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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들 외롭다고 느끼기때문일까? 최종3일(62시간) 논스톱 개장하는 호퍼展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이쯤은 되어야 진정한 ‘열기’라 할 수 있겠다. 일주일 중 나흘은 밤 10시까지 전시관을 개방하는 것도 모자라, 폐막 직전 사흘간(2월 1~3일)은 24시간 내내 전시관을 개방하는 미술전시회가 있다. 바로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 회고전’이다.

프랑스의 국립미술관연합(la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 주최로 지난해 10월 10일 파리를 대표하는 대형전시관인 그랑 팔레에서 개막된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은 미술애호가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엿새간 연장키로 확정됐다. 더구나 마지막 사흘은 62시간 논스톱 개장한다는 소식이다.

당초 이 전시회는 1월 28일에 막을 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구름처럼 몰려드는 관람객(인터넷 예매분은 이미 매진됐다)과 평단의 호평 때문에 주최측은 오는 2월3일까지 전시를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호퍼 회고전에는 호퍼의 대표작인 ‘나이트호크 (Nighthawks, 밤의 사람들)’를 비롯해, 현대도시의 적막과 현대인의 고독을 그렸던 작가의 주요 작품들이 대거 망라됐다. 총 출품작은 128점에 이른다. 호퍼의 대표작 대여섯점이 나왔다 해도 전시장으로 달려갈 판인데 128점이나 만날 수 있다니 관람객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에드워드 호퍼는 사실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다. 수많은 비평가들이 그의 그림에 대해 비평을 해왔으며, 지금도 적지않은 논문들이 호퍼의 작품을 주제로 쓰여지고 있다. 그의 그림에 매혹당한 이들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호퍼는 20세기 미국인의 삶의 단면을 무덤덤하리만치 냉정하게 표현함으로써 인간 내면에 깃든 고독과 상실감을 호소력있게 전달한 작가다. 공간과 인물, 어둠과 빛, 겉과 안이 어우러진 그의 그림은 현실이라는 껍데기 속에 내재된 삶의 저 뒤안길, 시냇물처럼 찰랑거리며 흐르는 우리의 시간을 조용히 응시하게 만든다. 그림을 보며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데 있어 호퍼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작가도 흔치않다.

뉴욕에서 태어나 부모의 권유로 상업미술학교를 다닌 호퍼는 한때 파리에 머물며 렘브란트와 드가로부터 큰 영감을 얻었다. 그리곤 미국으로 돌아와 1920년대초부터 집중적으로 작업에 올인했다. 그는 세부묘사를 최대한 절제하고, 경직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엄격하게 구도를 잡은 다음, 인물을 섬세하게 배치해가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특히 인적이 사라진 도시에 관심이 많았다. 자동차도, 행인도 사라져 그저 적막감만 감도는 거리를 담담하게 표현했다. 



그런가하면 호텔방 하얀 침대에 앉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인물이라든가, 어둠 속에서 노란 불빛을 발하는 도시의 카페,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뉴욕의 사무실 풍경 등을 즐겨 그렸다. 그의 그림은 마치 연극, 또는 영화의 한 장면을 뚝 떼어, 화폭에 정지시킨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공통점이다.

생전에 호퍼는 자신의 그림에 찬사를 보내며, 구구한 해설을 다는 것을 별반 달가와 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내 그림을 통해 고립이라든가 상실감을 의도적으로 표현하려 한 적이 없다”며 “위대하거나 로맨틱하거나 고립된 것을 일부러 찾진 않는다. 나는 그저 평범한 것, 친근한 것을 끌어안고 탐구할 뿐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말이다”라고 되뇐바 있다. 



작년말까지 호퍼의 회고전을 찾은 관람객은 약 58만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폐막일이 다가올수록 관람객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총 관람객은 최소 70만~8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그랑팔레가 미술전시회의 기간을 연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논스톱 전시도 몇차례 있었다. 지난 2009년의 ‘피카소’전, 2011년의 ‘모네’전 역시 장사진을 이루는 관람객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없어 연장전에 돌입했다. 특히 마지막 2, 3일은 논스톱으로 전시장을 개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네와 피카소는 프랑스 출신이거나 프랑스를 무대로 활약했던 작가인데 비해 에드워드 호퍼는 지극히 미국적인 작가라는 점에서 이번 열기는 의미가 남다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트에 있어선 우리가 한수 위’라고 자부해온 프랑스인들이 이토록 호퍼의 작품에 열광하고, 전시를 보기 위해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서너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는 미국 휘트니미술관을 비롯해 호퍼의 수작을 보유 중인 각국 미술관과 소장자로부터 걸작을 대여해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대인의 그 쓸쓸한 내면, 도시에 감도는 적막감을 호퍼처럼 절묘하면서도 설득력있게 그려낸 작가가 흔치 않기에 오늘 수많은 미술팬들이 그의 그림 앞에서 숨을 멈추고 있는 것이다. 

한편 주최측은 젊은 세대들이 보다 많이 호퍼의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이번 연장전에서는 16세 이하의 관람객은 무료로 입장시키기로 했다. 때문에 어린 청소년들까지 날밤을 새며 그랑팔레 전시관에 장사진을 이룰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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