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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시마, 힘겹지만 그래도 웃고 있었다
대지진·원전사태 후 첫 한국 비행기 맞아 들뜬 주민들…수천마리 철새 노니는 이나와시로 호수엔 일말의 불안감도 녹아내렸다
[후쿠시마 현(일본)=최정호 기자] 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 10분 만에 도착한 후쿠시마 국제공항.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 사태 이후 처음으로 도착한 한국발 비행기를 맞이하는 후쿠시마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들뜬 모습이었다.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항과 주차장,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사과를 권하는 주민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에서는 2년 전의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이들에게 서울발 첫 비행기는 ‘죽음의 땅’이 아닌 ‘평화로운 휴양지’라는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지난 2년간의 노력을 평가받는 감독관과도 같았다.

후쿠시마 현은 일본 중부지방에 위치한 농촌 지역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해발 2000m가 넘는 산들 가운데 펼쳐진 논밭과 과수원은 마치 우리 강원도나 충청북도 한적한 농촌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에도시대 번성했던 여인숙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민속촌 ‘오우치주쿠’ 전경. 에도시대 수도로 향하던 지방 영주들은 바로 이곳 숙박지에 머물렀다고 한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전통 여인숙 건물은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식당과 편의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 도쿄에서 차로 약 5시간 거리에 있는 후쿠시마 현은 높은 산을 이용한 골프장과 스키장, 그리고 산등성이와 계곡마다 크고 작은 온천지로 유명한 곳이다. 약 150년 전 불꽃을 뿜어냈던 반다이산이 만든 선물이다. 또 봄부터 겨울까지 벚꽃에서 복숭아, 딸기, 사과 등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과일이 넘쳐난다. 인천발 후쿠시마행 비행기가 2년 전까지 한 손에는 골프채나 스키를, 다른 손에는 가족들의 손을 잡은 가족단위 우리 관광객들로 비행기가 만석을 이뤘던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2010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파괴 등은 모든 것을 바꿔놨다. 관광객들이 탔던 버스는 자원봉사자들이, 맛 좋은 과일과 신선한 야채, 쌀을 실어 나르던 트럭은 복구물자가 대신했다. 그나마도 후쿠시마 해안가에 있는 원전의 방사능 유출 우려에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 관광객마저도 줄어들었다.
후쿠시마는 일본에서 세 번째로 넓은 현으로 곳곳에 크고 작은 온천들이 있다. 사진은 구누기다이라 온천호텔의 노천탕 전경.


현지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동일본 대지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내국인 가족, 또는 학교 단위 관광 수요는 큰 변화가 없지만, 관광단 구성원의 숫자는 전반적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후쿠시마를 돕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 등의 노력에 일본인들의 수학여행 또는 가족 단위 관광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불안감을 완전히 벗어버리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우리 여행 업계가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 수치, 완벽하게 예전 모습을 되찾은 관광지와 온천 시설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후쿠시마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이런 일말의 불안감은, 그러나 화산이 만든 또 하나의 걸작 ‘이나와시로 호수’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둘레만 60㎞가 넘는 일본에서도 네 번째로 큰 이 호수의 겨울 풍경은 수천마리의 철새, 그리고 철새들과 함께 뛰노는 어린아이들이 함께 만들었다.

멀리 도쿄에서 연말 연휴를 이용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불과 2년 전 대지진의 아픔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민속촌 ‘오우치주쿠’ 내 한 신사 앞에서 젊은 커플이 두 손 모아 소원을 빌고 있다.

온천장, 스키장, 골프장 가는 길 이곳저곳에 펼쳐진 관광지도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멋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에도시대 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도쿄까지 먼 길을 떠났던 사무라이들이 피곤함을 풀었던 여인숙 마을인 ‘오우치주쿠’에서 맛본 라멘, 영주가 살던 ‘쓰루가성’ 앞에서 먹는 일본식 두부 요리는 가족 관광의 맛과 멋을 더했다. 눈 쌓인 노천 온천에서 함께하는 지역 별미 사과, 복숭아 등으로 만든 맑은 술은 후쿠시마 여행의 덤이다. 휴식과 사계절 레저에 별미까지 더해진 최고의 가족 관광지로 후쿠시마를 손꼽는 이유다.

사토 유헤이 후쿠시마 현 지사는 “후쿠시마 현 내에서도 원자력 재해로 출입이 금지된 구역은 극소수”라며 “후쿠시마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지역민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우리를 향해 환영의 손을 내밀었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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