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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연금타는 ‘복지유령’ …해마다 수백억~수천억 혈세 낭비…당국 통합정보망 구축 유령과의 전쟁 선포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이 유령이 노리는 것은 바로 돈. 살아있을 때 국가로부터 지원받았던 돈을 죽어서도 받기 위해 가야 할 길을 가지 않는 것이다. 사실 유령은 죄가 없다. 유령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가족이다. 망자가 생전에 국가로부터 지원받았던 돈이나 혜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망자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사망한 복지수급자는 17만8000명.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가족의 사망 이후 1개월 이내에 신고하도록 돼 있으나 전체 복지수급자 사망의 91.5%인 16만3000건만이 1개월 이내에 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8.5%에 해당하는 나머지 1만5000건은 사망 이후 1개월을 초과해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초과 기간만큼 부정으로 복지 수급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유령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해마다 낭비되는 수백억~수천억원의 혈세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죽은 가족의 연금을 받기 위해 사망 신고하지 않는 가족들=부산에 사는 유모(77ㆍ여) 씨는 지난 1999년 9월 남편(당시 67세)이 숨졌지만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았다. 아들이 먼저 사망해, 남편과 함께 국민연금(유족연금)을 받고 있었는데 남편의 사망 신고를 하면 받을 연금액이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무려 13년을 죽지도, 살지도 않은 유령이었다. 남편을 유령으로 만든 대가로 유 씨가 받은 금액은 1년에 100여만원. 156개월 동안 부정 수급한 금액은 총 1260만원이었다.

유 씨의 부정 수급은 지난해 9월 국민연금공단이 80세 이상 수급자 전수(全數) 현장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공단 직원들이 두 차례 집을 찾아갔지만 유 씨는 번번이 “남편이 잠깐 집을 나갔다”며 그들을 속였다. 이를 의심한 공단 직원들이 ‘반드시 본인(남편)을 확인해야 한다’는 안내문을 보내자 그제야 유 씨가 실토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유 씨가 13년 동안 부정 수급한 1260만원을 환수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위 사례처럼 사망 사실을 숨기고 국민연금을 받은 건수가 2011년 1232건에 달한다. 사망 사실 미신고를 비롯한 전체 국민연금 부정 수급 규모도 2007년 2만1500건(108억2700만원)에서 2009년 2만7257건(306억9900만원)으로 크게 늘고 있다.

국민연금뿐만이 아니다. 보훈연금ㆍ기초생활수급비 등 국가가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 대부분이 사망 사실을 숨기고 부정으로 수급을 하는 허점에 무방비 상태다.

민주통합당 최동익 의원은 “연금공단 현장조사 대상자가 전체 수급자의 1%에도 못 미쳐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혜택 받던 가족 사망했는데 신고하지 않는 가족들=정모(50) 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 동생 명의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동통신사가 장애인에게 월 사용요금의 30% 정도를 할인해주는 사회복지 할인 서비스를 이용해온 것이다. 정 씨의 동생은 지난 2010년 12월 세상을 떠났지만 정 씨는 동생 명의의 휴대폰을 해지하지 않았다. 2년 넘게 정 씨가 동생 이름으로 사용하고 할인받은 금액은 60만원이 넘는다. 그동안 이동통신사에서는 정 씨에게 “현재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명의자가 존재하지 않으니 명의 변경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정 씨는 “가족이 죽었는데 시간을 달라”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이통사가 ‘해당 휴대전화를 정지시키겠다’는 통보를 하자 지난 1월에서야 자신의 명의로 변경했다. 정 씨와 같이 장애인 가족 앞으로 제공되는 각종 할인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사망 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장애인에게는 등급 정도에 따라 장애인연금 지급은 물론, 휴대전화 요금, 전기 및 상ㆍ하수도요금 등을 할인해주고 있다. 또 LPG 차량 구입 혜택과 함께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등 각종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감사원이 실시한 복지 사업 현장 실태에 대한 종합 점검 결과에서 사망이나 등급 재판정의 이유로 최근 5년 동안 장애인 등록 대상에서 제외된 33만4000여명 가운데 장애인등록증을 반납한 자는 11만9000여명(35.9%)에 불과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장애수당을 부당하게 받은 자도 739명에 달했다.

▶복지 당국, 통합정보망 구축으로 유령과의 전쟁 선포, 하지만 사각지대도 존재=사정이 이렇다 보니 복지 당국도 사망 미신고로 인한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현재 동사무소에 사망 신고를 하면 주민등록 전산망을 통해 행정안전부에 사망 사실이 등록되고,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공단 등 복지 제공기관에 해당 내용이 통보돼 복지급여 등이 중단되는 시스템이 운용 중이다.

복지부는 이 같은 사회복지 통합망에 더해 전국 화장장(火葬場)에서 처리한 사망자 명단, 전국 장례식장의 사망자 기록을 알 수 있는 ‘e하늘 장사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신고되지 않은 복지 수급자의 사망까지도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또 사회복지공무원을 2014년까지 7000명 증원하고 지난해 5월 사례 관리 전담조직인 ‘희망복지지원단’을 전국 230개 시ㆍ군ㆍ구에 설치해 현장조사 및 실태 파악을 위한 인력과 조직 확충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복지 당국의 노력에도 혈세 누출 방지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복지 당국이 유령 수급자들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스템 구축에 힘쓰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되기 위한 부처 간 공조와 효과적 운영”이라고 지적했다.

또 남 팀장은 “공적 기관을 넘어 민간 기업과의 공조를 통해 민간 부분에서 발생하는 부정 혜택 등에 대해서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씨의 사례처럼 민간 부분에서 제공되는 할인 혜택에 대해서는 민간 기업이 스스로 부정 수급 사실을 알아내야 하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향후 복지 수급과 관련 있는 민간 기업들과의 정보 공유를 시도ㆍ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상범 기자/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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