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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사회
이제 윤 장관의 어깨에 박근혜정부의 명운이 달렸다. 일이 그렇게 커져버렸다. ‘윤진숙 지키기’에 박 대통령이 너무 많이 건 것이다. 국민들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고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비행 중인 기내에서 승무원들에게 ‘진상’을 떨고, 제 분에 못 이겨 손찌검까지 했다 경을 친 어느 대기업 임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현지 공안당국이 개입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사고’를 쳤는지 직감했을 것이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비행기에 강제로 올랐을 때 마주친 승무원들의 환한 모습에서 그는 저승사자의 미소를 보았을 게 틀림없다. 자진사퇴 형식이라지만 그는 이번 일로 ‘별’을 반납하고 직장에서 잘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사건의 발단이 좌석배정과 기내식 때문이라지만 무엇이 그토록 그를 화나게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자신의 인생을 걸고 일척건곤의 승부를 벌일 사안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직장은 자신의 인생 그 자체이며, 자신이 서 있는 자리는 평생 쌓아올린 결과물이란 의미가 있다. 이로써 그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 대표 사례로 한동안 회자될 것이다.

어디 이번 소동뿐이겠는가. 우리 사회 곳곳에는 사소한 일에 너무 많은 것을 거는 무모함이 넘쳐난다. 층간소음과 주차 시비로 이웃이 원수가 되고, 급기야 살인으로 번지는 끔찍한 사건도 그런 범주다. 고속도로에서 앞지르기를 당하면 죽기 살기로 그 차를 다시 따라잡는 아찔한 추격전도 마찬가지다. 작은 일에 과민 반응하는 것은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인데도 말이다.

이미 정권 희화화의 소재가 돼 버린 ‘몰라요 진숙’ 파문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를 게 없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받은 점수는 한마디로 낙제점이었다. 업무 숙지 능력은 그의 머릿속처럼 하얬다. 불성실하다 못해 불손한 답변 태도는 청문위원은 물론 지켜보던 국민들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새누리당조차 ‘부적격’ 판정을 내렸을까. 여론이 그쯤이면 대개 인사권자는 깊은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되레 “너무 당황해서 그런 것”이라거나 “지켜봐 달라”며 감싸기에 바빴다. 그리고는 ‘내가 보증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제 윤 장관의 어깨에 박근혜정부의 명운이 달린 꼴이 됐다. 일이 그렇게 커져버린 것이다. 만의 하나 윤 장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박 대통령은 어떻게 그 부담을 감당할지…. 공연한 걱정거리만 또 하나 늘었다. 윤 장관 지키기에 박 대통령이 너무 많은 것을 걸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작은 일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교육심리학자들은 ‘과잉일반화(過剩 一般化)’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잣대로 매사를 재단하면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가, 박 대통령이 과잉일반화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열린 사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우를 범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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