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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유산 해석에 대한 국내외 다양한 시도… 아직은 먼길
[헤럴드경제=류정일 기자] 김 모씨는 2007년 신용정보회사 채권관리자인 친구로부터 사망자 명단을 입수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자신의 회사가 관리하는 은행 전산망에서 사망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입수, 제3자에게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피고인을 정보통신망 침해 및 타인 비밀 누설 등을 이유로 기소했지만 원심과 항소심은 정보통신망 침해만 유죄로 인정했다.

정보통신망법 제49조 및 제62조 제6호의 ‘타인’의 범위에는 사망자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비밀 침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망한 자의 정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 의해 함부로 훼손되는 경우 등에는 정보통신망의 안전상 및 정보의 신뢰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타인’에 사망자도 포함되는 것이 논리적이라며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이상의 사례는 디지털 유산의 소유권 논의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단초는 제공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명확한 합의가 이뤄진 것이 없다. 현행법에서 사망자의 유가족은 디지털 유산을 상속할 수 없고 자살한 경우라도 경찰 수사 등을 진행하지 않고서는 기록물을 볼 수 없다.

정보통신망법 21조와 통신비밀보호법 10조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이 제3자에게 이용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용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18대 국회에서 박대해, 유기준, 김금래 의원 등이 발의했던 이용자가 사망했을 때 ‘배우자와 2촌 이내의 친족이나 망자가 지정한 개인’에게 인터넷 관리 권한이 상속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디지털 유산 처리 관련법이 무산됐다. 사망자 개인의 프라이버시, 사망자와 메일을 주고받은 제3자의 사생활 보호, 사망자가 남긴 글이나 사진의 재산권 인정 여부, 상속으로 인정할 경우 상속 범위 등이 해결되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전향적인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에서는 2005년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한 병사의 아버지가 야후를 상대로 아들의 이메일 계정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송에서 이겨 이후 미국에서는 친족에 대해선 열람 권한을 인정해주는 판례로 자리 잡았다.

이미 미국에선 IT서비스를 가입할 때 유언처럼 사후에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정해 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이미 2011년 초 ‘당신이 죽었을 때 사이버 공간에서 해야 할 일들’이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관련법 제정 논의로 뜨겁고 미국에서는 레거시 로커(Legacy Locker), 시큐어 세이프(Secure Safe) 등 디지털 유산을 처리해주는 민간 기업도 생겨나는 등 신규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다.

포털 업계 관계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2008년에 이미 네티즌 한명 당 평균 49.68개의 아이디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을 정도로 이용 규모가 방대한데 우리만 논의가 더딘 점은 반성해야 한다”며 “우리도 이제 법적, 제도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디지털 유산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류정일 기자/ry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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