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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銀 50년 역사상 첫 공채출신 행장 조준희…‘믿음의 성공스토리’ 그의 33년 금융인생을 만나다
11년전 도쿄지점장으로 일하던 어느날, 췌장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죽음의 선고…그리고 개복수술중 알게된 오진

길고도 짧았던 그순간,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고 삶에 감사했다. 나도 모르게 성숙해진 나를 느끼며…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고객과 직원 위해 던진 ‘6가지 약속’…믿음·진정성이 있다면 실적도 저절로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됐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있나…‘주인의식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만 있으면 누구나 은행장이 될 수 있다’고 오늘도 난 직원들에 꿈을 심어준다



“췌장암입니다. 죄송합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치료에만 집중해 주세요.”

다음 날 후배를 시켜 췌장암에 관한 책을 샀다. 시끌벅적한 6인 병실이었지만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갔다. 책을 덮었다.

사형선고도 이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암은 치료하면서 수개월에서 수년씩 살 수 있지만 췌장암은 달랐다.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절망감이 밀려왔지만 빨리 정신을 차렸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의사가 말했다. “일단 개복(開腹)을 해 봐야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며칠 후 배를 갈랐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눈을 떠 보니 몇몇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모여 있었다.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의 소망은 좋은 은행을 만들어 은행을 떠날 때 직원들의 진심 어린 박수를 받는 것이다. 조 행장은 “과거 성과에 자만하지 않고 위대한 은행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급성 십이지장염입니다. 췌장암이 아닙니다.”

오진이었다. 꿈인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음의 길목에 서 있었다.

“이것도 운명이다. 누구를 원망하지 말자.”



#1. 췌장암 오진 사건

11년 전 일이지만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의 기억은 생생하다. 조 행장은 당시 48세로 기업은행 일본 도쿄지점장 2년차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조 행장은 오진이었지만 암 진단을 받자마자 두 딸부터 생각났다.

“변변찮은 집도 마련해 놓은 게 없는데 저 어린 애들을 두고 어떻게 가지…”

아내와 홀로 계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갔다. “내가 모아 놓은 것도 없는데 연약한 저 여자가 어떻게 애들을 키울까… 부모님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는 것만큼 불효가 없는데…”

조 행장의 삶은 ‘췌장암 오진 사건’ 이후 많이 바뀌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아버지와 남편,자식으로서의 책임감은 더 강해졌다. 조 행장은 “일본 사람들과 같은 병실을 쓰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고 많이 배우게 됐다”면서 “삶의 감사함을 알았고 스스로 굉장히 성숙해졌다”고 회고했다.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일에 대한 열정이었다. 가족을 생각하면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조 행장은 “당시 일본으로 손님이 찾아올 때는 같은 사람이 몇 번을 와도 늘 처음 오시는 분처럼 최선을 다해 모셨다”면서 “가정에서는 빵점이지만 직장에서는 내 모든 것을 다 걸고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은행장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큰 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행장은 “누구에게나 큰 운이 있다. 다만 초심을 잃지 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그 운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2. 삼백의 고장에서 서울로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은 삼백(三白)의 고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상주는 흰색을 띠는 쌀과 누에, 곳감이 유명해 삼백이라고 소개했다. 풍양 조 씨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조 행장은 “풍양 조 씨가 상주에서 500년 이상 뿌리를 잡고 있다”면서 “유교 문화가 몸에 배인 어른들 밑에서 자라나 삐딱하게 나가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다”고 말했다.

담배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조 행장은 비흡연가다. 육십 평생 살면서 담배를 한 가치도 입에 물지 않았다. 반면 그의 아버지는 하루에 담배를 4갑이나 태울 정도로 애연가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도 담배를 많이 피우는 바람에 자식들은 절대 담배를 배우지 않도록 바랬다. 조 행장은 ‘어머니에게 그 정도의 효도를 못하면 아들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담배의 ‘담’자도 꺼내지 않았다.

부족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초ㆍ중ㆍ고등학교는 고향에서 보냈다. 할머니와 손을 잡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면 지나가는 길이 할머니의 땅이 아닌 곳이 없을 정도였다. 정부의 대대적인 토지정리 사업 등으로 재산을 많이 잃었지만 인심만은 넉넉했다. 당시 조 행장의 부모님은 상주에서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가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마련해줬다.


