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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신달자 시인,“엄마에게 아들은 타자지만 딸은 나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미안해, 고마워. 딱 두 마디면 돼요. 독한 말로 상처를 주고 아픈 곳을 무자비하게 할퀴지만 금세 돌아서 끌어안고 우는 관계가 엄마와 딸이에요.”

이 시대 ‘여자들의 멘토’ 신달자 시인이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의 이름으로 45년을 살아낸 뒤에 얻은 엄마와 딸의 실체다.

못 배워서 딸만은 꼭 배우게 해주겠다며 이를 악물고 삶과 투쟁하던 엄마들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시절엔 그랬다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요즘 자신만만 신세대 여성도 왜 엄마를 생각하면 철철 눈물을 흘려대는 걸까. 왜 여자들은 ‘엄마’라는 한 마디에 가슴이 무너지는 걸까.

통절한 자기고백적 이야기로 뭇여성의 공감을 얻어온 시인은 최근 펴낸 에세이 ‘엄마와 딸’(민음사)을 통해 엄마의 가슴에 못박은 일 하나하나를 열거하며 “다음 세상엔 꼭 내 딸로 태어나라”고 말한다. 엄마와 딸 사이는 정신적ㆍ육체적 통증에다 영혼의 통증까지 갖춘 관계라는 것이다.

시인은 사춘기 들면서 그냥 엄마가 싫었다. 엄마가 교양없이 욕하는 것도, 쪽진 머리도 싫었다. 미우면 다 싫다고 엄마가 하라는 것마다 퉁퉁거리고 가슴에 못을 박았다.

30대 중반, 어느날 엄마가 집에 찾아왔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풍경이 집에 가득했다. 엄마는 울먹였고, 시인은 빨리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대문 앞에서 만원을 주머니에 넣어드리며 택시타고 가라고 했지만 엄마는 다시 넣어주며 옥신각신이 이어졌다. 시인은 돈을 길바닥에 던지고 들어온다.

“그 만원짜리 한 장을 거리에서 허리를 굽혀 주웠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뼈가 저리다. 그 만원 한 장을 길에서 줍게 한 이 못난 딸을 엄마는 먹이지 못해 안달을 했던 것이다.”


경남 고향에 머물고 있는 시인은 전화 인터뷰에서 엄마와 딸의 이 치열한 관계는 다름아닌 엄마에게 ‘딸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들은 엄마에게 연인이지만 딸은 나예요. 나의 분신인 거죠. 그래서 어리석게 행동하거나 못마땅하면 그냥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거예요.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고 결정적으로 간섭하게 되는 거죠.”

시인은 김수현 드라마의 인기도 이런 엄마와 딸의 관계에 있음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이의 드라마를 보면 꼭 못된 딸이 나오잖아요. 엄마는 울면서 ‘저년, 저년’하고 말이에요. 누구나 겪는 일이기 때문에 공감이 큰 거죠.”

언젠가 시인은 대학 강의 때 여학생만 모아놓고 엄마에 관한 심정을 써보도록 했다. 시대에 따라 엄마와 딸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건 오늘의 여성의 모습을 바로 보는 일이기도 했다.

상황은 의외였다, 당초 예정한 두 시간을 넘겨 무려 여섯 시간에 걸쳐 학생의 토로가 이어졌다. 엄마와 딸은 변한 게 없었다. 할말 다하는 디지털 시대의 여대생에게도 아프지만 그냥 참으며 숨기고 있던 엄마의 얘기가 쏟아져 나왔고, 모두 아파하며 울었다.

“엄마는 내 구두와 같다. 내가 가는 방향을 가느라 구두는 말없이 낡아가고 해졌다” “중학교 때 강제 정학을 당하고 엄마가 교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빌며 엉엉 우는 모습을 보았다” “밥 먹었니? 엄마는 밥밖에 몰라요. 그것도 싫었어요. 엄마를 생각하면 화낸 기억밖에 없어요. 아마 내 딸에게 이렇게 당할 것 같아요”(학생들의 이야기 중)

시인은 모든 현실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딸의 변함없는 애증관계는 아들을 타자로 인식하는 것과 달리 딸은 나의 투사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엄마의 집요함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엄마에게는 누구나 부러뜨릴 수 없는 대나무가 있어요. 그런게 꺾이고 꺾이면서 늙는 거 같아요.”

시인은 엄마를 생각하며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알아주지 않았던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한다. 또 딸에게는 시험치고 오면 “잘 쳤느냐”고만 하고, 그 아이 입장에서 손잡아 준 게 없다며 미안해했다.

합리적이고 쿨한 ‘스칸디맘’의 세상이 와도 엄마와 딸의 질기고 깊은 아픔은 이어질까. 시인은 아직은 먼 얘기라고 했다. 아픔, 애틋함, 나보다 잘되길 바라는 바람과 믿음은 모성성의 본질인 까닭이다.

시인은 그런 “모성성이 이 아픈 시대에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meelee@heraldcorp.com

[사진제공=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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