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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제천 박정우 염색갤러리--실크와 염료가 만나 3D그림 됐네
[헤럴드경제=제천]하얀 천에 염료로 그린 그림이 마치 3D화면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입체적인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 이 외길을 고집하는 이색화가 한 명이 있어 찾았다.

아주 ‘특이한 그림의 발상지’ 청풍호반에 있는 ‘박정우 염색 갤러리’다.

필자에게는 색다른 미술 세계로의 여행이다. 염색하는 염료로 실크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 충북 제천시 청풍문화재단지 옆 청풍호 나루터 입구에 이 예쁜 갤러리가 있다. 이 갤러리에는 미술품만 있는게 아니다. 예쁜 치마와 블라우스 등 의류는 물론 핸드백, 넥타이, 손수건 등 남녀 의(衣) 생활과 관련된 아이템들이 넘쳐난다. 이 모든 제품들 역시 박 작가님이 직접 바느질로 탄생시켰다.

염색화가 박정우 작가님

필자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갔다. 청풍문화재단지 탐방을 간 게 계기가 됐다. 바로 이웃해 있는데 제천에서 관광해설과 언론에 종사하시는 황금자 선생님이 꼭 가보라고 권유해서다. 황 선생님은 미술에 특별히 지식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고 이색 갤러리라며 필자에게 추천해줬다.

기와 지붕에 단아한 2층 건물이 청풍나루터로 가는 길가에 호반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역시 ‘단아한’ 차림의 작가님이 반갑게 맞이했다.

먼저 차를 권하시는데 나는 벽에 걸린 그림에 먼저 시선이 갔다. 도대체 지금까지 봐 왔던 그림과 뭐가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했다. 차가 식는다고 재차 불렀지만 “예 예” 하고서도 한참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박정우 작가가 관람 온 대학생들에게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묻기도 전에 작가님은 “저는 화가입니다. 실크 염색화가죠”라며 필자가 무엇에 궁금해 하는지를 이미 다 알고 답을 술술 내놓으신다. 실크염료로 그림 그리는 일과 손바느질로 생활용품도 만드는게 하는 일의 핵심이라고 했다. 작가님은 공장 상품 처럼 대량으로 찍어내는게 아니라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손수 여러 공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시킨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유화, 수채화를 하긴 하지만 염색화가가 주 전공이다. 30년을 이 길 걸어왔다고 했다. 국내 최초의 염색화가인데 동남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밀랍을 녹여서 화려한 색을 사용하는 바틱에서 착안한 원리로 이걸로 순수하게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 실크천에 염색염료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까.

정말 힘든 화법이다. 염료를 붓으로 찍어 그림을 그린다. 천은 엄청 번지기 때문에 파라핀(양초)을 이용해 고도의 ‘기술력’을 발휘해야 한다. 초를 녹여 촛물을 붓으로 찍어 먼저 꽃잎 등 필요한 부분에 그리고, 그 다음 다른 색상의 염료로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는 것도 순서가 있다. 즉 여러 색상 중 먼저 사용해야 하는 색의 순서다. 화폭의 그림 중 가장 밝은 색을 먼저 칠해야 한다. 가령 꽃잎의 경우 하얗거나 노란 꽃수술 부분을 먼저 그려 완성시키고 빨간 꽃잎과 초록의 잎이나 줄기를, 그리고 배경 색을 그려 넣어야 한다. 이런 꽃수술 부분에 번짐을 막기 위해 초를 이용한다.

미술도 하지만 수예도 하는 박 작가님
염색화가 박정우 작가님이 그린 염색그림. 마치 3D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촛물은 금방 굳어버리기 때문에 순간 작업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염색그림은 바탕에 스케치를 미리 그려놓을 수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 재빨리 그려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수없이 반복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시간도 많이 걸린다.

