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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街서 잘나가던 그는 왜 한국을 택했나
데이비드 전, 아시아계 최초 베어스턴스 입사…2년만에 전무로 초고속 승진…중국서 거액 스카우트제안 거절 KDB자산운용 공동대표로
지난 7월 고국으로 돌아온것은
내 몸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

한국의 대표 투자상품 만들어
美등 금융선진국 수출이 내꿈

日 추월 향후 5년이 중요한 시기
단순한 해외 금융투자가 아닌
리테일 비즈니스 적극 매입 나서야



검은 눈을 가진 미국인, 데이비드 전 KDB자산운용 공동대표(50ㆍ한국명 전용범)가 요즘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1993년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유수의 투자은행(IB)인 베어스턴스(Bear Stearns)에 입사한 데이비드 전은 2년 만에 평사원에서 전무까지 초고속 승진할 정도로 월스트리트에서 인정받은 인물이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잇달아 예언하면서 명성을 이어갔다. 그런 그가 중국 금융회사로부터 거액의 스카우트 제안을 뿌리치고 한국을 택했다. 골드먼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미국 3대 IB의 손길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가 모국인 한국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KDB대우증권 16층 KDB자산운용 트레이딩룸에서 기업분석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났다.

▶베어스턴스에서 쌓은 투자철학=데이비드 전은 재미교포 1.5세다. 1962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12살 되던 1973년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동부 8개 명문인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한 곳인 컬럼비아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컨퍼런스 보드(The Conference Board)’라는 미국 민간 경제조사기관에 들어갔다. 이후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하고, 1993년 베어스턴스에 입사했다. 직원의 99.9%가 유대인일 정도로 배타적 성향이 강한 베어스턴스 입사는 아시아계로는 그가 최초였다.

베어스턴스에서 숫자 중심의 철저한 ‘바텀업(Bottom-Up)’ 리서치로 이코노미스트와 투자전략가로 승승장구했다. 입사 이듬해 일반사원에서 부장, 상무, 전무로 연거푸 세 번 승진했다. 골드먼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이 그를 영입하려 하자, 베어스턴스에서 승진이라는 카드로 그를 끌어안았다.

 
서울 여의도 KDB대우증권 빌딩 16층 KDB자산운용 트레이딩룸에서 만난 데이비드 전 공동대표는 “앞으로 5년은 한국이 일본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며 “해외자산을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데이비드 전은 베어스턴스에서 중요한 투자철학을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베어스턴스에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 대표까지 지낸 70대의 한 트레이더가 저한테 얘기하더군요. ‘수익은 시장이 주는 것이고, 매니저가 할 수 있는 것은 리스크 관리뿐이다’ ‘월가에서 성공하려면 말이 아니고 행동을 봐야 한다’였는데 매우 단순한 것 같지만 많은 경험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원칙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기업의 펀더멘털 분석이 가장 중요하다’는 스스로가 찾은 원칙을 포함한 세 가지가 데이비드 전의 기본적인 투자철학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예언하다=한국을 떠난 지 20년이 훌쩍 지난 1996년에야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당시 한국에서 열렸던 아시아소사이어티 연례행사 참석차 나흘간의 방문이었다. 매우 짧은 방문이었음에도 그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신호를 감지했다.

미국에 복귀한 데이비드 전은 ‘한국이 위험하다’는 제목의 리포트를 단숨에 작성했다. 하지만 리포트를 공식적으로 발간하지는 않았다. 한국인인 자신이 굳이 베어스턴스의 이름으로 한국의 위기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자신이 작성한 리포트를 들고 무작정 한국 대사관을 찾았다. 위기를 미리 알고 준비하면 피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장에는 ‘한국에 큰 위험은 없다’는 한국 정부측의 답변이 돌아왔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위기 이후 저의 제안들이 한국정부 정책에 많이 반영돼 있더군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엄청난 레버리지(차입) 규모를 보고 감지할 수 있었다. 미국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문제가 없지만, 완만하게 하락하면 레버리지는 곧 엄청난 충격으로 돌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나서 2006년부터 강력하게 부동산 버블을 규제한 것이 충격을 줄인 이유였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국, 향후 5년 잘하면 일본 제친다”=데이비드 전은 한국에게 앞으로 5년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차례 양적완화 조치를 통해 유동성을 늘린 미국이 경기를 회복하고 유동성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신흥국은 위기를 맞을 수 있지만, 정부와 기업의 재무상태가 양호한 한국이 위기를 잘 활용하면 국부를 증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한국이 보유 중인 금융자산으로 해외에서 자산을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합니다. 단순한 금융투자가 아니라 해외의 은행 시스템 등 리테일 비즈니스를 사들이면, 곧 그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사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150년 만에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을 기회가 보일 겁니다.” 그가 이처럼 해외자산 매입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한국이 지난 20년 동안 일본 산업을 따라잡았듯이, 머지 않아 중국이 한국의 수출산업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이 해외자산을 사야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한국에 와서 보고 느낀 것은 아직 한국 내에서는 이러한 토론이 치열하지 않다는 겁니다.”

▶중국 아닌 한국 선택 이유는 애국심=지난해 7월 KDB금융그룹의 영입 제안을 받고 한국을 선택하기 전, 중국의 대형 금융기관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액수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미국 국적의 그가 돈을 떠나 한국을 선택한 것은 부인하기 힘든 한국인의 피, 애국심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님이 ‘한국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돈 벌려고 하지 말고 도우라’고 하셨어요. 저 스스로도 한국인이라는 것에 애정이 있었죠. 중국에서는 단순한 일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일 외에 뭔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미교포인 아내와 세 자녀를 두고 있다. 큰 딸은 현재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1학년에 재학 중이고, 둘째 딸은 고2다. 그가 어쩔 수 없이 ‘기러기 아빠’가 된 이유다.

가족과 떨어져 오직 일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목표는 KDB의 이름을 달고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투자 상품을 만들어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 수출하는 것이다.

“안전하고 꾸준하게 이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만든 상품을 홍콩이나 뉴욕에 가져갔을 때 인정받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최재원 기자/jwcho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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