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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따뜻함…희영 첫 정규 앨범 ‘포 러브(4 luv)’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희영(HeeYoung)의 첫 번째 정규 앨범 ‘포 러브(4 Luv)’는 발매된 지 몇 계절 지난 앨범이다. 이 앨범은 지난 봄 발매 당시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인디, 그것도 미국 뉴욕 인디신에서 활동하는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이 한국 인디 레이블(파스텔뮤직)을 통해 발매됐다. ‘인디’ 위에 겹친 ‘인디’가 한두 개가 아니다. 게다가 앨범 발매 후 희영은 짧은 국내 활동을 마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묻히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2011년 EP ‘소 서든(So Sudden)’으로 일부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지만 그 관심이 정규 앨범까지 집중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이 앨범을 말하는 이유는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많은 정서가 한 앨범 속에서 서로 반목하지 않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흔한 듯하나 흔하지 않은, 우울하나 우울하지 않은, 소박하나 소박하지 않은… 이러한 말장난 같은 표현 외엔 앨범의 정서를 따로 설명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 난감하나, 희영의 ‘포 러브’는 분명히 그런 앨범이다. ‘포 러브’는 홍대 인디신의 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지향하는 포크 팝과 가까우면서도 미묘하게 멀다. 한 겨울 벽난로 옆 테이블 위 커피 한 잔이 떠오르는 앨범이다. 벽난로와 커피 모두 이국적이지만 낯설지 않은 소품들이다. 이 같은 감성은 미국 현지 프로듀서 및 세션의 참여로 앨범이 완성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사춘기를 보낸 희영의 개인사를 들여다보지 않고선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파스텔뮤직 에세이북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의 ‘공간과 공간 사이에서 헤매다’란 챕터엔 희영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희영이 미국으로 건너간 때는 16살,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홀로 미국으로 건너간(이유는 실려 있지 않다) 희영이 정착한 곳은 남부 조지아 주의 시골 마을이었다. 집 주위를 둘러싼 것은 광활한 목화밭이었다. 희영은 에세이에서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만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처음 한 달 동안은 천국었는데 점점 지루하고 외로워지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인터넷도 TV 시청도 할 수 없는 곳에서 희영은 집 안의 낡은 피아노에 눈을 돌렸다. 그때부터 창작이 시작됐다. 사람의 감수성이 가장 풍부하게 쌓이는 민감한 시기를 희영은 그곳에서 보냈다. 앨범 재킷에 담긴 말 그대로 ‘컨트리(Country)’를 연상시키는 풀 마른 들판과 LP모양으로 제작된 CD는 우연이 아닐 터이다.

앨범은 타이틀 곡 ‘4 Luv’를 비롯해 총 13곡을 수록하고 있다. 이중 2곡은 ‘4 Luv’와 ‘Big Knot’을 한국어로 부른 버전이다. 수록곡들은 모두 희영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인디 포크 전반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 앨범이 상투적으로 들리진 않는 이유는 익숙한 듯하지만 신선한 멜로디 전개 때문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로 잔잔하게 앨범을 여는 첫 트랙 ‘4 Luv’는 떠나간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곡으로, 촉촉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곡에 애잔함을 더한다. 목소리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4 Luv’의 간결한 악기 편성은 이 곡뿐만 아니라 앨범 수록곡 전반의 특징이다.

뉴욕 생활의 낯설음과 고독을 리버브 먹인 사운드로 몽환적으로 그려낸 ‘Knew Your City’를 벗어나면 다시 조지아로 돌아온다. 씨앗을 들판에 뿌리는 모습을 이별의 치유에 비유한 복고풍 포크 넘버 ‘Buy Myself A Goodbye’엔 희영이 조지아에서 보낸 전원생활의 경험이 곳곳에 녹아있다. 함께 있어도 극복할 수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을 역설적으로 발랄하게 노래하는 ‘Lonely Like Everyone’,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큰 매듭으로 엮어 함께하고 싶은 바람을 담은 ‘Big Knot’, 새처럼 날아 시간을 거슬러 보고픈 사람을 어디서든 만나고픈 마음을 어쿠스틱 기타과 스트링 세션으로 나른하게 표현한 ‘Fly Lo Fly Hi’까지, 앨범 전반부 트랙에서 희영의 보컬은 우울함을 사랑스러움으로 치환하는 절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앨범 후반부 트랙은 다소 우울함의 강도가 높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의 아픔을 조용히 절규하는 ‘Sally Mason’, 조용한 절규를 넘어 직설적으로 비통한 감정을 토로하는 ‘Let Me In’는 록에 가까운 강렬한 사운드로 우울함을 극대화한다. 눈으로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에 함께 있지만 외로운 마음을 어쿠스틱 기타와 스트링 세션으로 사유하는 ‘Winter Road’는 다시 한 번 눈 덮인 겨울 숲과 들판을 펼쳐내며 희영의 음악적 밑바닥 정서를 일깨운다. 나지막한 남성 보컬을 이색적으로 곁들인 마지막 트랙 ‘Call Your Name’은 사람으로 상처받고 아파도 결국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은 사람과의 소중한 인연이란 희망적인 메시지를 가스펠 풍의 멜로디로 남긴다.

조지아의 ‘크리스틴’은 뉴욕에서 본명 ‘희영’을 되찾았다. 앨범의 정서가 이국적이면서도 낯설지 않았던 이유 또한 시선의 끝은 항상 고국으로 닿아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음악은 결국 음악을 하는 사람이 태어나 발붙이고 살았던 땅을 닮기 마련이니 말이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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