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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ㆍ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희망으로 만든 커피ㆍ빵, 맛보실래요?”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18일. 임시공휴일 전날이라 바깥 분위기는 다소 들떠 있었지만, 서울 방학동 아름다운가게 2층 ‘세움카페’의 네 직원은 평소와 다름 없었다.

항상 웃음으로 손님을 맞는 이가영(24ㆍ여) 씨는 홀에서는 서빙을, 주방에서는 설거지를 책임졌다. 카페의 ‘왕누나’이자 ‘왕언니’이면서 섬세한 성격의 김정애(26ㆍ여) 씨는 생과일주스와 고구마라떼 등 비(非) 커피음료를 만들었다.

두 명의 바리스타, 이세미(25ㆍ여) 씨와 임사인(24) 씨도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임씨가 각종 커피를 만들어 내면 이씨는 임씨 옆에서 커피 위에 생크림과 초콜릿 등 각종 장식을 얹었다.

그날 카페는 큰 문제 없이 돌아갔다. 손님에게 주문을 받고 커피 등을 만들어 다시 손님에게 내기까지 과정에서 있었던 약간의 느림과 서투름을 제외하면.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모두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김정애 씨와 임사인 씨는 발달장애인(자폐증), 이세미 씨와 이가영 씨는 지적장애인이다. 하지만 이들은 철저한 ‘분업’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었다.


카페 안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커피 향기와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어우러져 후각을 자극했다. 빵과 과자는 이들 카페 직원들을 낳고 키운 어머니들이 만든다.

이들은 카페의 산파(産婆)를 자임했다. 3년여동안 이들을 훈련기관으로 보내 바리스타로 훈련시키는 한편 직접 카페를 세우기 위해 사회적기업 법인을 설립하고 주위 도움과 본인들의 자력(自力)으로 카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

어머니들은 상대적으로 ‘느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가사에 집중해왔던 터라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만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수 차례 해봤다. 이럴 때마다 이들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김정애 씨 어머니인 윤경희(55ㆍ여) 세상을움직이는힘 대표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평생 일자리를 만들어 주자는 생각으로 우리(어머니들)가 뭉쳐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세상을움직이는힘은 ‘세움카페’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법인이다. ‘세움카페’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이들은 작지만 굳은 의지로 시나브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가드레일로 뛰어들까 고민도…”

김정애 씨는 또래보다 성장이 느렸다. 두려움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고 찻길에 뛰어들고 하는 행동을 자주 했다. 수영을 배울 때는 “헤엄을 치겠다”며 중랑천에 뛰어들기도 했다. 한 가지 일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 했다.

윤 대표는 “정애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정애를 보고 혹시 자폐 증세가 아니냐고 하더라”며 “선생님에게 화를 냈지만 겁이 났다. 서울대병원에 갔더니 유사 자폐 진단이 나왔다”고 회고했다.

윤 대표는 그때부터 조금이라도 딸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위한 각종 교육과 훈련에 매달렸다. 대기업 직원이어서 다소 여유 있었던 남편 월급은 고스란히 딸에게 들어갔고, 대신 생활은 남편 상여금으로 했다.

“당시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드물어서 수영에만 월 50만원이 나갔어요. 지금까지 정애한테 4억(원) 정도 들어갔을 거예요. 그러다 ‘내가 왜 이래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차를 타고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가는데, 고속도로 가드레일이 보이더군요. 정애를 안고 뛰어내릴까 고민했죠. 어떡해야 (같이) 완벽하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윤 대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을움직이는힘 주주이자 이가영 씨 어머니인 김정옥(49ㆍ여) 씨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살던 시부모님은 “우리 손녀는 늦된 아이”라며 모든 것이 느렸던 아이를 걱정하던 김정옥 씨를 위로했다. 하지만 돌이 지나도 아이는 걷지 못했다.

“15개월 정도 지나도 마찬가지였죠. 재활원에서 일하시는 동네 분이 보더니 ‘이상하다’ 하시던 거예요. 병원에서 지적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절망이었죠.”

김정애 씨와 이가영 씨는 모두 일반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다행히 대부분 착했던 친구들은 김씨와 이씨를 보살폈지만, 이들은 장애 때문에 겉돌기 시작했다.

김정옥 씨는 “가영이는 근육이 약하고, 무서움을 많이 탄다”면서 “특히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어려워 했다.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우면 한 발짝도 못 딛을 정도로 겁이 많아 학교 다닐 때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정애 씨와 이가영 씨는 특수학교인 서울정인학교를 졸업한 뒤 도봉구립보호작업장에서 날마다 오전 9시~오후 6시 조립 등 단순노동을 했다. 그나마 근육이 약한 이가영 씨는 일도 못 하고 앉아있기만 했다.

윤 대표는 “그때 아이들 월급이 7만원 밖에 안 됐다. 작업장 같은 곳은 길어야 6년 밖에 다닐 수 없으니, 더 크면 아이들은 복지관 같은 보호시설로 갈 수 밖에 없다”며 “아이들을 위한 평생직장을 만들어주자고 한 것이 ‘세움카페’ 설립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아이들 위해 6개월만에 ‘제과ㆍ제빵 자격증’

‘세움카페’ 네 직원의 어머니들이 도움을 받은 곳은 장애인 복지관인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이하 복지관)이 운영하는 청년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인 장애우두레비전학교(이하 학교)였다.

