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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의 마법룩’ 그의 손을 두번 잡다
美영부인 미셸 오바마 재선때도 취임무도회 드레스로 신예 디자이너 작품 선택…아시아계 제이슨 우 하루아침에 ‘아메리칸드림’ 상징으로…
모든 디자이너는 그녀가 자신의 옷을 단 한 번만이라도 입어주기를 소망한다.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과연 어떤 옷을 입는지 세계의 시선은 집중된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적어도 한 명의 인생은 바뀐다. 바로 그 옷을 만든 디자이너다.

지난 1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 남편의 2기 취임식 기념무도회에 빨간 벨벳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미셸 오바마. 팝가수 제니퍼 허드슨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날 미셸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그녀의 드레스. 미셸이 선택한 드레스는 대만 출신 디자이너 제이슨 우(Jason Wuㆍ30 사진)의 작품이었다. 미셸은 2009년 첫 취임식 무도회 때 입었던 디자이너의 옷을 연이어 선택했다. 제이슨 우는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꼽을 만한 퍼스트레이디의 선택을 한 번도 아닌, 두 번 받았다. 초선과 재선 취임무도회에서 영부인이 한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것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 이후 처음이었다. 무도회 드레스가 공개되자마자 몇 분 만에 제이슨 우의 홈페이지는 다운됐다.

▶‘검은 재클린’의 선택은 신예=지난 2009년 1월 20일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무도회장, 미셸이 모습을 드러내자 언론의 찬사가 쏟아졌다.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쳐졌던 무도회 드레스는 그녀를 단숨에 패션아이콘으로 떠오르게 했다. 패션계는 중앙무대에 데뷔하는 미셸이 오스카 드 라렌타, 랠프 로런, 캐롤리나 헤레나 등 미국 상류층을 상징하는 디자이너의 옷을 안전하게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미셸의 선택은 신예 디자이너의 옷이었다.


제이슨 우가 이날 무도회 드레스로 미셸에게 선사한 것은 ‘우아한 파격’이었다. 이날 미셸은 보통 영부인들이 공식석상에서 긴팔 정장을 모범답안으로 입는 원칙을 뒤집었다. 한쪽 어깨가 드러난 변형된 민소매 디자인의 아이보리색 시폰드레스는 신선한 파격을 던졌다. 외신은 미국 패션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극찬했다.

180㎝의 장신에 팔등신인 미셸은 신예 디자이너들을 통해 ‘퍼스트레이디룩’의 고정관념을 깼다. 미셸은 영부인이지만 고가 브랜드만 고수하지 않는다. 그녀는 저가 브랜드와 신예 디자이너들의 옷, 기성복을 적절히 섞을 줄 아는 현대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

2009년 봄 ‘보그’ 지에 제이슨 우가 디자인한 자홍빛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근육질의 팔을 드러낸 미셸은 단연 도발적이었다. 민소매 원피스 차림으로 남편의 의회 연설에 등장한 모습에서는 그녀만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디자인ㆍ옷감ㆍ색깔 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출해 대담한 액세서리로 마무리할 줄 아는 영부인은 ‘검은 재클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완판녀’ 미셸 패션의 경제적 가치는 50억달러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2기 취임식 드레스에서 제이슨 우는 지난 4년간 보여줬던 미셸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미셸이 이날 입은 붉은 루비색 드레스는 등은 깊게 패였고 홀터넥 디자인으로, 유명한 그녀의 팔 근육을 시원하게 드러냈다. 취임식 무도회에서 입은 제이슨 우의 드레스는 관례대로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기증된다.

 
2013년 대통령 재선 축하 무도회때 영부인 미셸이입고 나온 신예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붉은 드레스(왼쪽 사진)과 2009년 입고 나온 흰색 드레스.

▶자고 나니 벼락스타=제이슨 우는 스물여섯 살 젊은 나이에 미셸의 첫 선택을 받았다. 당시 그는 미셸이 자신의 드레스를 입을 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한다.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단숨에 유명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다.

타이베이(臺北)에서 무역 사업을 한 부모를 둔 제이슨 우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다섯 살 때부터 종종 웨딩숍 쇼윈도에 전시된 드레스를 스케치했다. 아홉 살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가 이때부터 바느질로 인형의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열네 살에 일본 도쿄에서 조소를 공부했으며, 고등학교 마지막 해를 프랑스 파리에서 보내면서 패션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미국 뉴욕의 파슨스뉴스쿨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나르시소 로드리게스 밑에서 인턴 과정을 거쳤다.

2006년 2월 그는 뉴욕에서 자기 이름의 브랜드를 처음 출시했다. 그러나 2009년 미셸이 그의 드레스를 택하기 전까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는 ‘아메리칸드림’의 표상으로 떠올랐고, 뉴욕 패션가에 알렉산더 왕, 필립 림, 데렉 람, 프라발 구룽 등과 함께 아시아계 디자이너 열풍을 불러왔다. 미셸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제이슨 우는 미셸에게 ‘패션뮤즈’라는 날개를 달아줬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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