공부를 곧잘 한 조 행장은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대학 입시 첫해 원서를 낸 곳에서 모두 떨어졌다. 예비고사에서 수석할 정도로 열심히 했기에 충격이 컸다.하지만 ‘긍정의 힘’으로 버텨냈다. 조 행장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게 인생”이라면서 “대학 입시에 떨어졌다고 해서 자신감을 잃거나 낙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수학원에 등록했고 이듬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 입학했다. 당시 중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낯설었다. 외국어는 영어가 대세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혜안을 따르기로 했다. 조 행장은 “대학에 떨어지고 나니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면서 “아버지가 ‘앞으로 중국의 시대가 온다. 중국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낫다’고 권유하셨다”고 말했다.

조 행장은 어릴 때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고서를 읽으면서 자랐다. 그중엔 중국 고전도 많았는데 어린 조 행장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삼국지’였다. 수십 번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조 행장이 서슴없이 중국어과에 원서를 쓴 것도 이런 영향이 컸다.

중국어과를 졸업할 무렵 한국은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였다. 조 행장은 1980년 7월 가을 학기에 졸업했다. 당시 2차 석유 파동 여파로 경제는 휘청였고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사회는 암울했다.

이름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선배들은 불황 탓에 상여금을 자사 제품으로 받아 왔다. 당시 조 행장은 이모 집에 얹혀 살고 있는 터라 물건보다 ‘현금’이 필요했다. 때문에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는 생각은 멀어졌다.

주변을 돌아봤다. 은행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은행은 항상 돈이 넘쳐난다. 은행으로 가면 월급이나 상여금을 꼬박꼬박 돈으로 받을 수 있을거야.’

때마침 친구가 중소기업은행 입사원서를 2장 들고 나타났다. 중소기업은행이 뭐하는 곳인지는 몰랐지만 주저없이 입사원서를 쓰고 당당히 합격했다. 조 행장은 동기 중에서 가장 돋보였다. 외환위기(IMF) 중에도 승진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출세 코스’라는 도쿄지점에도 세 차례나 나갔다. 같이 원서를 쓴 친구는 기업은행을 다니다 유학을 갔다. 조 행장은 “나는 큰 운으로 여기(행장)까지 왔다”면서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능동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 내 일로 생각하고 일을 하면 자세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



#3. 신뢰경영과 6가지 약속

2010년 12월 29일 오전.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이 술렁였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속삭였다.

“이번에는 ‘낙하산’이 아니래. 내부 출신이라는데…”

“신문에 나온 그 사람인가 봐.”

직원들의 표정에는 설레임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잠시 후 한쪽에서 ‘와’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업은행 50년 역사상 첫 공채 출신 은행장이 등장했다.

‘제23대 중소기업은행장 조준희.’

기업은행 본점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찼다. 직원들은 마치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것 마냥 고무됐다.

단상에 선 조 행장의 각오는 남달랐다. 조 행장은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를 인용했다.

“저에게도 큰 꿈이 있습니다. 기업은행을 대한민국 최고의 은행, 나아가 세계 초일류은행으로 만드는 꿈입니다.”

조 행장은 6가지 약속을 했다. ▷직원의 건강과 행복 수호 ▷영업방식의 획기적 개선 ▷고객 최우선 경영 ▷중소기업 금융 기반 강화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사회적 책임.

2년이 지났다. 금융권 최초로 PC-OFF 제도가 시행됐다. 오후 7시면 개인용 사무실 컴퓨터의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이다. 최종 PC-OFF 시간은 2010년 말 오후 7시30분에서 지난해 말 오후 6시52분으로 단축됐다. 근무시간 정상화 항목을 경영평가에도 반영했다.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했던 캠페인과 프로모션도 폐지됐다. 영업력 저하는 기우에 불과했다. 2년 동안 개인고객수는 208만여명, 총자산은 33조원이 껑충 뛰었다. 불필요한 외형 확대를 자제한 덕에 중소기업 대출연체율은 은행권 평균보다 낮은 1.86%(2012년 11월 말 기준)를 나타냈다.

