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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꼴찌반란 이끈 김호철의 ‘힐링 리더십’
인수기업 없는 프로배구 드림식스
“나보다는 팀이 살아야한다…”
감독부임 후 선수들 체질개선
삼성 등 꺾는 이변 주인공으로
새주인 찾기 마지막 꿈을 향해 전진



올시즌 배구팬들은 꼴찌팀의 반란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벌써 2년째 주인없이 연맹(KOVO) 살림에 기대고 있는 데다 전임 감독에 항명해 분위기마저 어수선했던 팀. 성적? 예상대로 시즌 개막 후 8전 8패. 그런데 ‘맡아놓은 꼴찌’라고 여겼던 팀이 한 달 전부터 맹렬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거함’ 삼성화재와 대한항공을 연파했고 현대캐피탈을 두 번이나 이겼다. 최근 7경기에서 무려 6승1패. 이 유쾌한 반란 뒤엔, 특유의 호통 대신 따뜻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어루만진 감독이 있었다. 김호철(58·사진) 러시앤캐시 드림식스 감독. ‘버럭호철’에서 ‘힐링호철’로 변신한 김 감독을 최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만났다.


▶드림식스가 달라졌다=“우리 다미(외국인선수)가 펄펄 나네, 날아.” 이틀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낸 뒤 맞은 첫 훈련. 김호철 감독의 입에선 연신 칭찬의 말이 쏟아진다. 감독의 칭찬이 날개라도 되듯 힘껏 점프해 공을 때리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가볍기만 하다.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던 눈빛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김호철 감독은 “작년 10월 처음 와서 선수들을 만났는데 큰일났다 싶었다. 말이 선수지 이건 선수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체중과의 전쟁’. 전임 감독과 갈등으로 여름 훈련을 거의 하지못한 터라 선수 대부분이 평균 7~8kg씩 불어있던 상태였다. 김호철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의 피지컬 트레이너 안드레아를 급히 불렀다. 입에서 단내나는 지옥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2단계 작업은 ‘멘탈 바꾸기’.

“선수들이 착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내 옆에 있는 동료가 어떻게 하든 말든, 팀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해서 다른 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래서 ‘나’가 아닌 ‘우리’가 잘돼야 한다, 누가 봐도 저 팀을 인수하고 싶도록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따끔하게 얘기했죠.”

처음 맛보는 엄청난 양의 훈련이었지만 선수들 얼굴에선 오히려 웃음이 피어났다. 간판센터 신영석은 “감독님 오시고 사흘만에 훈련이 즐거워졌다”며 웃었다. 하지만 개막 후 8연패를 하면서 선수들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당황한 건 감독도 마찬가지.

‘컴퓨터세터’로 현역시절부터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김 감독에게 8연패는 처음 받아본 낯선 성적표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20패를 해도 상관없다”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지난 12월8일, KEPCO를 3-0으로 꺾고 고대하던 시즌 첫승을 거뒀다. 이어 감독의 친정팀 현대캐피탈을 제압하고 난공불락 삼성화재마저 꺾으면서 ’문제구단’ 드림식스는 한 달 만에 ‘파란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했다. 


▶호랑이감독이 부드러워진 이유=지난 2003년 늦가을. 16년 간의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현대캐피탈에 부임한 김 감독을 만나러 갔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배구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중흥기 때 떠나 최악의 침체기에 돌아왔다.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을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갚아나가고 싶다”고. 그는 공교롭게도 10년 만에 비슷한 말을 했다.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듯, 천하의 김호철 감독이 최악에 놓인 팀을 주저없이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묻자 그는 “배구선배로서 어려운 상황의 후배들에게 뭔가 도움이 돼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10년 전 흘려 들었던 그의 친정 복귀 소감이 공연한 말이 아니었나 보다. 그럼 두번째 질문. ‘호랑이 김호철’은 왜 이렇게 갑자기 부드러워졌나.

“현대캐피탈 지휘봉을 놓고 1년 간 방송해설을 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코트 밖으로 한 발 물러나보니 몰랐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아, 내가 이제까지 했던 강공책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구나. 때로는 부드러움도 필요하구나.’ 마침 그 때 이 팀으로 오게 됐죠. 그런데 선수들이 너무 소외돼 있고 아픔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상처를 치유하는 게 첫번째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는 선수들을 안아주다 보니 자신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라며 껄껄 웃었다.

하지만 마냥 물렁해진 것만은 아니다. 현대캐피탈에 두 번이나 이기고 나서 현대 선수들이 옛 스승에게 “축하한다”는 전화를 하자 그는 대뜸 호통부터 쳤다. “너희들 그렇게 해선 안된다. 어느 팀이든 방심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열혈남아’의 불같은 성격은 여전했다.

14일 현재 드림식스의 성적은 6승9패(승점17)로 6개 팀 중 5위. 목표를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고개를 내젓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목표는 하나입니다. 인수 기업이 나타나도록 열심히 뛰는 것.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몸을 던질 겁니다.”

드림식스는 김호철 감독 부임 후 불가능해 보였던 다섯가지 꿈을 벌써 이뤘다. 나에 대한 자신감, 동료에 대한 믿음, 우리에 대한 책임감, 배구에 대한 재미, 그리고 상승곡선을 그리는 팀 성적까지. 부드럽게 변신한 김호철 감독이 올해 안에 새 주인을 맞고 싶다는 ‘드림식스’의 마지막 여섯번째 꿈도 이룰 지 기대된다.

아산=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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