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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개,크리스탈로 빚어낸 ‘빛의 화폭’…정현숙의 ‘인피니티 일루전’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뽀얀 백자 달항아리에 나비가 날아들었다. 그런데 화폭에서 빛이 난다. 백자도, 나비도 찬란한 빛을 머금고 있다.

빛을 따라가보니 화폭에 조각조각 붙여진 실낱같은 자개 띠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천개의 자개띠들이 칸을 이룬 사각 공간에는 좁쌀만한 크리스탈들이 제각각 자리잡고 빛을 발하고 있다. 그야말로 ‘빛의 화폭’이다.


이 작품은 작가 정현숙(대진대 미술학부 교수)의 신작 ‘비포 앤 에프터’이다. 정현숙은 빛을 자신의 평면에 붙잡아두기 위해 끝없는 조형실험을 반복해왔다. 한동안 금빛으로 감도는 원들이 리드미컬하게 변주되는 부조회화를 시도했던 작가는 2007년부터 캔버스에 자개를 붙이며 변화를 주었고, 2009년부터는 크리스탈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광채가 나는 소재들이 화폭에 자리잡으면서 그의 작품은 눈부신 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 빛들은 보는 이를 알 수 없는 충만함의 세계로 이끈다. 동시에 그 빛은 텅 비어있는 허상이자, 빛의 탄생과 소멸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성과 소멸을 말해준다.
 
정현숙 ‘Before and After’. 화폭에 도자기를 표현한 후 자개와 크리스탈을 박았다.                                  [사진제공=진화랑]


빛을 통해 영원성을 추구해온 작가 정현숙이 서울 통의동 진화랑(대표 유재웅) 초대로 오는 24일부터 작품전을 연다. 정 교수는 ‘인피니티 일루전(Infinity Illusion)’이라는 타이틀로 내달 21일까지 개인전을 개최한다.

순환하는 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현숙은 엄청난 노동과 시간을 투입하고 있다. 캔버스에 밑칠을 하고 형상을 만든 뒤 0.8cmx0.2cm 크기의 작은 자개 띠를 천연풀을 이용해 끝없이 붙여나간다. 그 과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된 공력을 요한다. 마치 구도자가 펼치는 수행과도 같다.


작가는 빛을 화폭에 영원히 붙잡아두기 위해선 도를 닦는 듯한 반복적 행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빛으로 캔버스를 채워가는 반복의 과정을 통해 진리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캔버스 위의 빛나는 광채들은 세상의 이치를 함축하면서, 우리를 ‘비(非)물질의 세계’로 이끈다.

빛을 통한 영원성의 창조는 작가 정현숙이 꿈꾸는 이데아다. 그의 작업은 화려한 빛과 선으로 아름다움의 정점을 추구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 아르데코(art deco) 시대 작업들과 일면 맥이 닿아 있다. 또 신작 중에는 검은 화폭에 사각, 원형의 자개편을 끝없이 이어붙여 빛나는 원을 표현한 작품이 돋보인다. 추상의 둥근 화폭은 가장 완벽한 형태인 ‘원’을 표현하며 깊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


진화랑 신민 기획실장은 “무한한 빛으로 환영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정현숙의 작품은 우리의 전통 도자기들을 영원히 아름답게 한다”며 “그것은 곧 우리의 역사를 반추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들어 정현숙의 화폭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고 있다. 작가는 이제 빛이 가진 영원성에서 빛이 가진 생명력으로 자신의 주제를 확장시키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도자기에 나비들을 더했더니 생명의 기운이 더욱 감도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빛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과 모색을 꾸준히 거듭하겠다고 밝혔다. 02)738-757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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