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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정부 ‘금융정보분석원법’ 추진…탈세추적 · 복지재원 확보 찬성 목소리 속 금융위 · FIU “개인 사생활 침해” 반대로 갈 곳 잃고 표류
“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포합니다.”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40분,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를 깜짝 발표했다. 청와대 있던 기자도, 심지어 주변 비서관이나 장관도 멍하니 TV만 바라봤을 뿐이다. 자금이탈, 경제혼란 등의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금융실명제는 이렇게 느닷없이 시작됐지만 이제는 당연한 법칙으로 자리매김했다.

금융실명제 도입 20년이 된 2013년 2월. 국회와 정부에서는 ‘제2의 금융실명제’ 또는 ‘금융실명제의 완성판’이라 불리는 법안 하나를 두고 수개월째 ‘밀당’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법, 즉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국세청이 FIU의 금융거래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1000만원, 또는 미화 5000달러 이상의 자금세탁 혐의가 있는 거래(STR)나 고액현금거래(CTR)에 대해 FIU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국세청이 공유하도록 해 과세 근거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차명계좌를 통해 세금을 내지 않고도 가능했던 현금거래를 과세당국이 수시로 점검할 수 있게 돼 세금 탈루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탈세 추적은 공감, 사생활 침해 부작용 반발=하지만 이 법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못했다. 우선 정부부처 간 의견이 엇갈렸다. 새 과세 정보를 얻게 된 국세청은 두 손 들고 환영했지만,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반대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 역시 “국세청이 모든 국민의 금융거래를 감시하는 이른바 ‘빅브라더(Big brother)’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와 탈세를 막고 사회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찬성의 목소리로 엇갈린다.

국세청이 추정한 FIU법 효과는 연간 4조5000억원인데, 이에 대한 평가도 “과장됐다”와 “충분히 가능하다”로 나뉜다. 어찌됐든 ‘조 단위’ 세금이 매년 늘어난다는 점은 공감했지만, 그 효과와 부작용의 크기에서는 시각이 다른 게 문제다.

국세청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FIU로부터 넘겨받은 2%가량의 정보만으로도 이미 4300억원의 세금 추징에 성공한 만큼 4조5000억원이란 액수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FIU 상급기관인 금융위를 포함한 반대 측에서는 국세청이 지나치게 과장했다며 실제 효과는 1조원 안팎에 머물 것이라고 맞선다. 덧붙여 개인정보 공개로 우려되는 자금이탈과 회피가 더 클 수도 있다고 반박한다. 이 법에 앞서 차명계좌 개설에 대해 별다른 처벌 조항이 없는 현행 금융실명제법을 개정하는 것이 순서상 먼저라는 주장도 펼친다.

공을 넘겨받은 국회도 엇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복지 등에 필요한 재원 마련 차원에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권에서는 지나친 정보 독점과 남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논란만 계속된 사이 지난해 8월 발의된 이 법은 해당 상임위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FIU, 실제 위력은=서울 여의도에 있는 FIU 심사분석실에서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하루 평균 1000여건의 의심거래 내역이 신고되고 있다. 수천만원에서 수십~수백억원의 돈이 은행 계좌에서 계좌로 옮겨지거나, 현금으로 인출되고 다른 통장으로 입금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각 금융기관은 이 같은 금융거래내역 중 자금세탁 또는 세금회피가 의심되는 건에 대해 FIU에 보고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자료는 검찰과 경찰 등 관련 부처에서 파견 나온 40여명의 손에서 분석이 이뤄진다. 문제는 전부가 아니라 금융기관에서 자체 분석과 판단을 통해 신고된 것 중 10%만이 이들의 손끝을 거칠 뿐이다. 90%가 넘는 ‘이상한 거래(?)’ 내역은 금융기관의 자의적 틀을 거쳐 유유히 사라지고 마는 셈이다. 


그럼에도 FIU가 지금까지 적발한 사례를 보면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고가의 비보험 의료행위나 수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성형외과나 치과의사는 20여억원의 현금 매출신고를 누락한 채 별도로 보관했다 덜미가 잡혔다. 관세청도 잡지 못했던 밀수입업자가 FIU의 추적에 의해 적발돼 수십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100% 현금거래로 이뤄지는 유사 석유 거래, 금과 귀금속의 밀수입ㆍ가공 및 불법 유통 그리고 불법 도박자금도 FIU의 단골 손님이다.

국회에 FIU법을 발의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부부처 간 알력 그리고 언론 등의 무관심 속에 꼭 필요한 법안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20년 된 금융실명제를 완성하고, 투명한 경제를 만드는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라도 조속한 공론화 그리고 법안 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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