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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로 간 한식…그 곁엔 그가 있었다
한국음식은 느림과 섞임의 미학이 어우러진 최고의 웰빙푸드…식품한류 이끄는 김재수 aT 사장의 한결같은 우리 음식 사랑
밀가루 사재기 파동·한-중 마늘 파동·기생충 김치 파동·광우병 파동…공직생활은 그야말로 파동의 연속

FTA 꼭 필요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냐…유난히 개방에 취약한 농업분야, 피해 완화해 주는게 정부의 필수 업무

식품산업 발전을 위한 1차 관건은 한국 음식의 세계화…퓨전 통한 현지화가 최선

농업 전통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생산만으로는 살아날 길 없어…새로운 부가가치 창출하는데 집중해야 미래 열려라고




밀가루 사재기 파동, 한ㆍ중 마늘 파동, 광우병 파동, 촛불집회….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의 인생은 ‘파동’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성난 농심(農心) 앞에서 겸손을 배웠고, 촛불집회를 지켜보며 애국심을 다진 김 사장이다. 가족과 휴가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한 ‘빵점’ 가장이지만

국가가 중용하는 이유는 그가 미래를 연구하고 개척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때 농산물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프랑스 음식의 경쟁력을 알기 위해

파리 뒷골목을 수없이 누볐다. 한글로 된 최고(最古) 음식서적인 ‘음식디미방’에 심취하고, 종자(씨앗)와 한국 음식을 연구하면서 우리 식품의 글로벌화를 꿈꿨다.

“한국 음식은 건강식이고 발효 음식이며 요즘 말로 웰빙푸드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곱 가지 무지개색을 더한 최고의 색채미를 가졌죠.”

김 사장은 우리 음식이 맛과 멋, 영양에 현대적 감각까지 더해진다면 세계적인 고급 문화상품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또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음식에 스며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제 공부하는 공무원에서 수출역군으로 변신 중이다. ‘파동 인생’ 김재수의 우리 음식에 대한 예찬은 끊이지 않았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서 남도음식을 보면서 색에 반했다는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김 사장은 우리 음식을 세계적인 식품으로 만드는 데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그를 4월 어느 날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만났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성난 농심, 김재수를 가르치다

“우리가 중국산 마늘의 관세율을 대폭 올렸죠. 그러자 중국은 우리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의 수입을 잠정 중단한다는 보복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간 마늘 분쟁은 2000년 가까스로 타결됐다. 하지만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2003년 1월 이후 연장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농심이 들끓었다.

2002년 경북 의성. 농민 수만명이 모였다. 한ㆍ중 협상장에 없었던 김 사장이었지만 주무국장으로서 농민에게 대책을 알리고자 의성으로 향했다. 정부의 비밀 협상을 규탄하기 위해 몰려든 농민에게 정부 관계자의 등장은 자칫 시위를 더욱 자극할 수도 있었다. 더욱이 마늘 주산지 지역구 의원들까지 다 모였다. 그래도 그는 행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국회의원 한 분이 단상에 올려갔어요. 다음 순서가 저였는데, 흥분한 농민이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졌죠.”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김 사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운이 좋았죠. 내가 농민에게 맞을 자리였는데…”라고 회상했다.

그는 “내가 (협상)한 게 아니라도 내 재임 기간에 일이 터지면 책임지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임자의 실책 여부는 따지지 않았다. 김 사장의 통상관은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자는 것은 아니지만 FTA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FTA 체결국 확대보다 FTA의 장단점을 분석해서 극복하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농업 분야의 피해는 앞으로 서서히 나타나게 될 텐데, 이를 완화해주는 게 정부의 필수 업무”라고 강조했다. 개방의 물결에 유난히 취약한 우리 농업 분야. 국가 정책은 이렇게 세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좋은 아빠, 자상한 남편 ‘글쎄’

“좌우명이 뭡니까?”

“ ‘위국진충(爲國盡忠)’입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지요. 저는 평생 공무원다운 공무원이었고, 다시 태어나도 이런 삶을 살 겁니다.” 지독했다. 인터뷰 도중 자신이 모은 자료를 찾아가면서 설명했다.

이런 김재수에게 가족은 뭐라 할까. “제가 요즘 집사람에게 듣는 불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재테크가 뛰어나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니고 기술이 있어 은퇴 후 화려한 제2의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죠.” 그는 운전도 잘 못한다. 보험은 어떤 게 적당한 건지 모른다.

김 사장은 얼마 전 현직에서 물러난 고위 공무원이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차를 몰고 가다가 고장 나면 배웠던 기술을 써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라며 부러워했다.

그는 공직 생활 36년 동안 휴가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 아내가 친정에 갔다 온 것이 두세 번에 불과하고 아이들이랑 놀러 가 찍은 사진도 몇 장 없다고 한다.

김 사장에게 휴가 기회가 없지는 않았을 터. 2003년 주미한국대사관 농무관 시절 휴가를 갔다. 9시간30분 걸려 도착한 플로리다의 해변. 하지만 ‘미친 소’ 뉴스는 그의 발길을 워싱턴으로 돌리게 했다. 광우병 파동의 시작이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36년 인생이었다. “오래전에 본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내 유일한 능력은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꼬집다

“요즘 대학 졸업생들 보세요. 열심히 공부하는데 취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 고통이 개인의 능력 부족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사장의 아들은 32세. 미취업자다. 그러면서 “당사자(아들)는 얼마나 힘들겠냐”고 했다.

