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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의 정치ㆍ경제학...100마디 말보다 큰 힘 패션의 시대
‘신체의 보호’라는 일차적인 기능을 넘어 ‘옷’은 수 세기 동안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매개체로,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사랑을 받아왔다. ‘옷’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입혀져 생명을 얻는다. 100마디의 말이나 행동보다 신속하게, 개인 혹은 집단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때 ‘옷’은 문화를 담은 ‘패션’이 된다. 패션은 또다른 형태의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언어이고, ‘취향의 기호’다. 또 감성을 읽어내는 디자인 영역에 속하고, 예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해 생산과 소비를 일으키는 장을 형성한다.

인류 전체가 단순히 ‘옷을 입는 것’에서 ‘패션’의 주체가 된 것은 불과 100년에 지나지 않는다. 1900년대 파리의 쿠튀르 하우스(디자이너의 이름을 내건 양장점)에서는 상류층을 위한 고급 맞춤복을 제작했다. 이후 대량 생산 방식이 보편화되고 경제력을 지닌 노동자가 등장하면서, 패션 시스템도 변화를 맞는다. 쿠튀르 하우스의 귀부인 뿐 아니라, 모두가 ‘패션’을 누리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특히 20세기는 정치와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가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겪은 시기다.

세계는 두 번의 대전을,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었다. 이후 세계경제의 황금기를 거치며 한국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다양성의 사회, 개성의 사회로 급격히 변모했다. 이러한 가운데 ‘패션’은 사회ㆍ문화ㆍ정치ㆍ디자인ㆍ미술ㆍ음악 등 서로 다른 영역을 넘나들며 진화를 거듭했고, 결과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발전했다.

20세기의 소용돌이 속을 빠져나온 패션은 이제 가장 강력한 ‘문화 융합’의 키워드로 부상했다. 2013년의 대한민국을 ‘패션’이 흔들고 있다. 주도적인 ‘문화세력’으로 자리잡은 패션은 때론 정치를 하고, 때로 경제를 움직이기도 한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시대, 웅대한 서사보다는 순간적인 영상과 이미지가 좌우하는 시대에 패션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더욱 강력한 매체가 됐다.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빨간 목도리와 빨간 운동화로 대표되는 ‘레드 패션’을 선보였다. 이는 대중들에게 말ㆍ행동보다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대통령 당선에 한 몫 했다. 또 오랜동안 고수한 바지 정장과 브로치 그리고 ‘올림’ 머리 모양은 ‘시그니쳐(상징) 패션’으로 각인되며, 활동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의상을 입고 등장하느냐에 따라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읽힐 정도다. 그걸 통해 메시지의 전달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들의 ‘패션 정치’는 오랜 역사를 갖는다.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뚱이나 북한의 김일성 등 사회주의권 정치인들은 일찌기 인민복을 통해 대중과의 정서적 교감을 꾀했다. 최근 생을 마감한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브로치를 통한 패션 정치는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여성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가 됐다. 이런 예는 하나하나 거론하기조차 힘들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이미지나 제품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시시콜콜 설명하는 것은 이제 소구력이 떨어진다.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직원들의 유니폼이나 광고의 이미지, CEO(최고경영자)의 패션이 훨씬 더 강력한 무기다. 순간적인 시각적 교감을 통해 기업 이미지나 제품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 마케팅의 성공 포인트로 자리잡은 것이다.

패션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유명인이 착용하거나 들고 나온 제품을 순식간에 품절시키는 마력을 발휘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닌 가방과 지갑이 시중에서 비슷한 제품까지 모조리 품절사태를 빚게 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대통령의 패션’을 이야기한다.

유명 연예인들도 거대한 ‘패션’ 문화ㆍ경제의 중심에 서 있다. K-Pop(팝) 열풍의 주인공인 아이돌 그룹은 해외 공연을 위해 출국할 때 ‘공항 패션’으로 한번 더 인터넷을 달군다. 출국장에서 보여준 옷차림은 그 즉시 SNS를 통해 공개되고, 전문가와 일반 대중의 ‘품평회’가 시작된다. 착용한 옷과 소품들은 ‘완판(품절)’되기도 한다. 이쯤되면, 21세기는 ‘패션’으로 말하고, ‘패션’으로 응답하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연예인만 ‘패션’을 영위하는 건 아니다. 10대들은 특정 인기 브랜드의 점퍼를 입기 위해 ‘과격한’ 방법을 쓸 정도로 ‘패션’에 민감하다. 20~40대 남성들 사이에선 패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루밍족’이 늘었다. 여가문화의 확산으로 등산ㆍ캠핑 때 입는 ‘아웃도어 룩’이 도심까지 밀고 들어왔다. 일부 사람들은 샤넬ㆍ루이비통 등 고가의 해외 브랜드에 열광하지만, 한편에선 매일 새로워지는 거리의 ‘패스트 패션’을 쫒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 모두 자의반 타의반 ‘패션’으로 대화를 한다. 정치를 하고, 또 경제 활동에 참여한다.

패션은 문화의 산물이자 ‘시대의 아이콘’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레드 패션’도 소녀시대의 ‘하의 실종’ 패션도 모두 사회와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1900년 파리 귀부인의 화려한 옷으로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으로 1870~1914년까지 예술ㆍ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풍요의 시기)’ 시절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21세기에도 상상할 수 있듯이 말이다. 이제 패션을 말하지 않고는 정치든, 경제든, 사람들의 심리조차 얘기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박동미 기자/pd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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