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스포츠 오딧세이 - 변재곤> 박지성에게 QPR은…QPR에게 박지성은…
얼마 전 우연히 EBS에서 방영한 독일영화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2006년 작)을 시청했다. 동독의 비밀경찰이 주요인물을 사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견고한 삶을 일순간 포기하고, 감청대상자인 작가의 삶에 깊게 동화되는 내용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청대상자였던 작가 ‘드라이만’이 자신을 감청했던 비밀경찰 ‘비즐러’에게 쓴 책을 헌정하면서, 그간의 사실을 파악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들만의 교감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살다보면 가끔씩 타인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나와 다른 주변인의 삶속에 내가 갖지 못한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타인의 언저리에 머물게 만든다. 대상자의 높은 인간미에 끌리고, 곧은 의지에 반하게 되고,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에 이르면 곧 존경심이 자리를 잡게 된다. 흠모하는 마음을 표출하는 방법은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확실히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조용하게 부담되지 않도록 그의 영혼과 교류를 시도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일정간격을 유지하면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곤 한다.

우리 국민들에게 축구선수 ‘박지성’은 분명 흠모의 대상이다. 그런데 요즘 말이 아니다. 작년 여름 QPR(Queens Park Rangers Football Club)로 이적 후 쉽게 풀리는 일이 없다. 의기투합했던 마크 휴즈 감독은 시즌 중에 성적부진으로 이미 경질됐으며, 박지성을 포함한 고액 연봉자의 경기력에 대한 의구심은 결국 선수 간의 불협화음으로 이어졌다. 새로 부임한 레드냅 감독은 한 술 더 떠 패배의 요인을 교묘하게 전(前) 감독과 선수들에게 전가하는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이제 전열을 가다듬고 보니, 팀은 어느덧 강등될 공산이 커졌다. 앞으로 남은 경기는 8경기뿐이다. 4월1일의 풀럼 경기가 가늠자가 될 것이며, 최소 5승을 해야 리그 17위로 프리미어리그에 존속케 된다.

유럽무대에서 10년 넘게 선수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그에게 지금과 같은 시련이 일거에 중첩된 경우는 없었다. 한 박자 빨랐던 국가대표 팀의 은퇴와 맨유에서 QPR로 이적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다소 서두른 감을 지을 수가 없다. 아시아권에서 그의 입지와 마케팅 능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전체 유럽리그를 놓고 다양하게 검토했다면, 이적 시장은 더 넓고 크게 요동쳤을 것이다. 팀 선택은 은퇴를 고려한 포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박지성의 진가는 모름지기 쉼 없이 공간을 메우고 이어주고 막는 왕성한 활동력이다. 남이 주저하는 일을 묵묵히 실행하면서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어찌 보면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 강점이었다. 그런 그를 팬들은 아꼈다.

QPR과 겉궁합은 맞았을지 몰라도 속궁합은 맞지 않았다. 시즌 종료 후의 행보를 고민할 시점이다. 물론 지금은 잔여경기에 집중할 때이지만 냉엄한 판단도 시기성을 놓쳐서는 안 되기에 그렇다. 그는 우리의 레전드가 아닌가.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