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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제프 쿤스’ ,위악적 작업으로 ‘환상’ 이 아닌 ‘일상’ 을 표현한다
<이영란 선임기자의 아트&아트>

무언가가 잔뜩 담긴 것같은 검은 비닐봉지를 이어붙인 강아지조각이 서울 시청앞 대로변에 자리를 잡았다. 사각의 번듯한 좌대에 올려지지 않았다면 영락없는 쓰레기더미로 착각할 법한 이 작품은 실은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브론즈(청동)로 제작됐다. 값비싼 재료인 브론즈로, 일부러 싸구려냄새 ‘팍팍’ 풍기는 조각을 만든 이는 ‘한국의 제프 쿤스’라 불리는 김홍석(49ㆍ상명대 교수)으로, 작품명은 ‘개같은 형태’(2009)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차용미술의 기수’인 김홍석은 작금의 현대미술계에서 신화적 존재로 떠받들어지는 미국의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의 번쩍이는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풍선 강아지’를 패러디했다. 그러나 그의 패러디는 흥미로운 듯하지만 인식하기에 따라선 불편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는 그의 재해석이 대단히 위악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 조각은 ‘왠지 마땅찮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지만 해외에선 대단히 인기다. 뉴욕의 유명한 컬렉터 제인 홀저와 호주 브리즈번의 국립미술관 등이 구매했다. 에디션이 모두 6개인 작품의 가격도 15만달러(1억6387만원)에서 25만달러로 훌쩍 올랐다. 예술품이 지닌 다양한 맥락에 주목하며, 명품의 반열에 오른 유명작가 작품에 한방(?) 멋지게 먹인 그의 ‘엉뚱한 위트’를 높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석 작가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톡톡 튀듯 재기발랄하면서도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내재한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양가(兩價)적인 의아함을 안겨온 김홍석이 서울 삼성미술관 플라토(부관장 안소연) 초대로 개인전을 연다. ‘좋은 노동 나쁜 미술(Good Labor Bad Art)’이란 타이틀로 오는 7일 개막되는 이번 전시는 현실과 가상(픽션)을 넘나들며 현대미술의 경계를 자문해온 김홍석의 대표적 구작(舊作)에서 신작까지 총 29점이 선보여진다.

서울대 조소과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를 필두로 광주비엔날레, 후쿠오카트리엔날레 등 다수의 국내외 비엔날레에 연달아 참가하며 해외 큐레이터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오르는 등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는 이번에도 흥미로운 작품을 여럿 내놓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현대무용가와 협업했다는 작품 ‘미스터 킴’(2012)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용가를 석 달 넘게 춤을 추게 할 수 없어 전시용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작품에서 무용수는 벽에 기댄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또 3.5m 높이로 위태롭게 쌓아올린 종이박스에 낡은 침낭을 곁들인 설치작품 ‘기울고 과장된 형태에 대한 연구-LOVE’(2011)는 사실 무겁고 값비싼 레진으로 된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관람객에게 ‘진짜와 가짜의 혼돈’에서 오는 의문과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김홍석은 이번 작품전에서 이 시대의 ‘트렌드’와 ‘윤리’를 동시에 다루고 있다. 또 번역, 차용, 카피 등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문화 이행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여타의 많은 예술가들이 일상 속 환상을 쫓는 것과는 달리, 그는 일상의 이면을 거침없이 벗겨내 이를 악동처럼 펼쳐보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리한 예술가는 국내 미술계에서 가히 독보적인 예술가인 셈이다.

 

그는 현대미술의 관심 영역 밖에 있던 ‘윤리’의 문제도 파고들었다. 유명 미술가들에게 명성을 안겨준 미술품 뒤에 숨은 ‘이름없는 조력자들’의 노동에 주목한 것. 많은 이들의 노력의 결과물인 현대의 미술품을 온전히 미술가 개인의 소유로 인식하는 게 과연 합당한지 질문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들은 미술 안에 속한 사람들의 노동에 관한 이야기”라며 “나를 비롯해 현대작가들의 경우 한점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협력자들이 많이 필요한데 정작 완성된 미술품은 미술가 개인에게만 부와 명성을 가져온다”며 “미술가들이 작품에 들어간 많은 사람의 노력에 대해 어떤 윤리적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해봤다”고 밝혔다.

전시제목인 ‘좋은 노동 나쁜 미술’에서처럼 서로 상반된 두 영역을 윤리적으로 가치평가하면서도, 차별화된 영역들 사이의 숨은 틈새와 둘 사이의 교환, 또는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을 내놓았다.

아울러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번역’을 주제로 한 작품도 출품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하며 번역에 주목하게 됐다. 흔히들 창작물에 비해 번역물은 2차적인 것으로 소홀히 여기지만 나는 번역 또한 독립적, 주체적인 것이라 생각한다”며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의 한글번역본을 읽으며 나는 내가 자란 마을이 떠올랐다”고 했다. 김홍석은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체제에서 끝없이 발생하는 문화번역 현상에 주목하며 번역과 차용, 공공성과 개인성의 문제를 조각, 회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으로 변주해냈다.

안소연 부관장은 “작가는 속임수를 쓰는 ‘트릭스터’처럼 모순되고 역설적인 태도로 매순간 농담을 걸어오지만, 그 심연에는 우리의 현실과 현대미술을 존재하게 하는 상황에 대한 신랄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제시하는 거짓말 속에서 당혹감을 느끼면서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26일까지. 1577-7595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irson@heraldcorp.com. 

작품사진 제공=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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