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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실험사진의 기수 황규태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매트릭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푸른 배경에 빼곡히 들어찬 이 예쁜 꽃들은 모두 진짜일까? 말라비틀어진 꽃잎과 잎사귀가 허공에 흩날리는 이 사진은 또 뭐람? 분명 꽃 사진이긴 한데 도무지 알 수 없다.
리얼리즘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1970년대 한국사진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한 황규태(75)가 서울 회현동의 신세계갤러리 초대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황규태는 있는 그대로의 사진적 재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실험을 거듭해왔다. 이중노출, 포토몽타주는 물론이고, 때로는 필름을 태우기까지하며 한국 현대사진에서 독자적 행보를 이어왔다. 요즘도 그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영원한 아방가르드’를 자임하는 황규태의 전위적인 작업스타일과 사진적 메시지는 요즘들어 더욱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황규태-꽃들의 외출’이란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지난 2004-2005년 작가가 아날로그 카메라와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해 작업한 대형 꽃 사진 19점이 출품됐다. 작품들에는 가짜꽃과 진짜꽃이 혼재돼 있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구별 또한 모호하다. 활짝 피어난 봄꽃 주위로는 말라 비틀어진 낙엽이 어우러진다. 기이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꽃이라는 지극히 한정된 소재의 작업에서도 황규태는 이렇듯 시각과 관점, 태도, 제작방식의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도 황규태는 경직된 현실을 사진으로 즐겁게 비튼다. 유머와 익살을 통해 아카데미즘을 희롱하고, 공인된 고상함에 야유를 던진다. 그러나 황규태가 보여주는 반골적인 키치성은 저급하지 않다. 숨긴 꽃에서 향기가 피어나듯 우아함과 서정성이 살아 꿈틀댄다. 이는 채집, 차용, 합성, 변형과정을 자유롭게 오가며 그만의 독특한 미학적 작위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온갖 이미지들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이 디지털시대에, 황규태는 그만의 유쾌한 ‘이미지의 매트릭스’를 우리 앞에 신명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황규태는 묻는다.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아름답지 않냐고. 관객이 인식하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규정이 늘 정답이냐고. 한가지 유형과 경향, 사조에 함몰되지않고 아방가르디스트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황규태의 실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자문자답케 한다.
황규태의 전시는 3월 3일까지 계속된다. 2월 15일에는 ‘가짜가 아름답다!’라는 타이틀로 황규태 작가와 문화평론가 조우석 씨와의 대담이 신세계아카데미(신세계백화점 본점 14층)에서 열린다. 참가비는 없으며, 참가자 중 10명에게 추첨을 통해 소정의 상품을 증정한다. 접수문의 신세계갤러리. 02)310-1924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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