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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광양 매화마을①--매화꽃망울 터지던 날 법정스님 살며시 오셨다네
[헤럴드경제=광양]스물셋 밀양 아씨 쌍리가 전라도 광양 산골마을로 시집온 건 1965년이었다.

집 앞에는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지만 먹고 살기도 막막했던 시절, 이 산골마을에는 말동무 조차 없었다. 감성이 풍부했던 쌍리 새댁은 남달리 외로움을 많이 탔다.

결혼 1년이 지나고 하루는 집 뒷산에 올랐다. 이날 따라 하얀 백합이 유난히 가슴 속 깊이 사무쳤다. 그 꽃잎 속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것 같았다. 툭 쳤다. 눈물이 조르르 쏟아졌다. 쌍리 새댁 입에선 순간 즉석 시가 흘러 나왔다.

“외로운 산비탈에 홀로 핀 백합화야, 니 신세나 내 신세나 와 이리 똑같노. 그렇지만 니는 니 향으로 산천을 다 보듬지만 나는 사람이 그리워서 몬살겠다” 하고 읊조리며 앞을 내다보니 저 멀리 지리산이요, 등 뒤엔 백운산이 받치고 섰고, 가운데 흐르는 섬진강의 물안개가 솜틀 이불을 덮어놓은 양 아름다워 오늘 살다 내일 도망갈지라도 이곳에 천국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타올랐다.

남도의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섬진강 따라 자리잡은 매화마을에 상춘객이 몰렸다.

하얀꽃에 반한 쌍리 새댁은 시아버지가 심어둔 매화나무를 늘려나갔다. 하얀 매화가 만발할 아름다운 동산을 꿈꾸면서.

그 넓은 밤나무 동산에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돈도 안되는 매화나무가 차곡차곡 밤나무 자리를 채워나갔다. 60년대, 밤을 1가마 팔면 쌀 2~3가마를 살 수 있었던 시절인데 이 젊은 새댁은 너무나도 엉뚱한 일을 시작했다. 매실은 열려도 동네사람 아무도 줍지도 않는데 가파른 산 위까지 기어올라가 빼곡히 심었다. 45만평 밤나무 동산의 잡초를 다 뽑고 매화를 심는데 5년이 훌쩍 지났다.

홍매 사이로 펼쳐진 섬진강 경치. 강 건너편은 경남 하동 땅이다.

외로웠지만 이렇게 꿈은 영글어 갔다. 그러나 그도 잠시. 시아버지와 시숙부가 남양(경기 화성시)에서 광산으로 망해 하루가 멀다하고 빚쟁이들이 달려들어 엉키고 찢기고 하는 일이 일상사가 돼 버렸다. 옷이 찢기고 머리가 뽑히고 몸에 멍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45만평도 날렸다. 견디다 못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옷도 미제 스모바지에 야전점퍼를 입고 11년을 버티며 살았다.

다시 땅을 조금씩 찾아왔지만 단아하고 고왔던 여인은 하루 아침에 남정네 차림이 됐다.

빚더미 힘든 시절을 보내던 어느 봄, 하얀 매화가 눈꽃 같이 피던 날 스님 한 분이 오셨다. 스님은 매화꽃 동산을 거닐었고 후에도 꽃만 피면 찾아왔다. 쌍리 여사는 속으로 “왠 땡땡이 중이 자꾸 오나” 하고 생각했다.

스님은 둘러보면서 뭐라고 한마디씩 툭툭 내뱉고 갔다. 그러기를 몇 차례. 이젠 스님이 오면 쌍리 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스님 뒤를 졸졸 따라 동산을 거닐었다. 스님은 “여긴 이렇게 저긴 저렇게 나무를 심어라” 했고 “집은 이렇게 길은 저렇게 내라”고 했다. 쌍리 여사는 최면에 걸린 듯 하란 대로 따라 하기 바빴다.

법정 스님이었다.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서 수행하던 시절 이 곳을 자주 찾았다. 이 후 스님은 쌍리 여사를 딸 같이 대하고 매화동산 가꾸는데 ‘훈수’했다. 

매화마을 청매실농원의 매화가 눈꽃처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스님은 “좌청룡 우백호에 코가 있고 입이 있는데 턱이 없다”고 하셨다. 그게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던 쌍리 여사는 나중에야 그 꺼진 땅을 두고 한 말임을 알았다. 스님은 이어 “김대중 대통령님 헬기가 앉을 자리를 만들 수 있나”고 해서 그 땅을 다 메우고 나니 스님은 “이제 턱이 있어 됐다”고 하면서 “빚 많이 졌지? 이제 이 땅 팔고 나가지만 않으면 밥은 먹고 산다”며 쌍리 여사를 이 땅에 붙들어 맸다.

후에 스님은 강원도와 서울에서 머무를 때 부르면 한걸음에 달려와서 쌍리 여사의 일을 도왔다. 

'매화박사' 홍쌍리 대표. 매실을 우리 식탁에 올린 장본인이다. 작은 사진은 젊은시절 모습

전국민의 관광지 ‘매화마을’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식품 명인 제 14호 홍쌍리 여사와 그가 운영하는 ‘홍쌍리 청매실농원’이다.

(내용 ②편에서 계속)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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