비장애인 대학생과 20대 장애인이 일대일로 멘토-멘티 관계를 맺어 토요일마다 ▷사회 적응 ▷사회성 ▷직업예절 기본 ▷관계 증진 훈련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세움카페’ 네 직원도 2008년 학교 12기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네 직원의 어머니들도 이때 만났다.

윤 대표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며 “또래 청년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이들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고 고 떠올렸다.

아이들의 상태가 좋아진 데 고무된 어머니들과 복지관 측은 학교 12기생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직업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복지관의 장애인 프로그램 담당자였던 강미경(46ㆍ여) ‘세움카페’ 매니저는 “아이들 상태를 보니 바리스타 교육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장애인 공동체 개념으로 어머니들과 카페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2년동안 직업 적응 훈련과 바리스타 교육을 같이 받았다. 김정애 씨는 생과일주스를, 이세미 씨와 임사인 씨는 커피를 정확한 비율로 만드는 방법을 익혔다.

제일 힘들었던 사람은 근육이 약해 커피 등을 만드는 대신 서빙을 맡게 된 이가영 씨였다. 이씨는 얕은 산 다니기, 계단 오르내리기, 바가지와 냄비에 물을 가득 받아 쏟지 않고 운반하기 등의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어머니들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빵이나 과자를 같이 만들어서 커피를 파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생각으로 제과ㆍ제빵 기술을 배웠다. 특히 김정옥 씨는 지난해, 6개월만에 제과ㆍ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카페의 베이커리 총괄 담당이 됐다. 2009년 서울 도봉구에서 ‘골목 대장터’라는 이름의 바자회를 여는 등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창업자금 1300만원도 모았다. 

주변 도움도 컸다. 우선 복지관은 재정ㆍ행정ㆍ교육 프로그램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내부 테이블과 의자는 복지관의 예술문화활동 프로그램 수강자들이 만들어줬다. 아름다운가게도 건물 2층을 싼 값에 임대해줬다.

인근 주민들과 학교의 대학생 멘토들은 1만~10만원짜리 ‘세움카페 증권(월 1회 커피 2잔 무료제공)’을 구입, 주주가 되며 후원자를 자청했다. 이들의 이름은 카페 벽면 나무조각들에 새겨져 있다. 이렇게 해서 카페 창업 필요 자금 2000만원이 모일 수 있었다.

SK그룹 임직원 재능기부 자원봉사단 ‘SK프로보노(pro bono)’의 도움도 컸다. 전담 프로보노 2명이 경영, 세무, 판매 등에 대한 전반적인 경영 컨설팅을 했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다른 사회적기업형 카페 견학도 주선했다. 국민대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카페 로고와 간판을 새로 디자인하도록 돕기도 했다. 



#“카페 지점 늘려 어머니들에게 도움 주고파”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지난해 3월 문을 연 ‘세움카페’는 개점 2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학교 16기 장애인 3명과 어머니들이 서울 창동 창동역 인근에 세우는 카페 2호점도 내년 3월 오픈 예정으로 작업이 한창이다.

그 사이 ‘세움카페’ 네 직원도 밝아졌다. 걷기조차 힘들었던 이가영 씨는 건강이 부쩍 좋아졌고 개점 초기 있었던 실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어머니 김정옥 씨는 “이제는 가영이가 집에서도 카페에서처럼 설거지를 도맡아 할 정도”라며 웃었다. 발달장애로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임사인 씨는 손님들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포즈를 취해준다.

이들이 월급(50만원 가량)을 받으며 ‘생활인’이 된 것도 수확이다. 윤 대표는 “정애가 ‘돈을 번다’며 대학생 오빠에게 용돈을 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제 카페는 장애인 부모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됐다. 전국에서 카페를 보러 부모들이 몰린다. 부산의 한 장애우 부모회는 단체로 버스를 빌려 상경했을 정도다. 덕분에 카페는 이들 장애인과 부모를 위한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카페 착근(着根)을 위한 어려움은 여전히 산재해 있다. 카페는 아름다운가게 내 계단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구조여서, 가게가 폐점하는 평일ㆍ토요일 오후 6시 이후와 일요일ㆍ공휴일에는 문을 닫아야 한다.

몸에 좋은 먹거리를 위한 욕심 때문에 원가 부담이 큰 것도 부담이다. 카페는 공정무역 커피, 유기농 계란, 우리 밀ㆍ쌀 등을 양질의 재료를 쓰지만, 아메리카노 한 잔이 2500원일 정도로 저렴하다. 때문에 카페는 아직 적자를 면치 못 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서울 도봉구청에서 ‘마을기업’으로 선정돼 보조금으로 연 5000만원을 받았지만, 내년에는 이마저도 끊긴다. 카페는 고용노동부에 사회적기업 지정 신청을 하고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윤 대표는 “카페를 잘 키우고 매출도 올려서 우리 아이들을 위한 행복한 일자리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잘 되면 3, 4호점으로 늘려, 같은 아이를 둔 어머니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화(070-4251-4264)나 홈페이지(cafe.naver.com/cafeseum)를 통해 ‘세움카페’ 어머니들의 뜻에 동참할 수 있다.

신상윤 기자/ken@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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