경제민주화에 대해 물었다. 김 사장은 “동반 성장, 상생이라면서 중소ㆍ중견기업들에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주겠다고 하는데 국내에서 경쟁력 없는 업체는 해외에 나가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장악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그렇다고 (대기업을) 때려잡는 것도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김 사장과 aT의 역할을 물었다. “공공기관은 큰 틀의 정부다. 경기가 어렵다고 급여를 못 받는 직원은 없다”며 “정부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는 속성이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에 자율과 권한을 주고 이에 걸맞은 책임을 지우면 된다고 했다.

공공기관장 물갈이에 대해 김 사장은 “임기는 보장해줘야 하지 않느냐”면서 “하지만 평가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대기업의 영농 참여와 관련해서는 “필요한 부분을 제대로 도입하면 오히려 농민에게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이 수출이 아닌 국내 시장에 진입할 경우 개별 농가가 피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농업에 투자도 필요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가 많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흑백논리나 극단적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경계하는 목소리다.

“제 좌우명은 ‘위국진충(爲國盡忠)’입니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지요. 저는 평생 공무원다운 공무원이었고, 다시 태어나도 이런 삶을 살 겁니다.” 지독했다. 인터뷰 도중 자신이 모은 자료를 찾아가면서 설명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pm]

▶음식을 사랑한 남자… 세계를 품다

“식품산업의 발전을 위한 1차 관건은 한국 음식의 세계화다.” 김 사장의 말이다.

“한류의 기초는 음식입니다. 드라마도, 음악도 아닌 음식입니다. 특히 우리 음식에는 여러 예절을 비롯한 문화가 녹아 있어요”라고 역설했다. 한국은 사계절이 있고, 산과 바다가 있고,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전했다.

김 사장은 요즘 ‘섞임의 미학’에 푹 빠져 있다. “비빔밥, 탕평채, 궁중음식은 섞임의 결정체입니다. 이런 문화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음식은 대표적인 슬로푸드입니다. 전 세계가 슬로푸드 열풍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메뉴를 정비한다든지,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한다든지 등은 한식 세계화의 기초 1단계로 평가하고 있다. “ ‘성과가 없네, 낭비네’ 하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한식의 인지도는 4년 전 9%였는데 지난해 41%까지 치솟았다. 싱가포르에선 한국식당 개업이 열풍이다. 그는 “해외 식당들이 한국 식재료를 사용하고,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문화적 효과가 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을 너무 얕잡아보지 말라고 일갈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신바람에 근거하고 있죠. 이는 우리의 관광버스 춤바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우리 문화가 알고 보면 세계적인 문화라는 것이죠.”

우리나라 음식은 그 어떤 나라도 벤치마킹할 수 없다. 또 우리 음식은 다른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안 된다. 김 사장은 “나라마다 음식의 특성이 다르다. 때문에 벤치마킹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한식의 세계화는 퓨전화를 통한 현지화가 정답이라는 것이다.

▶‘식품’ 두 글자의 주인공

김 사장은 농림부에 처음으로 식품의 개념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농업이 전통 농업에 머물면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식품산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사무관 시절, 식품가공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MB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로 이름이 바뀐 데 이어 박근혜정부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가 되면서 ‘식품’을 지켜냈다.

김 사장은 “이번에 (식품 명칭이) 떨어질 뻔했지만 이건 ‘글자’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농업은 생산만으로는 살아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식품산업의 부가가치는 연 144조원, 186만명이 고용된, 중요한 산업이다.

김 사장은 “대한민국 인구 중 농업인은 296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생산 종사 인력을 말한다. 비료나 농기계 등 생산 전 단계 산업과 생산 후 가공ㆍ저장ㆍ수송ㆍ식품 안전ㆍ수출 등의 분야도 전부 식품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걸 다 합치면 18% 정도가 된다”며 “꼭 논ㆍ밭에서 허리 굽히고 일해야만 농식품 관련 종사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식품산업의 중요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김 사장은 “배추나 채소 가격이 올라가는 이유는 완충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많이 생산해서 저장하면 가격 완충 작용을 해준다”고 설명했다. 농산물 가격의 급등이나 급락을 완화하려면 식품산업이 성숙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최대 식품기업의 매출은 연 4조4000억원 정도예요. 글로벌 거대 식품기업에 비하면 초라합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외교관 ‘김치’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 코덱스(CODEX) 규격에 등록된 김치. 김 사장의 작품이다.

그는 “최종 8단계 승인 절차를 거쳐 국제 규격으로 공인된 이후 국제적으로 판매량이 많이 늘었고 우리나라 홍보도 많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게 마련. 기생충 알이 발견됐다는 보도로 우리나라 김치 수출이 반 토막 났다. 그러던 중 해외 유명 언론이 김치가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에 예방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전 세계적 음식으로 급성장했다.

또 참여정부 당시 쇠고기 문제로 한ㆍ미 양국 관계가 냉각됐을 때 김치는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 사장은 “미국 농무부 장관 등을 주미한국대사관에 초청해 우리 음식을 대접했는데, 관계 형성에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의 미래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외국의 지도자들은 농업이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전통적 기능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정식 기자/yjs@heraldcorp.com



김재수 사장이 걸어온 길
▶1957년 경북 영양 출생
▶1978년 경북대 경제학과 졸업(최종 학력 중앙대 경제학 박사)
▶1977년 제21회 행정고시 합격
▶1995년 농림수산부 시장과장
▶1999년 농촌진흥청 종자관리소장
▶2003년 주미한국대사관 농무관
▶2007년 농림부 농업연수원장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
▶2009년 농촌진흥청장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2011년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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