꽃잎이나 나비 등 자그마한 부분도 아주 섬세하게 그렸는데 그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게 30년 기술 아닌가요” 라며 웃으신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섬세한 부분은 작은 붓으로 그릴 법 한데 박 작가님 작업은 실크천의 번짐 때문에 촛물로 먼저 찍어 발라 번짐을 막아야 하는데 촛물의 경우는 순간적으로 굳기 때문에 작은 붓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30년 노하우를 닦는데 힘든 과정이 있었겠지만 필자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결과물을 보면 그냥 도화지 위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 만큼이나 정교해 보인다. 특히 어떤 그림은 정말 3D화면을 보는 것과 같은 것도 있다.

전시실에 걸린 모든 그림들이 일반인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예쁜 그림들이다. 어렵게 생각하며 그림을 감상해야 하는 장르도 아니다. 작가님도 “그림을 보는데 어렵거나 난해함이 없다”며 다들 보고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작가님은 1년에 서너번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도 연다. 제천지역 전시회에는 단체전에도 단골로 참여한다.

대학시절 서양화를 공부했다. 고등학교 미술교사로도 나가면서 지금의 이 길과 함께 놓고 선택의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편하게 교편을 잡을까, 아니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볼까 하는 고민이었다. 각오하고 후자를 택했다. 물론 지금도 후회는 전혀 없다. 지금처럼 실크에 염료로 회화를 작업하는 화가는 박정우 화가가 유일하다. 작가님은 지금은 제천에 있는 세명대학교에 강의도 나가신다고 했다.

필자는 그림에 조예는 없지만 이해하기 쉬운 그림은 편하게 보는 편이다.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며 사진을 찍고있는데 옆에 와서 간략히 설명도 곁들이신다. 설명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나중에 필자에게 한 얘기였지만 대개는 길게 설명하는걸 싫어하더라는 것. 그래서 간단히 했다고 웃으시면서 귀띔해줬다.

안쪽의 그림 전시실과는 달리 입구쪽 홀에는 다양한 의류와 핸드백 넥타이 스카프 등 소품들로 예쁘게 전시해 놓았다. 가끔 가족단위 손님도 오고 여대생들도 삼삼오오 여행길에 들렀다. 이런 아트샵까지 하니 여성들이 무척 좋아할 공간인 것 같다. 산골도시에 이런 문화공간이 있다는 것도 새삼스러워 보였다. 이런 산과 호수가 어우러지는 멋진 곳에 이색 갤러리로의 여행도 힐링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생활로 끌어들여온 작가. 다양한 가방과 치마, 블라우스 등을 만들어 전시 판매하고 있다.

치마와 셔츠, 블라우스, 넥타이, 스카프 등 왠만한 생활용품은 다 있는데 모두 직접 만들고 자신의 그림도 물건 속에 새겨 넣는다. 마지막 재봉까지도 직접 한다. 미술과 생활용품의 결합체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다 좋아하는 아이템이라고 했다.

재밌는 것은 이 넥타이와 스카프를 매본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어 봤다. 지인들 중에서 써 본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줬다고 설명했다. 또 제천시에서도 시청을 방문하는 VIP들에게는 반드시 이 갤러리 제품들로 선물을 한다고 했다. 지역 문화를 소개하는데 시청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박 화가님은 또 전에 염홍철 전 대전시장이 이 넥타이를 색깔별로 다 구매했는데 후에 박성효 시장도 똑같이 구매해간 일화도 소개했다. 일이 잘 풀린다고들 했다는 것.

박정우 염색 갤러리 모습과 내부 모습들.

제천시에서도 이 이색갤러리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함께 들른 제천시 관광과 심상일 주사님과 황금자 선생님도 자부심이 대단했다. 제천의 문화명소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특이한 분야이지만 실생활을 녹여낸 작품들이어서 제천의 문화예술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찻길에서 현관문으로 들어오면 1층 처럼 보이는 이 곳 전시실이 실은 2층이다. 1층은 호수쪽 계단을 통해 내려가야 하는데 마치 지하 같은 느낌이다. 이 곳에서는 염색 체험도 할 수 있게 준비돼 있다.

산골도시에서 다양성의 미학을 꽃피워 나가는 한 이색갤러리로의 여행, 필자에게도 충분이 즐거움을 선사하는 문화공간이었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읍리 22-5 / 011-734-4051

글ㆍ그림=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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