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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범은 낙지인가, 남친인가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낙지 질식 사망 사건’의 피고인 김모(33) 씨는 18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의 심리로 진행된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김 씨는 2010년 4월 낙지를 사들고 여자친구 윤모 씨와 함께 모텔에 들어가 술을 마시다가 한 시간 쯤 뒤 모텔 카운터로 급히 전화를 걸어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다 쓰러졌다’고 신고했다. 방으로 달려간 종업원은 쓰러져있던 윤 씨와 방바닥에 있던 낙지를 목격했다. 곧이어 출동한 119 구급대에 병원으로 실려간 윤 씨는 16일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숨을 거뒀다. 경찰은 “윤 씨가 낙지를 먹다 바닥에 쓰러졌다”는 모텔 종업원의 증언을 토대로 경찰은 ‘질식사’로 결론 내렸다. 김 씨가 윤 씨를 살해했다는 어떠한 직접 증거도 목격자도 없었다.

하지만 윤 씨가 사망 일주일 전 생명보험에 가입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타살의 정황이 발견됐다. 김 씨는 사고 이후 보험 수익자를 자신으로 바꿔 2억여원의 보험금을 탔다.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여전히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 게다가 시신은 이미 화장돼 없어진 뒤였지만 1심 재판부는 김 씨가 여자친구를 살해했다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 씨 주장대로 윤 씨가 낙지를 먹다 숨이 막혔다면 몸부림이 심했을 것인데 모텔방에는 그런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재판부는 “타월 등과 같은 부드러운 천을 사용해 코와 입을 막는 등(비구폐색) 만취한 피해자의 미약한 저항을 제압한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을 남겼다. 낙지를 먹기에는 윤 씨의 치아가 부실했다는 점, 119가 아닌 모텔 카운터에 도움을 구했다는 점, 보험금을 타낸 전후의 과정, 전과 9범의 이력 등 모든 정황이 김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김 씨 측은 1심의 이러한 판단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씨 측 변호인은 “윤 씨의 몸에 어떠한 상처나 저항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비구폐색을 통한 살해라 추정하는 것은 법의학적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을 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코와 입을 막으려면 입 주변에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1만 건 정도의 부검을 한 법의학자 한길로는 성인의 경우에 단 1 건이 상처가 안나고 죽은 경우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60세 가량의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식이 범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또 “다른 법의학자들의 검안 결과 5000여 건 중에서는 얼굴에 상처 없이 비구폐색이 이뤄진 경우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윤 씨가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스스로 걸어 모텔에 들어갔고, 젓가락질을 스스로 할 수 있었던 점에 미뤄 보면 저항할 능력이 없는 상태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김 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했다는 점 역시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피력했다. 변호인은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려면 호흡이 정지된 지 5~8분 사이에 심폐소생술이 이뤄져야 한다”는 법의학자의 소견을 근거로 댔다. 사건 당일 119 구급대는 모텔 종업원의 신고를 받고 5분만에 현장에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장박동을 되살렸다. 즉 김 씨는 윤 씨의 심장이 멈추고 나서 길어도 3분 이내에 119에 신고하는 등 재빠르게 대처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살아나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하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보험금을 노린 살해사건에서 담보가 돼야 할 것은 피해자의 확실한 사망”이라며 “김 씨가 윤 씨를 살리려 한 것은 보험금을 노린 계획적 살인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치아가 좋지 않은 윤 씨가 낙지를 먹게 된 정황에 대해서는, 윤 씨가 사건이 있기 며칠 전 ‘낙지를 먹으러 가자’고 윤 씨의 동생과 통화를 한 녹음 파일이 있다는 점을 통해 해명했다.

검찰은 “증거 상 사망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이 없고, 피고인이 객관적인 상황과 배치되는 진술을 하고 있어 우발적 범행이라 볼 수 없다”며 1심과 같은 형을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최근 법원은 직접 증거가 아닌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어떻게 내려질 지 주목되는 이유다. 김 씨에 대한 선고는 다음달 5일 있을 예정이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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