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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소설은 인간 진화의 산물?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인간 본성을 진화론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언어학 등 인문사회학은 새로운 영역을 포섭하며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진화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정신을 설명하는 데도 적용이 가능할까. 인간만의 예술, 픽션을 진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의 문제는 진화의 마지막 관문일 터다. 즉, 이 관문을 통과하면 진화는 인간행동을 전부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세계적 영문학자인 브라이언 보이드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교수가 도전에 나섰다. 예술은 인간의 생존 기능에 부합하도록 진화에 의해 끊임없이 설계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읽느라 밤새는 이유를 브라이언 교수는 진화로 설명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의 기원’(휴머니스트 펴냄)에서 사회학과 생물학, 예술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동원해 인간 종은 생물학적으로 지금 여기를 넘어 지속적으로 사고하는 능력뿐 아니라 현실과 무관한 허구의 이야기를 말하고 들으려는 본능, 즉 스토리텔링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낸다.

인간의 스토리텔링 충동과 능력은 인간의 조건과 현실적 제약에 더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만들며, 동시에 유사한 환경과 조건을 지속 발전시키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가령 새끼사자가 동료와 깨물고 쫓는 놀이를 통해 사냥을 배워나가듯 놀이는 진화과정에서 ‘적응’의 이점을 갖는다. 인간에게 예술은 바로 이런 인지능력을 발달시키는 놀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특히 언어를 사용한 스토리텔링, 즉 픽션은 인간의 정신, 욕구와 의도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단계의 정신활동이랄 서로를 이해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종의 ‘적응’으로 본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유롭게 과거의 경험을 재조합하면서 미래를 상상하거나 모의실험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와 현대동화인 닥터 수스의 ‘호턴이 듣고 있어!’를 비교하며 인간의 가상놀이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3000년의 시간 차를 둔 두 작품은 스토리텔링 진화의 역사인 셈이다. 수많은 고전 중에서 3000년을 살아남은 ‘오디세이아’의 이야기의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를 모든 이의 관심을 끄는 방식에서 찾는다. 복잡한 성격을 가진 오디세이아를 통해 사람들은 삶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다. ‘오디세이아’의 또 다른 진화론적 의미는 지능과 협력의 진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또 닥터 수스의 ‘호턴이 듣고 있어!’를 전통과 종교보다 혁신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의 산물로 파악한다. ‘호턴…’은 착한 코끼리 호턴이 먼지뭉치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작은 후(Who)들의 외침을 듣고 이를 듣지 못하는 다른 정글 동물에게 알리지만 비웃음과 협박을 당할 뿐이다. 이에 호턴은 후들에게 함께 소리쳐야만 다른 동물도 들을 수 있다고 충고함으로써 마침내 다른 동물도 이들의 소리를 듣고 도와준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문제와 해결에 초점을 맞춘 예술적 모델을 설명한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유기체는 문제 해결사이며, 일상적인 모든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해법을 이야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는 얘기다.

‘오디세이아’와 ‘호턴이 듣고 있어!’의 예는 발달심리학자 재닌 애스팅턴이 아이의 가상놀이를 통해 이야기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설명한 것과 일치한다. 즉, 이야기에 대한 딸의 관심이 사물과 그 속성에서 개인과 그들의 행동, 의지, 믿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야기꾼’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가 개발한 이야기 자동생성프로그램인 스토리 헬퍼의 구조를 보면, 인간이 만든 서사 패턴은 무한하지 않다. 개성적인 캐릭터와 독창적인 디테일, 인생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이야기를 새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면 살아남는 이야기는 현재를 넘어 새로운 인간에 대한 통찰과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데 있다는 말이 된다. 이야기는 인간의 진화 그 자체라 할 만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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