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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세종의 경복궁에 담긴 조선의 정체성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만일 경복궁에 화재가 났을 때에는 궁곡관이 대언사에게 달려가서 고한다. 화재가 처음 발생할 때에, 그 궁에 입직하던 조라치는 불을 다 끌 때까지 종을 친다. 예정된 사람은 바로 들어와 불을 끄는데, 시좌소에 입직하던 대소인원들은 이에 한하지 않는다.”

세종이 궁궐에 불이 날 때를 대비해 만든 최초의 소방매뉴얼 ‘금화조선’의 내용이다. 세종은 화재예방법은 물론 화재 발생 시 전파 요령과 대처요령, 인력투입 등을 세우고 심지어 숭례문 같은 높은 건물의 지붕에 화재가 날 때에 대비해 지붕에 신속하게 오를 수 있는 쇠고리를 달도록 했다. 숭례문 화재를 뻔하게 지켜봐야 했던 우리를 낯뜨겁게 하는 대목이다.

세종의 최초 기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세종이 새 일을 꾸미고 만들어낸 창조의 공간인 경복궁과 연결짓는 일은 흥미롭다.

‘조선의 정체성’(박석희 외 지음ㆍ미다스북스)은 경복궁의 건축학적 의미와 역사적 상황에 치중한 기존의 책과 달리, 중국과 다른 조선의 것을 만들어내려 했던 세종의 통치철학을 경복궁 구석구석에서 읽어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세종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수정전에선 최초의 독서휴가제도인 사가독서제를, 또 최초의 여론조사를 실시했음을 알게 된다. 교태전에서는 최초의 육아휴가제도와 남편출산휴가제도를, 경복궁 후원에선 최초의 온실도 만나게 된다.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만들었지만 이후의 왕은 가끔 들러 수리만 했을 뿐 법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법궁으로 처음 사용한 이 역시 세종이었다.

세종은 광화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각 이름을 다시 지었다. 동궁ㆍ신무문ㆍ보루각ㆍ흠경각ㆍ교태전 등을 새로 건설하고, 사정전ㆍ경회루 중수와 광화문ㆍ강년전을 개축했다. 궁궐을 당대 정치의 이상을 구현하는 공간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경복궁을 중국의 자금성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세종의 업적을 조선의 정체성으로 집약해내면 경복궁은 새롭게 인식된다. 유교적 이상사회에 따라 헌신으로 표현되는 애민과 소통, 과학적 사고방식이 담긴 생활공간이자 통치공간으로 살아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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