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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웅대해 비현실적인 대자연의 경이…미국 그랜드캐니언
[그랜드캐니언=이해준 문화부장]시카고에서 암트랙을 타고 30시간의 대륙횡단 대장정 끝에 그랜드캐니언 여행의 기점인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도착했다. 평원처럼 보이지만 콜로라도 고원의 남서쪽에 자리잡은 해발고도 2100m의 소도시다. 여기서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해 자동차를 렌트한 다음, 3일 동안 그랜드캐니언과 그 일대의 준(準)사막지역을 종횡무진 누볐다.

이곳을 여행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이 여행 경로는 만만치 않은 것이다. 플래그스태프~라스베이거스 거리가 400km에 달하고, 플래그스태프에서 그랜드캐니언까지는 120km가 넘는다. 그럼에도 이런 코스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을 속속들이 여행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더구나 시카고에 머물 때 그랜드캐니언 여행 코스를 확정하면서 필요한 예약을 마쳤는데, 인터넷으로 마땅한 여행상품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수많은 검토 끝에 자동차를 렌트해 여행하기로 결정했는데,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를 렌트하는 가격이 가장 저렴했다. 엄청난 거리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여행코스는 이래서 만들어졌다. 3일 동안 10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렸지만, 그만큼 거친 황무지를 마음껏 돌아보는 기회도 됐다.

▶신이 빚은 최고의 자연경관=라스베이거스에서 자동차를 렌트해 후버댐을 돌아보고 모하비사막을 가로질러 플래그스태프로 이동한 다음날 일찍 그랜드캐니언으로 향했다. 일대는 온통 거칠고 메마른 황무지 뿐이었지만, 인디언 유적지가 곳곳에 유령처럼 남아 있었다. 플래그스태프에서 그랜드캐니언의 동쪽으로 향하는 89번 국도 중간엔 나라키후(Nalakihu) 인디언 유적지가 있어 잠시 방문했다. 지금은 돌담과 건축물의 허물어진 뼈대만 남아 있지만, 900여년 전인 1100년대에만 해도 인디언들이 거주하며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고, 신명나는 축제를 벌이던 곳이다. 작렬하는 태양에 잔해를 드러낸 채 퇴색해가는 유적이 애잔했다.

그런 다음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으로 들어와 사우스림(South Rim)을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 끝까지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장엄한 풍경이 펼쳐졌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대협곡이 웅대한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절벽은 보기만 해도 아찔했고, 저 아래로 콜로라도강이 이따금 가늘게 보였다. 하지만 그 강은 우당탕탕 격류를 이루는 강이라고 했다.

동쪽 입구로 들어오니 데저트 뷰(Desert View)가 나타났다. 협곡에 형성된 사막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특히 해가 뜨는 아침과 해가 지는 저녁에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입구엔 해 뜨는 시간과 해 지는 시간, 날씨 등을 적어놓고, 석양이 질 무렵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시하고 있었다. 데저트뷰에 이어 나바호 포인트(Navajo Point), 리판 포인트(Lipan Point), 모런 포인트(Moran Point), 그랜드뷰 포인트(Grandview Point), 야피 포인트(Yapi point) 등이 이어졌다. 각각 그랜드캐니언 동쪽 지역의 경관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리판 포인트에선 협곡 아래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에 형성된 삼각주까지 바라볼 수 있고, 그랜드뷰 포인트는 동북쪽 협곡의 전모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저 입이 벌어질 뿐이었다.

 
그랜드캐니언 인근의 나라키후 인디언 유적지. 900년전에만 해도 인디언들이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거주했던 지역이다.

그랜드캐니언은 콜로라도강이 로키산맥 서남부 고원지역의 지표면을 침식해 만들어진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협곡이다. 해발 2300m 안팎의 콜로라도 고원은 20억년 전 지각변동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강의 침식으로 협곡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70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협곡의 길이가 446km에 달하며, 폭은 13~26km에 이른다. 깊이는 1500m로 걸어서 내려가는 데 2일이 걸린다. 한국의 웬만한 산을 거꾸로 집어넣어도 충분할 정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신이 빚은 가장 장엄한 곳, 세계 7대 자연경관이자 많은 여행전문가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곳이다.

▶셔틀버스를 이용한 협곡 탐방=그랜드캐니언의 사우스림 동쪽 지역은 자동차로 이동하며 경관을 구경할 수 있지만, 그랜드캐니언의 핵심 관광지인 중앙부터 서쪽 끝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승용차는 운행할 수 없다. 국립공원 가운데 있는 그랜드캐니언 빌리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은 다음 가장 대표적인 전망대인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 Point)로 향했다.

