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원경선<사진> 풀무원농장 원장은 한국 유기농업의 기틀을 닦은 ‘유기농 대부’로 통한다

원 원장은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아버지를 여의면서 농군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전쟁 등의 풍파를 겪은 후 40세 되던 해, 생명이 살아 숨쉬는 농업 공동체를 꿈꾸며 1955년 경기도 부천에 땅 1만평을 개간한 것이 풀무원농장의 시작이 됐다.

대장장이가 쇠를 달굴 때 풀무를 사용하듯, 사람도 농사일로 풀무질 해 쓸모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게 원 원장의 창립 이념이었다. 이후 그는 1976년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긴 후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법을 시작하면서 한국 최초의 유기농민단체인 정농회를 설립했다.


풀무원농장 초기부터 오갈 데 없는 이들까지 품어 안으며 농업 공동체를 시작했던 그는 기아와 전쟁, 공해 등으로부터 인류와 환경을 보호하자는 주장을 직접 실천으로 보여줬다. 1989년에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에 초석을 마련했고, 아프리카 기아 현장에서 구호활동에도 나섰다.

그는 땅의 양분이 작물을 자라게 하는 것처럼 교육이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고 믿으며, 뚝심있는 농부이자 교육가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1961년부터 경남 거창고등학교의 이사장을 맡으며 열린교육을 실천해왔다. 군사정권 시절 교육계와 마찰을 빚으며 학교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3번이나 겪었지만 “타협하느니 차라리 학교 문을 닫는게 학생들에게 인격적으로 바른 교육이 된다”며 버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92년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세계환경회의에 참석, 한국식 유기농 실천운동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후 경실련 산하기구로 시작한 환경개발센터의 초대 이사장을 맡아 환경과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직접 실행하며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2004년부터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새로 일군 풀무원농장으로 거처를 옮기고 인근에 평화원 공동체를 세워 공동체 운동을 지속했다.

그는 유기농을 통해 환경보호와 보존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녹색인상, 1995년 유엔 글로벌 500상,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 원장이 1981년 창업한 풀무원은 30여년의 세월을 보내며 현재 연 매출 1조5000억원이 넘는 한국 대표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풀무원은 원 원장이 평생 실천해온 이웃사랑과 생명존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북 괴산에 있는 풀무원 연수원인 로하스 아카데미 내에 원경선 원장 기념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도현정 기자/kate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