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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인 이름 불러주니 형처럼 따르네요”
서울 영등포역전파출소 ‘노반장’ 정순태 경위
“술먹지 말아라, 씻고 다녀라”
잔소리 해도 싫은내색 안해

아픈 노숙인 직접 병원으로
건강서 개인 고민까지 챙겨

추운날씨 동사할까 늘 걱정


“노숙인들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또 ‘밥 먹었냐’ ‘아픈 데는 없냐’ 사소한 거라도 묻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가족이다 생각하고 도와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노반장’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정순태(51) 경위는 ‘노반장(노숙인들의 반장)’으로 통한다. 서울 영등포역전 파출소에서 근무하면서 지난 2010년 6월부터 노숙인을 전담한 이후 붙은 별명이다.

정 경위는 거리질서 유지 업무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노숙인들의 상담사 역할을 하며 해결사 노릇을 하는 데 앞장선다. 때문에 노반장을 아는 노숙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파출소에 들러 제일 먼저 그를 찾는다.

“간밤에는 화장실에서 자다가 쫓겨났다며 억울하다고 파출소를 찾아온 노숙인도 있었어요. 먼저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나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에서 자면 안 된다고 타이르니 ‘알겠다’고 수긍하더라고요. 노숙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로 다가가는 게 우선이죠.” 


정 경위는 겨울 한파 때문에 최근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리 추워도 밖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이 여전히 50~60명에 이른다.

“쉼터에 들어가라고 잔소리를 해도 ‘술’ 마시고 싶어서 거리 생활을 고집하는 노숙인들이 있어요. 술에 취해서 영하의 날씨에 거리에서 동사(凍死)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크죠.”

그는 요즘 노숙자들을 만나면 “술 먹지 말고 추우니까 쉼터 가서 자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추워도 깨끗하게 씻고 다니라’는 잔소리 한마디도 덧붙인다. 또 아파보이는 노숙인을 발견하면 병원에 보내기도 한다.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정 경위에게 짜증을 내거나 공격적으로 대하는 노숙인은 없다. 그만큼 ‘형님ㆍ아우’ 하며 속내를 터놓고 지낸다.

요즘같이 추운 때 노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그는 “겨울철 노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신발’”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데 이렇게 추운 날씨엔 동상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안 신는 신발이 없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봤더니 언제부턴가는 말 안해도 지인들이 신발이며 옷가지를 보내주더라고요. 노숙인들에게 깨끗하게 입고, 신고 다니라고 나눠줍니다.”

오랫동안 노숙인들을 지켜봐 온 정 경위는 결국 노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활 의지’라고 강조했다.

“금전적인 지원을 해준다 해도 술 마시는 데 써버리는 등 역효과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무엇보다도 어떤 일이든 일을 할 수 있는 ‘자활 의지’가 중요하죠. 저를 믿고 따라주는 노숙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와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유진 기자/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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