야바파이 전망대엔 많은 사람들이 대협곡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탐방객들이 지르는 탄성이 간간이 들려왔다. 전망대는 협곡 안쪽으로 툭 튀어나와 가까이 가니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거대한 협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협곡이 워낙 거대해 그 웅대함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다른 것과 어느 정도 비교가 돼야 그 웅대함이 현실감을 갖는 법인데, 그것이 어려워 오히려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협곡은 몇개의 층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 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고원이라 할 정도로 넓었다. 수백만년 동안 물과 바람에 의해 서서히 침식되면서 토양이나 암석의 성질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이루어진 결과다. 깎아지른 절벽은 기묘한 형상을 하거나 각각 다른 색깔을 띠고 있어 수십억년에 걸쳐 형성된 지구 속살의 원형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랜드캐니언의 그랜드뷰 포인트에서 바라본 대협곡의 웅장한 모습. 거대한 협곡 맨 아래로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 보인다.

그랜드캐니언을 돌아보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은 셔틀버스를 타고 주요 전망 포인트에서 조망하는 것이고, 최근엔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협곡의 장엄함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협곡 아래 콜로라도 강까지 연결된 트레일 코스를 걷거나 말을 타고 돌아보는 방법도 있다. 많은 트레일 코스가 개발돼 대자연의 경이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시간과 비용 때문에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야바파이 포인트에서 시작해 호피 포인트(Hopi Point), 모하비 포인트(Mohave Point), 어비스(The Abyss), 모뉴먼트 크리크 비스타(Monument Creek Vista), 피마 포인트(Pima Point), 허미츠 레스트(Hermits Rest)까지 주요 전망대가 이어졌다. 노선 길이가 20km에 이르며 각각의 포인트에는 여기에 얽힌 역사와 에피소드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이곳 인디언과 광산개발의 역사였다. 이곳에는 기원전 1200년 전부터 인디언이 거주하기 시작해 유럽 이민자들이 들어올 당시 후알라파이(Hualapai) 인디언이 협곡 아래에 거주했다. 인디언들은 대협곡을 신성한 곳으로 순례를 오기도 했다. 지금은 인디언이 보호구역으로 밀려나 있지만, 동굴을 비롯한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발굴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랜드캐니언 사우스림의 대표적인 전맘대인 야바파이 포인트에 많은 탐방객들이 모여 대협곡의 장관을 감상하고 있다.

▶석양이 몰고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가장 서쪽 전망대까지 돌아보자 오후 5시가 넘었다. 아직 태양은 중천에서 이글거리고, 해가 지기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다. 샌드위치로 간식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 6시가 넘어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모하비 포인트로 이동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미 전망대를 가득 메우고 서쪽 고원 너머로 기울어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그랜드캐니언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점차 붉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햇볕이 작렬하던 낮에만 해도 그저 거대한 협곡이었지만, 해가 기울면서 협곡이 살아나는 듯했다. 협곡에 형성돼 있는 크고 작은 구릉과 산이 긴 그림자를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듯했다. 고원 하늘이 붉게 물들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전망대의 관람객들이 석양에 넋을 빼앗겼다. 서쪽 지평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거의 직선으로 이뤄진 지평선이었다.

해가 완연히 기울자 협곡 아래엔 금방 어둠이 찾아왔다. 붉은 숨을 토해내던 태양도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몰아쳤다. 원래 여행을 계획할 때 그랜드캐니언에선 발굴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협곡의 껍데기만 보는 게 아니라, 5일 또는 1주일짜리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고고학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고 전문가와 함께 망치와 돋보기를 들고 협곡을 돌아다닐 계획이었다. 둘째 아들이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 이를 필수코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먼저 귀국하는 바람에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나 혼자 껍데기만 보고 말았다. 그 아쉬움과 2개월 전에 귀국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왔다. 엽서에 이런 마음과 함께 그랜드캐니언이 꼭 여행할 만한 곳이라는 점을 적아 보냈다. 함께 여행하자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앞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여행할 것이기 때문에, 좋았던 점만 전해주어도 충분했다.

그랜드캐니언을 떠날 때에는 어둠이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이제 미국 대륙횡단 여정도 하이라이트를 지나고, 가족이 함께 시작했던 희망찾기 세계여행도 그 끝을 향해가고 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지, 지금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둠을 가르는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내면의 변화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hjlee@heraldcorp.com

작렬하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그랜드캐니언 대협곡 아래의 높고 낮은 산들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랜드캐니언 너머의 콜로라도 고원 너머로 해가 넘어가면서 하늘이 붉은 석양으로 물들고 있다.


<여행 메모>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2011년 10월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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