족이 낮잠에 빠져있는 실험적인 조각 ‘오수’도 그 때 이 회장이 고른 작품이다. 김영원은 경기도 용인(현 호암미술관)에 자리잡게 된 이 조각을 커다란 고목나무 아래에 설치하길 원했다. 그런데 직원들은 아빠 엄마와 아기가 공중에 붕 떠있으니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며 화강암 좌대 위에 올려 놓으려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컨셉은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것이 포인트여서 작가는 양보할 수 없었다/

“그 때만 해도 피가 펄펄 끓던 때라 나도 ‘한 성격’ 했다. 참 못 말렸다. 고목나무 앞에 설치해, 멀리서 보면 나무 그늘 아래서 단잠에 빠진 가족을 표현한 한 폭의 풍경화같은 작품이 되었으면 했던 내 조각을 직원들이 안전하게 한다며 화강암 위에 놓으려 해 화를 벌컥냈었다. 결국은 작가인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 잔디밭 위에 공중에 붕 떠있도록 설치됐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김영원은 올여름 파도바 시에서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구상조각의 거장’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ㆍ73)와 함께 오는 8월 20일까지 시청광장및 시립미술관 등에서 2인전을 갖는다. 시의 중심지인 광장 등 무려 다섯 곳에서 열리는 전시에 김영원은 지난 35년간 제작한 ‘중력 무중력’ 등 대표작과 신작 ‘그림자의 그림자’등 30여점을 출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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