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키프로스형 헤어컷(손실상각)’ 우려에 종지부를 찍었다.
드라기 총재는 4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ECB의 정례 금융통화정책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키프로스 정부가 구제금융 대책으로 마련한 ‘플랜 B’에 대해 “현명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드라기 총재는 구제금융에 대해 언급하며 모든 예금주들에게 부담케 하는 초기 계획에 대해서도 “아무리 좋게 말해도 현명하지 못했다”며 ECB가 10만 유로 이상 예금자에게 국가 구제계획에 동참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일에도 우선순위가 있고, 예금자 보호는 가장 마지막에 손을 대야 할 부분”이라고 역설했다.
키프로스는 지난달 24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과도한 은행 부문을 과감히 구조조정키로 하고, 10만유로(한화 약 1억 4500만원) 이상의 고액 예금에 대해 최대 40%까지 세금을 징수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헤어컷 비율이 최대 60%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예금자에게 경제위기에 대한 부담을 지게 만드는 키프로스의 정책은 개별 예금자들의 대량 예금 인출(뱅크런) 사태를 가져올 수 있으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경제위기에 빠지거나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이 높은 유로존 국가들의 탈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드라기 총재는 이런 여론을 인식한 듯 키프로스 구제금융은 다른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아니라고 밝히며 “키프로스가 본보기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키프로스가 “만약 유로존을 탈퇴하면 키프로스 경제에 산재한 잘못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며 유로존에 남아있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또한 키프로스가 유로존을 탈퇴하건 그렇지 않건 국가예산의 안정화, 통합화, 금융 시스템 구조조정은 어쨌거나 필요하며 탈퇴는 키프로스에 큰 위기를 가져올 것이고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할수도 있다고 전했다.
ECB는 그의 발언 이후 기준금리를 0.75%로 동결했다.
유로존 내 전반에 걸쳐 경제 악화의 징조가 계속 나타나면서 드라기 총재는 “당분간” 금리를 동결하기로 했다. 그는 올 하반기에 점진적인 회복세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손실위험이 성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위험으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실행이 늦어지고 내수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위험 요소들이 경제 전반에 스며들 가능성이 있고 결국 회복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라기 총재의 이같은 언급 이후 유로화는 가장 약세였던 지난해 11월보다 더 낮은 수준인 1.27달러로 떨어졌다. 그러나 올 중반까지 환율 상승이 있을 수 있고 만약 필요하다면 ECB가 이를 주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드라기 총재는 각 해당 국가의 자구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ECB가 “은행 시스템 상의 자금 부족이나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부족은 대신할 수 없다”며 “연체금을 갚도록 하면서 정부의 행동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