조 행장은 파격적인 대출금리 인하로 고객 최우선 경영도 실행했다. 취임 당시(2010년 12월) 각각 18%, 17%였던 가계 및 기업의 대출 최고 금리는 올해 1월 1일부터 동일하게 9.5%로 낮췄다. 기업은행은 ‘참 좋은 컨설팅 프로젝트’를 통해 중소기업 고객에게 경영진단, 가업승계, 회계세무, 법률 등 무료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규모는 다른 은행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010년 말 89조원에서 지난해 11월 말 기준 102조원으로 훌쩍 뛰었다. 대출점유율도 3년 연속 20%를 나타내 중소기업 전문 은행임을 입증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기업은행의 금융영토도 확장됐다. 기업은행은 현지법인 1개와 해외점포 19개를 설립해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또 5대양 6대주의 11개 은행과 업무협약(MOU)를 체결해 실질적인 중소기업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기업은행은 사회적 책임에도 통 크게 투자했다. 2011년 당기순이익 대비 사회공헌사업비 비율은 6.0%로, 주요 은행 중 가장 높았다. 서민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미소금융 지부는 21개로 다른 은행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지난해 3대를 운영했던 ‘참 좋은 사랑의 밥차’는 올해 23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조 행장은 “현실적이지 않는 목표는 계획하지도 않는다. 목표는 실현 가능해야 하고 (달성하기 위해) 바로 실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이든 기업이든 모든 경영의 요체는 신뢰와 믿음”이라면서 “여기서 결실이 맺어진다”고 말했다.



#4. ‘가능성의 아이콘’ 조준희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은 ‘가능성의 아이콘’이 됐다. 후배들은 은행장이 된 그를 보고 꿈을 품었고, 그는 그 꿈을 키웠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 기업은행에 일하는 모든 직원이 지점장, 은행장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다.

다만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먼저 주인의식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다. 조 행장은 “‘내가 어디까지밖에 못 올라간다’는 생각은 버려라. ‘주인의식’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만 있으면 1만2000명 임직원이 모두 은행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 행장은 임원 운전기사 출신을 지점장에 발탁했고, 청원경찰인 직원을 출장소장으로 임명했다. 직원들은 내부 출신 은행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 행장은 “나라가 있어야 조직이 있고 조직이 있어야 개인이 있다”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심만 있으면 한 번 볼 것도 두 번 보고, 두 번 볼 것도 세 번 보게 된다”고 말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조 행장은 “나는 일일(一日) 마감하는 인생이다. 그러나 조직은 5년 앞, 1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면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뜻을 펼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가령 기업은행의 해외 진출 전략인 ‘5대양 6대주 네트워크’는 조 행장이 일본 도쿄지점에서 근무할 때 계획한 사업이다. 2000여명의 인사를 한 번에 단행하는 ‘원샷 인사’는 행원 시절 인사부에 있을 때 구상했고, ‘특성화고(高) 채용’은 부행장 때부터 349개 특성화고를 돌아다니면서 4여년 동안 준비했다.

충(忠)과 효(孝)에 대한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기업은행은 직원 정신교육의 일환으로 평택 천안함 견학과 안동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연수를 시행하고 있다. 조 행장은 “충, 효만 갖추면 그 직원은 성공한다”면서 “교육을 통해 조직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5. 참 좋은 은행에서 위대한 은행으로

‘기업은행을 찾아 주시는 모든 고객들이 잘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오늘 제가 만날 중소기업이 자금난을 겪지 않고 사업이 번창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원들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1440번째다. 108배를 시작한 지 3년9개월. 정신수양과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새벽 기도가 됐다. 보통 사람은 절반도 못하고 쓰러진다.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은 해외 출장 중에도 꼬박꼬박 108배를 한다.

조 행장은 두 가지 소망이 있다. 하나는 중소기업에게 인정받는 금융회사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원들에게 존경받는 은행장이 되는 것이다. 조 행장은 “중소기업의 어렵고 힘든 경영여건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동반자로 기업은행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중소기업이 잘되는 은행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 “직원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고 싶은 ‘참 좋은 은행’을 만들고 싶다”면서 “제가 기업은행을 떠날 때 직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조 행장은 그러면서 “과거 실적과 성과에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겠다. 남은 임기 동안 기업은행을 참 좋은 은행에서 ‘위대한 은행’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진성 기자/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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