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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근후 관공서 갈수있어…행복해요”
40년 만에 ‘밤샘근무’폐지후 첫 출근…기아차 소하리공장을 가다
공장 곳곳 ‘주간 2교대’ 축하 현수막
업무 스트레스풀던 술자리 가족모임으로
직원들 “일상적 인간관계 할수 있다니…”

46년만에 폐지 현대차도 설레는 출근길
한국 노동문화 ‘量서 質중시’로 변화



[광명=김상수 기자] 4일 오전 6시, 경기 광명시에 자리 잡은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은 적막했다.

소하리공장이 조용한 새벽을 맞는 건 40년 만의 일이다.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던 공장이 처음으로 ‘숙면’을 취한 듯했다. 여명과 함께 직원이 하나둘씩 출근길에 올랐다.

아직도 제법 차가운 새벽공기이지만, 삼삼오오 입김을 불며 아침 이야기꽃을 피우는 직원들의 활기찬 소란. 숙면을 취하던 공장을 깨우는 소리였다.

현대ㆍ기아자동차가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 첫날 기아차 소하리 공장의 출근길 풍경이다. 현대차는 46년 만에, 기아차는 40년 만에 국내 자동차업계로는 최초로 밤샘근무를 없앴다.

주간 연속 2교대제는 자동차업계, 나아가 한국 노사문화의 오랜 숙원이었다. 오랜 기간 노사의 협상과 양보가 일궈낸 성과이자, 한국 노동문화가 노동시간 등 ‘양’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이젠 근로 의욕, 효율성 등 ‘노동의 질’도 중시하는 문화로 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범 기간을 거쳐 40년 만에 처음으로 밤샘근무가 사라진 이날 오전 6시, 적막한 공장 앞에는 ‘심야노동 철폐, 당당한 역사의 조합원이 주인입니다’라는 현수막이 직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을 축하하는 현수막이다.

아직 어두운 새벽빛을 뚫고 직원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

27년간 엔진 조립을 하고 있다는 김모(56) 씨는 “아직 근무제가 적응되지 않아 너무 일찍 출근했다”며 활기차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사람이 밤샘근무를 하게 되면 그 피로가 며칠씩 간다”며 “몸이 피곤하니 항상 가족에게 짜증을 내 미안했었는데, 2교대제를 시범 도입한 이후 짜증이 크게 줄었다”고 강조했다.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기 전 기아차는 오전 8시30분~오후 7시30분, 오후 8시30분~오전 7시30분의 주ㆍ야간 연속 2교대제를 실시했다. 지난해 시범 운영 기간을 거쳐 이날부터 오전 7시~오후 3시40분, 오후 3시40분~오전 1시40분 주간 연속 2교대제로 변경됐다. 현대차 역시 오전 6시50분부터 공장을 가동해 새벽 1시30분 이후엔 공장 가동을 멈춘다.

김 씨는 “예전엔 낮근무 때에도 오후 7시쯤 끝나니 퇴근 이후 대부분 술자리로 이어졌는데, 이젠 오후에 근무가 끝나니 술자리 대신 가족모임이나 운동 등을 즐기게 됐다”고 전했다.

다시 출근길에 오른 김 씨 모습 위로 ‘함께 만들고 함께 키우고 함께 누리는 평생일터’라는 건물 문구가 도드라져 보였다.

오전 6시30분 이후 출근버스가 속속 도착하면서 공장은 한층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선규(35) 씨는 출근 전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 씨는 “주말 동안 뭘 하고 보냈는지 얘기하고 있었다”며 “밤샘근무가 없어진 뒤 가장 좋은 건 친구들과 비슷한 시간대로 일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밤낮이 바뀐 일상이 많아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이젠 여자친구도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동료가 “관공서 가는 게 정말 편해졌다”고 인터뷰에 끼어들었다. “예전 낮근무를 끝내도 이미 관공서가 문을 닫은 시간이라 맘 편히 동사무소 한 번 못 갔어요.”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있는데, 아내를 도울 시간이 늘어 부부관계도 좋아졌습니다.” 또 다른 동료가 한마디 거들었다. 서로 앞다퉈 말하려는 모습에서 밤샘근무 폐지를 반기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은 현대차 노사의 오랜 양보와 협상 끝에 이뤄졌다. 2003년 논의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노조는 추가 작업시간 확보 등 생산력을 유지하는 데 동의했고, 사측은 시급제를 월급제로 전환해 기존과 동일하게 임금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노사 모두 한 발씩 양보했다는 의미다.

현대ㆍ기아차는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을 계기로 장시간 근로를 점차 개선, 직원의 삶의 질을 높여 새로운 노동문화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제조 경쟁력 강화에 힘써 노사가 함께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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