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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김학수> 운동선수 등번호의 정치사회적 의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과 똑같은 일본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 도쿄돔에서 등번호 96번을 단 요미우리 유니폼 상의를 입고 시구식 심판을 보는 이벤트를 가졌다. 아베는 이날 ‘미스터 프로야구’로 불리는 강타자로 자이언츠의 9년 연속(1965~1973년) 우승을 이끈 나가시마 시게오(77·長嶋茂雄), 나가시마의 제자로 미·일 양국에서 홈런타자로 명성을 날린 마쓰이 히데키(39·松井秀喜) 두 사람에 대한 국민 영예상 시상식를 치른 뒤 시구식에 참가했다. 아베는 등번호 3번의 나가시마와 등번호 55번의 마쓰이로부터 ‘등번호 96번 아베’라고 쓰인 자이언츠 유니폼을 건네받았다. 등번호 96은 제96대 총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평화 헌법 중에서도 아베가 가장 먼저 고치겠다는 ‘헌법 개정 절차 규정’이 헌법 96조란 점이 화제를 낳았다.

태평양전쟁의 범죄적 사실도 애써 부인하며 각료들을 이끌고 전범자들의 위패가 안치된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 중국은 물론 미국 등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아베 총리가 운동선수의 등번호를 활용해 벌인 요란한 정치적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원래 운동선수의 등번호는 단순한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자체 숫자라는 기호로 사용될 뿐이었다. 굳이 의미를 둔다면 축구에서 10번 공격수처럼 포지션을 구분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프로스포츠가 전문화, 다양화, 세분화돼 선수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등번호를 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등번호는 여러 의미를 띠게 됐고 아베 총리처럼 정치적 퍼포먼스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일거수 일투족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괴물투수’ 류현진은 한화에서 달던 99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99년 한화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던 것을 재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99번을 달고 뛰는데, LA 다저스 스타 투수 출신 매니 라미레스가 썼던 99번을 구단의 특별한 허가를 받아 계속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일부 팬들은 볼을 99마일로 던지고, 99㎏으로 체중을 빼라는 개인적 욕망을 담아 해석하기도 한다.

지난주 미국 프로스포츠 현역 선수로는 사상 처음 동성연애자임을 ‘커밍아웃’한 NBA센터 제이슨 콜린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숫자 98번을 등번호로 달고 코트 안팎을 누비고 다닌다. 오랫동안 34, 35번을 달고 뉴저지 네츠 등 여러 팀을 전전하던 콜린스는 지난해 보스턴 셀틱스에 합류한 뒤, 1998년 게이였던 매튜 세퍼드라는 와이오밍대 학생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총격을 당해 사망한 것을 애도하기 위해 98번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당초 콜린스는 자신의 거주지인 캘리포니아에서 동성혼을 반대하는 8인투표 위원회에 반대하는 뜻에서 8번을 등번호로 고려했다가 자신과 잦은 충돌을 보였던 ‘앙숙’ 안토니에 워커의 번호라는 점 때문에 포기했다고 한다.

운동선수의 등번호까지 여러 생각과 이념을 덧씌우는 행위들을 보면서 순수한 육체적 건강성을 추구하는 영역인 스포츠가 날로 복잡다단해지는 사회적 현실과 시대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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