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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20여년 기나긴 불황에도 간식 넘어 끊임없이 진화…라멘 한그릇이 곧 日문화
일본과 라면
‘라멘(ラ-メン)’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라면 역시 기원은 중국의 ‘납면(拉麵ㆍ라미엔)’이다. 1870년대 개항과 함께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밀려든 중국인들이 노점에서 팔던 국수가 라멘의 기원으로 손꼽힌다.

메밀을 원료로 한 ‘소바(そば)’나 발로 밟아 찰기를 높인 밀가루 반죽을 두툼하게 칼로 썰어낸 ‘우동(うどん)’에만 익숙해 있던 일본인들에게 수타 밀가루면을 가늘게 뽑아낸 ‘납면’은 새로운 먹거리로 관심을 받게 된다.

가다랑어를 말린 가츠오부시, 다시마, 조개 등 해산물 기반의 맑은 수프가 일반적이던 소바나 우동과 달리, 중화요리 제작 과정에서 남게 되는 닭뼈ㆍ돼지뼈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라면은 짙은 맛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지나(支那)소바’ 혹은 ‘남경(南京)소바’라는 이름으로 각지로 퍼져나간다.

일본에서 라멘 이름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50년대 후반. 대만(臺灣)에서 태어난 사업가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가 구호물자로 넘쳐나던 밀가루를 이용해 전쟁으로 생활이 피폐해진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만들 수 없을까 방법을 고민하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하게 된다. 

닛신 컵 누들                                                         닛신 치킨 라멘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食足世平)’ ‘세상을 위해 먹는 것을 만든다(食創爲世)’의 철학을 가졌던 그는, 면을 기름에 튀기면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데서 착안해 연구를 거듭한다. 그리고 1958년 오사카(大阪府) 이케다(池田)시의 자택 공장에서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닛신(日淸) 치킨 라멘’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제품이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끌면서 마침내 라멘이라는 이름이 공통어로 정착하게 된다.

이후 닛신의 역사는 곧 라면의 역사다. 일본의 고도성장 속에 다양한 맛의 라멘 수백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라멘을 일본인의 식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식품으로 거듭나게 한다. 1971년 ‘컵 누들’이라는 세계 최초의 컵라면을 내놨고, 우주식 라면을 개발해 2005년에는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가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 스테이션에서 사상 처음으로 라면을 연출해내기도 한다.

한국의 라면이 ‘간식’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일본의 라멘은 훌륭한 한 끼 식사이자 ‘스테미너 식’으로 해가 갈수록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특히 80년대 이후 일본 전국 각지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수많은 라멘 식당들의 공이 크다. 이들은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각 지역의 식자재를 이용한 다양한 맛의 라멘을 세상에 등장시켰다.

일본의 라멘은 흔히 돼지뼈를 고아 만든 하얀 국물의 돈코츠(どんこつㆍ豚骨)라멘, 돈코츠 수프에 일본 된장을 더한 미소라멘, 주로 어패류 기반의 수프에 간장으로 맛을 한 쇼유라멘, 해산물이나 닭을 기반으로 한 맑은 수프의 시오(소금)라멘 등 4가지로 구분된다. 돈코츠라멘은 축산업이 발달한 규슈의 하카다 지역에서, 미소라멘은 삿포로와 아사히카와 등 홋카이도 지역에서 태동했다. 쇼유 라멘은 일본 수산업의 메카인 후쿠시마현 기타카타 지역을 중심으로 일본 동북부에서, 시오라멘은 도쿄의 동북부인 관동지역에서 유명하다.

라멘 산업은 일본이 불황을 겪는 지난 20년간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특히 90년대 이후 일자리를 찿지 못한 많은 젊은 청년들이 일본 정통요리나 서양요리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라멘 가게를 창업하면서 이러한 흐름을 이끌었다. 이들은 매년 참신한 아이디어와 도전ㆍ장인정신으로 라멘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토마토, 고등어, 카레, 크림, 레몬, 커피 등 다양한 소재들이 라멘 속으로 녹아들면서 라멘을 ‘일본의 문화가 모두 응축된 한 그릇’으로 격상시켰다. 수만개에 달하는 라멘 식당의 각기 다른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라멘을 연구하는 전문가, 전문잡지, 방송, 여행상품 등 라멘 관련 산업도 활황을 맞고 있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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