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인의 한 서린 곳…뭍 사람의 ‘자유(자발적 유배지)’가 되다=제주도는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우암 송시열, 광해군, 면암 최익현 등 당대 내로라하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유배를 왔던 섬이다. 지금은 ‘자발적인’ 유배지이다. ‘제주이민’ ‘문화이주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제주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2010년 제주의 전입인구는 437명이었지만 2012년에는 4658명으로 10배나 증가했다.
유배는 역사와 문화를 남겼다. 제주도는 추사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 ‘세한도(국보 180호)’가 완성된 곳이며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이름이 등장한다는 송시열의 마지막 유배지다. 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광해군은 이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면암 최익현의 항일운동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유배가 끝나자마자 2박3일 동안 한라산을 등반한 후 ‘유한라산기’를 쓰기도 했다.
3가지 추사 유배길 중 집념의 길과 인연의 길이 시작되는 추사관. |
▶바람 부는 대정에서…추사의 ‘집념’을 생각하다=서귀포시 안덕면에는 추사 유배길이, 제주시내 연미마을회관부터 방선문까지는 면암유배길이, 제주시내 전농로 인근에는 제주성안 유배길(광해군, 송시열, 이익, 김정의 적거지)이 조성됐다.
집념의 길, 인연의 길, 사색의 길로 나뉘어진 추사유배길을 걷기로 했다. 각 코스는 10~12㎞로 걸어서 3시간이면 충분하다. 제주에서도 가장 바람 많이 불기로 유명한 대정으로 향한다. ‘집념의 길’을 떠나기 위해서. 이름부터 서글퍼지는 ‘유배길’인데, 날씨마저 을씨년스럽다. 제주 서남쪽 대정의 주민들에겐 ‘대정 몽생이(망아지라는 뜻의 제주방언)’라는 별명이 있다. 거친 날씨에 예부터 성격이 억세고 예민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집념의 길’은 제주추사관을 출발하여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정난주마리아묘, 단산(바굼지오름), 대정향교 등을 지난다. 향교 앞은 봄이 완연했다. 바람에 온몸이 떨리는데, 눈앞엔 샛노란 유채꽃밭. 거친 바람, 따사로운 빛.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인 것만 같다. 바굼지오름은 부드러운 능선을 보여주는 다른 오름들과 달리 뾰족해 마치 박쥐(바굼지)가 날개를 펼친 것 같다. 단산에 오르면 서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추사가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하는 대정향교 뒤편은 웅장한 산방산이다. 이를 왼쪽으로 끼고 돌면 안덕 계곡까지 ‘사색의 길’이 이어진다.
‘인연의 길’은 다시 제주추사관에서 시작해 오설록 녹차박물관까지 걷는 코스다. 추사는 차를 무척 좋아했다. 절친한 친구 초의선사가 제주를 방문할 때면 항상 차를 선물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장수(71세)한 추사의 비결로 녹차를 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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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유배생활을 했던 집의 모습. 봄이 완연한 제주. 추사의 ‘애화’ 수선화는 이미 지고 없다. 마당에 떨어진 동백꽃잎이 쓸쓸한 분위기를 더한다. |
집념의 길을 따라 대정향교 앞에 다다랐다. 추사는 유배생활 중에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
제주 서남쪽 대정 마을은 옛부터 제주도에서도 가장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하다. 거친 날씨는 마을 주민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집념의 길을 걸으며 유배생활 중에 국보 ‘세한도’를 완성할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린 추사를 떠올려본다. 향교 뒤 뾰족한 ‘바굼지’ 오름과 웅장한 산방산이 ‘자발적 유배’를 감행한 나그네들을 조용하게 반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