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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렌디한 사업 파고들던 제가 ‘된장사업’ 한다고 하자..”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서울서 대기업을 다녔고, 트렌디한 부문을 파고들던 제가 경북 포항의 오지 중에서도 가장 오지에서 전통된장 사업을 하게 됐다니까 처음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하더군요. 주로 여성분들이 해오던 사업인데 도시남(都市男)이 하겠다고 나섰으니 갸웃뚱할 밖에요. 저도 제가 이런 산골짜기에서 ‘장(醬)사업’을 하리라곤 꿈도 못꿨죠. 그런데 이제 4년차에 접어드는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축복이라 느껴집니다. 물 맑고, 공기 맑은 곳을 수시로 오가다보니 건강도 좋아졌고요. 무엇보다 우리 선조의 혼과 정신이 담긴 훌륭한 문화유산인 장을 제대로 만들어, 그 이로움을 널리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합니다”.

하얀 방진복에, 방진모까지 쓰고 죽장면 상사리의 죽장연(竹長然) 장원에서 포즈를 취한 정연태(48) 영일인터내셔널 대표의 표정은 밝았다. 미국 남일리노이주립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일본 게이오대학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정 사장은 오리온그룹의 (주)롸이즈온 마켓팅 총괄본부장을 역임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포항에서 운송업체를 운영하는 부친 때문에 뜻하지않게 장류업체 사장이 됐다.


죽장연의 모(母)기업인 영일기업(회장 정봉화)은 POSCO(포스코) 포항 사업장 내의 각종 운송을 전당하는 중소기업. 영일기업은 지난 1999년 ‘1사 1촌’ 차원에서 죽장면 상사리와 결연을 맺었다. 그리곤 농번기에는 일손을 보태고, 각종 농기계를 무상수리해주며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또 주민 여덟가정과 함께 매년 장을 담가 나눠먹었다. 바로 이게 인연이 돼 지난 2009년 ‘죽장연’이라는 프리미엄 빈티지 장류회사가 설립된 것이다.

순박한 산골 주민들과 한 마음으로 만들어 나눠먹던 된장과 간장, 고추장이 좋은 반응을 얻자 이를 기업화한 셈이다. 죽장면 일대에서 기른 좋은 콩과 3년간 간수를 뺀 신안의 천일염, 산골 오지마을의 청명한 물과 바람까지 더해지니 장류의 품질만은 자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친이 새로 설립한 장류기업을 맡은 정 사장은 “된장은 공부하면 할수록 오묘하다”고 했다. 된장이야말로 발효의 측면에서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살아숨쉬는 약’이라는 그는 전통방식 그대로 장을 만들지만 동시에 산업화, 표준화도 추구하고 있다. 


또 와인처럼 빈티지 방식도 도입했다. 와인이 연도별로 특성이 다르듯, 장도 해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만큼 그 해의 모든 환경과 생산공정을 기록하며 연도별 특징을 자료화하는 것은 물론, 와인처럼 빈티지(생산년도)를 표기한 명품 빈티지 장을 선보이고 있다. 즉 백화점이며 온라인 등을 통해 판매되는 장류의 표기를 2010년산, 2011년산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 아울러 매년 약 20% 안팎의 장은 ‘완전히 곰삭은 장’으로 선보이기 위해 팔지 않고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한 가정, 한 장독 갖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변의 친지및 사업가, 미식가들에게 항아리 한 독을 보유할 것을 권했다. 정 대표 자신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지만 의외로 많은 지인들이 된장 항아리를 갖겠다고 나서, 죽장연 장원에는 개인의 명찰이 달린 ‘특별한 항아리’들이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명절 때면 자신의 장독에 담긴 된장을 예쁜 단지(무형문화재가 전통방식으로 만든 작은 옹기 항아리다)에 담아 주위에 선물하기도 한다. 


죽장연의 장류는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스타(★)등급을 받은 뉴욕 맨하탄의 한식당 ‘단지(DANJI)’에도 공급되고 있다. 뉴요커들이 먹는 된장찌개는 죽장연 된장으로 만들어지며(메뉴판에 ‘한국의 죽장연 된장으로 만든 된장찌개라고 표기돼 있다), 죽장연 고추장과 간장도 각종 요리에 쓰이고 있다.

정 대표는 “사실 ‘단지’의 셰프인 후니킴(김훈)과는 일면식도 없었어요. 무턱대고 ‘우리가 정성껏 만든 장이니 한번 맛봐달라’며 이멜과 함께 죽장연 제품을 샘플로 보냈죠. 처음엔 그저 ‘맛을 본 다음 답장하겠다’는 딱 한줄짜리 답신만 왔어요. ‘아, 틀렸나보구나...’했더랬죠. 그런데 며칠 후 후니킴이 ‘죽장연 장을 맛봤다.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된장 맛이다. 정말 맛있다’는 반응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곤 상사리까지 직접 찾아왔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더랬죠. 한식당 단지 뿐 아니라 후니킴이 맨하탄에 또다시 만든 ‘한잔(HANJAN)’이란 주점의 요리에도 죽장연 장류가 쓰이게 됐어요. 머잖아 후니킴과 손잡고, 된장및 고추장을 기반으로 한 ‘죽장연 후니킴 특별소스’를 만들 겁니다. 이들 소스, 세계인을 사로잡을 거니 두고보세요. 후니킴은 일본 된장과 달리 한국 전통된장은 밀이 전혀 안들어간다는 점이 차별포인트라며 이를 알릴 것을 귀뜸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미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 중이다. 벌써 일본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서울시장’과 일본내 한식당 ‘도쿄사이카보’에는 죽장연의 장류가 납품되고 있다.

그는 “우리가 만든 죽장연 전통된장은 공장에서 1주일 정도 걸려 만드는 양조된장에 비해 값은 많이 비싼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믿고 먹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전통된장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미래는 밝다고 본니다. 중국산 콩을 쓰는 된장과는 달리, 우리 된장은 값이 6배가량 비싼 이곳 마을의 콩만 쓰고 있고, 소금도 3년간 간수를 뺀 신안천일염(이 천일염을 구입하기 위해 정 대표는 신안 현지를 직접 찾곤한다)을 쓰고, 200m 지하 암반수를 사용하거든요. 여기에 현대식 설비를 구축해 위생도 철저히 체크하고, 여기에 대대로 장을 빚어온 지역주민들의 정성이 더해져 그 맛과 품질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습니다. 평균기온이 평지 보다 3,4도 낮은 해발 450m의 서늘한 산간마을에서 만들기 때문에 된장과 간장, 청국장의 염도도 훨씬 낮췄습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며, 세계 시장에서도 먹힐 거라 봅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1899-3420. 054)283-155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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