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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 클라리넷을 만나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의 성장기
2007년 12월, 만 11살의 소년이 자기 이름을 걸고 독주회를 열었다. 평생을 살아도 자기 이름의 독주회를 열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소년이 클라리넷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꽉 찬 무대, 환호와 호평, 6년이 지난 지금도 소년은 그 때의 감동, 벅참과 떨림을 잊지 못한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17)이 21일 금호아트홀에서 또 한번 자신만의 무대를 가진다. 그는 이번에도 그 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까. 19일 이제 막 리허설을 마친 김한을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락없는 앳된 소년이다. 군데군데 청춘의 상징 여드름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귀여운 얼굴의 소년,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한데 말은 제법 의젓하게 하는 것이 기특하다.

“초등학교때 했던 금호영재 독주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긴장을 제일 많이 한 연주회였고 그 때 감정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없지만 초등학교 갓 졸업한 나이에 자기 이름을 걸고 연주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그 때 잘 봐주셔서 지금도 많이 찾아주시는 게 아닐까 해요.”

2007년 금호영재콘서트 무대로 데뷔한 김한은 이후 1년 만에 소프라노 임선혜와 협연하며 주목받았고 이건음악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서울국제음악제, 대관령국제음악제 등 수많은 무대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해엔 디토 페스티벌에서 앙상블 디토와 함께 무대에 오르며 꽃미남 대열에 합류했다.


“운이 좋았던 거죠. 마침 클라리넷 주자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전 그냥 게스트였죠. 살이 빠져야 하는데…”라며 그저 웃는다. 그래도 빛나는 건 음악적 재능이 아닐까. 사실 김군의 할머니는 소프라노인 박노경(78)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큰아버지는 통영국제음악제 이사로 있는 김승근(45) 서울대 국악과 교수, 5촌 외당숙은 작곡가 류재준(43)씨다. 그는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 그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며 “제가 스스로 넘어서고 감수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코더를 하다 큰아버지 덕에 본격적으로 클라리넷을 배우기 시작했다. 바이올린보다 경쟁이 덜한 일종의 틈새시장을 노렸다.

김군은 2010년 9월부터 영국의 사립명문 이튼칼리지에서 공부중이다. Hemihelp란 자선음악회에서 학교 음악부장 선생님이 그를 보곤 올 것을 권유했다. 지금의 유학생활은 즐겁다.

“예원학교 중2를 마치고 싱가폴 국립예술학교에 갔어요. 힘들었죠. 다니던 학교가 기숙사 학교가 아니어서 다른 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친구들도 없고 저밖에 없으니 굉장히 외로웠어요. 외계인 취급 받았죠. 눈치보여서 연습도 잘 못해요. 최대한 밖에 돌아다니다가 잘 때만 기숙사에 들어오고 그랬죠.”

15세의 어린 소년이 잘 때만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저녁때까지 방황해야만 했다. 혼자서 맘고생도 심했을 터다. 싱가폴에서의 짧은 몇개월의 경험이 그를 성장시켰는지 친구들도 많은 영국 생활은 즐겁기만 하다. 물론 클라리넷이 함께해서다.

“클라리넷은 소리 자체가 관악기 치곤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거든요. 셈여림의 폭이 커서 강하기도 하고 조그만 소리를 낼 수도 있어요. 관악기 치곤 음역대도 높아 많은 감정을 쉽게 풀어낼 수 있죠.”

이번 공연에선 슈만의 ‘세 개의 로망스’, 이건용의 ‘클라리넷을 위한 저녁노래 I’, 드뷔시의 ‘첫번째 랩소디’ 등을 연주한다. 그는 특히 이건용의 곡은 “국악의 모티브를 따와 만든 곡인데 우리 소리를 서양악기로 표현하는 게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며 “워낙 좋아하는 곡이고 한국적 요소를 갖고 있는 곡도 리사이틀에 넣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클라리넷을 알리고 관악기의 저변을 넓히고 싶다는 꿈을 가진 김한. 성인으로의 문턱에 선 소년은 이제 곧 주민등록증이 나온다며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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