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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필이 우리에게 여전히 소중한 이유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조용필이 지금까지 내놓은 18개의 정규음반 중 내가 가장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건 13집 ‘The Dreams’의 ‘꿈’이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그 누구도 말을 않네/(중략)/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이 노래를 발표할 때 조용필의 나이는 41세다. 당시에는 마흔이 넘어도 감성은 여전히 세련됐다고 생각했다. 가사를 뽑아내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록 사운드를 이처럼 품격 있게 표현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이 노래는 각박한 도시의 삶이 주는 황폐함에 대한 위로이자, 요즘 말로 하면 세련된 ‘힐링’이었다.

조용필의 나이는 이제 63세. 며칠 전 그의 새 음반에 실릴 노래들을 미리 들으러 가는 길에도 드는 생각은 ‘아직도 조용필의 감각이 여전할까’였다. 10년 만에 새 앨범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라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조용필의 19집 ‘헬로(Hello)’에 실린 신곡 10개를 감상해보면 왜 조용필이 국민가수로 불리는지를 알 수 있다. 신곡들은 신세대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만큼 폭넓고 다양한 음악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모던록이나 브릿팝 같은 현대적 느낌이 들었고, 버벌진트의 랩 피처링도 들어가 있다. 통통 튀는 록사운드에 전자음의 댄스를 입혀 젊음을 유지하는가 하면, 차분한 발라드풍 곡들은 힐링송으로 유효할 것 같았다.


조용필은 TV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은 지 15년이 넘었다. 오로지 공연으로만 대중과 소통해왔다. 신세대는 그의 음악을 따로 듣거나 공연장에 가지 않는 한 조용필 음악은 낯설다.

하지만 조용필의 새 노래는 10대부터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창밖의 여자’를 기억하는 60~70대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노래들이다. ‘뮤직뱅크’에 올려도 좋고 ‘유희열의 스케치북’, 심지어 ‘가요무대’에 올려도 어울릴 만한 곡이다. 물론 ‘콘서트 7080’이나 ‘열린 음악회’의 레퍼토리로도 어색하지 않다. 모던록 사운드와 랩을 얹힌다고 세련되고 젊은 음악이 되는 건 아니다. 63세의 나이로 이런 음악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조용필은 기교가 아닌 가슴과 감성으로 이런 사운드를 터득한 것 같다.

똑똑 끊어 치는 세련된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인상적인 첫 트랙 ‘바운스(Bounce)’는 클럽에서 들어도 좋을 만한 노래다. 타이틀 곡 ‘헬로’는 ‘마룬5’가 연상되는 비트 있는 록 사운드가 조용필의 호소력 있는 탁성과 잘 어우러진다. 여기에 신세대 버벌진트의 빠른 랩이 들어갔다.

‘걷고 싶다’와 ‘말해볼까’ 등 두 발라드 곡은 또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불안한 나의 마음을, 언제나 쉬게 해주던, 모든 걸 괜찮다고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오늘 같은 밤 전부 내려놓고서,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고 나직이 속삭이는 힐링송은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온다. 기타 반주로 시작해 헤어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말해볼까’는 애절하기보다는 은근하다. 강한 비트의 ‘충전이 필요해’, 몽환적인 느낌으로 스피디하게 달리는 ‘서툰 바람’, 전자음이 많이 들어간 ‘그리운 것은’ 등 노래 하나 하나마다 특징을 갖추고 있다.

조용필은 이번 신보 10곡을 ‘어느 날 귀로에서’ 한 곡만 제외하고 이례적으로 국내외 젊은 작곡가들에게 맡겼다. 조용필 작곡, 송호근 서울대 교수 작사의 ‘어느 날 귀로에서’는 소외층의 마음을 위로하는 곡이다.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조용필은 트렌디한 음악을 좇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부르면 트렌드가 돼버린다. 이는 철저하게 연습하고 준비한 결과다. 비트를 잘게 쪼개 나눠 붙이고, 부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정도로 수없이 기타를 치며 노래해온 조용필이다.

1968년 데뷔해 45년의 음악인생을 축적해온 조용필은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소통시키고 통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수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적 힐링과 집단적, 세대간의 소통과 힐링을 필요로 한다. 조용필이 여전히 우리 음악계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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