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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힐링 하우스’ 신한옥 <9> 서민 신한옥의 터 잡기, 보기 좋은 곳 ‘NO’ 살기 좋은 곳 ‘YES’
조선 후기 실사구시 학풍의 대표적 실학자인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전국을 돌며 지리·사회·경제를 연구하여 저술한 택리지(擇里志)에서 ‘주거지로 선택하는 땅은 먼저 지리(地理)를 고려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생리(生理), 그 다음에는 인심(人心)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산수(山水)를 고려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결핍되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이를 그대로 적용해 최상의 집터를 찾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4%가 임야이고 논 12%, 밭 8%, 도로 3%, 대지 3%, 그리고 하천·호수 등 기타 13%로 구성되어 있다. 산 밑에 밭이 있고, 밭과 논의 경계지역에 길이 있다. 논 다음에는 강이나 하천이 있는 경사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강가에는 토질이 좋은 충적토라 벼농사에 적당하지만 습기가 많고 지반이 약해 건축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벼농사를 많이 하는 동남아 지역에서도 논 가운데는 집을 짓지 않는다. 과거에는 밭과 논 사이에 집을 많이 지었으나 최근에는 밭과 임야 사이에 건축하는 것이 조망권 등에서 유리하다.

서민 신한옥은 우리 나무와 황토가 널린 전국 곳곳 어디에서든지 쉽게 지을 수 있다. 다만, 나무는 최소한 1~2년의 건조 과정을 거쳐야 하고, 미리 설계에 맞춰 필요한 규격으로 가공해야 하기 때문에 건축공사현장에서 목재를 치목하기 보다는 전기·기계설비와 목재가 있는 공장 가공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의성군 금성면 금성산~비봉산 인근에 들어선 전통 한옥마을

하지만 흙(황토)은 대부분 현지에서 바로 조달한다. 당연히 건축비용 또한 크게 절감된다. 집터 역시 이것저것 따지기 보다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거뜬하게 짓는다. 집터의 경사가 심하거나, 지방 등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해도 쉽게 지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지붕재료인 너와나 40㎝ 크기의 통나무벽돌은 크기가 작고 차량을 이용해 운반하기 쉽다. 장재를 사용하던 기존 전통한옥 보다 경사지고 좁은 터에서도 한결 수월하게 건축 공사를 할 수 있다.

#자연에 순응하고, 명당에 들어선 옛 한옥마을들

그렇다고 나와 가족의 안식처인 집터를 아무데나 잡을 수는 없는 법. 한옥 터 잡기와 관련, 먼저 한옥마을 형성의 역사를 살펴보자.

안동 하회마을 등 전국의 한옥마을을 살펴보면 주변의 지세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즉 마을이 기존의 산이나 강 등을 훼손하지 않고 이에 순응해 들어서 있다. 그러면서 자연의 힘이 모이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옥의 입지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풍수이론이다. 풍수에서는 특정 조건을 갖춘 지역에는 땅의 생명력이 더 많이 응집되어 있다고 하며, 이를 명당이라고 한다. 풍수이론은 크게 산맥의 산세를 보는 형세론, 집이 앉을 자리의 형태를 살피는 형국론, 집이 바라보는 방향을 잡는 좌향론으로 나뉜다.

 
나무와 황토로 짓는 서민 신한옥의 건축 공사

경주 양동마을에 가보면 주변 자연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데, 이는 풍수이론에 근거해 집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의 터는 집을 지을 때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명당이다.

 근대화 이전의 마을은 가족생활과 농업생산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동체였다.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씨족마을은 조선시대에 크게 증가했다. 씨족마을의 주거지는 논과 밭의 경계 지점, 즉 지형적으로는 평탄지가 끝나고 경사지가 시작하는 산기슭, 일조를 위한 남경사면에 위치했다. 씨족마을에서는 풍수지리와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산의 기운이 내려오는 마을의 후면 가장 높은 자리에 종가와 사당을 배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했다. 씨족마을의 사례로는 아산 외암마을, 고성 왕곡마을, 안동 하회마을 등을 들 수 있다.

씨족마을과 구분되는 읍성마을은 해당 군이나 현의 중심을 이루는 객사, 동헌과 성벽, 제사시설, 주변의 농촌마을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시화와 함께 대부분 멸실되었다. 읍성마을의 사례로는 수원 화성, 경주 읍성, 해미 읍성 등이 있다.

1930년대 들어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주택부족현상이 초래되자 한옥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주택업자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큰 땅을 구입해서 여러 채의 한옥을 지어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유리 타일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상품성을 높였다.

이때, 조금씩 개발된 지역은 비정형적인 가지형의 골목을, 한꺼번에 개발된 지역은 정형적인 격자형 골목을 갖게 되었다. 도시한옥마을의 사례로는 서울 북촌, 전주 한옥마을 등이 있다.

#‘보기 좋은 터’가 아니라 ‘살기 좋은 터’를 골라야

기존 한옥이든 서민 신한옥 이든 현재의 전원주택 터 잡기 요령 또한 옛 조상들로부터 그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배산임수 등 풍수가 갖춰진 곳, 자연에 순응하는 곳, 교통이 편리한 곳, 풍광이 좋은 곳, 인심이 후한 곳(텃세가 없는 곳) 등이 그렇다.

 
서민 신한옥 재료인 통나무벽돌

근래 들어 귀농·귀촌이 사회적 트렌드가 되면서 투기 또는 투자 수요가 사라지고 대신 베이비부머(1955~63년생 758만여명) 등 실수요가 시골 땅과 집 시장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집터의 기준 또한 ‘보기 좋은 터’에서 점차 ‘살기 좋은 터’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전원주택 입지로는 산을 감아 흐르는 강변이나 계곡 옆이 1급지로 단연 인기를 끌어왔다. 심지어 햇볕이 들지 않는 북향이나 호우로 인한 범람 및 산사태가 우려되는 곳까지도 마구잡이로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런 집터는 대개 보기에만 좋을 뿐, 살기에는 좋지 않다. 근래 들어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 지진, 쓰나미, 집중 호우 탓에 자연재해가 빈발하고, 그에 따른 인명 피해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자연재해 우려가 높은 곳은 전원주택 입지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의 전원생활은 겨울을 불편 없이 잘 넘기는 게 관건이다. 특히 대표적인 산간지역인 강원도의 경우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이 겨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몹시 춥다. 다른 지방의 산간지역도 겨울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전원주택 터는 겨울 칼바람이 부는 강변이나 계곡 옆 보다는 낮에는 따스한 겨울 햇볕이 종일 들고 바람이 잠잠한 배산임수, 북고남저의 남향(또는 동남향) 터가 좋다. 건강에도 좋고, 난방비도 크게 절감된다. 우리나라 전통 마을의 입지가 대체로 이렇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다.

#지역가치가 높은 곳, 비전있는 마을이 유리

귀농·귀촌의 흐름에서 보면, 전원주택 터를 고를 때는 개별적인 땅 보다는 지역의 가치를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 개별 입지가 아무리 좋아도 주변에 혐오시설이나 기피시설이 들어서 있다면 그 개별 땅의 가치 또한 하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집터를 구할 때는 지역을 먼저 보고, 이후 개별 터로 서서히 좁혀나가는 게 요령이다. 지역의 가치는 고속도로IC, 복선전철역 등 교통이 편리한 곳, 산수가 어우러져 풍광이 뛰어난 곳, 전통과 문화가 숨 쉬는 곳, 교육 및 생활하기 편리한 곳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장점들을 엮어 테마화할 수 있다면 가장 지역가치가 높은 곳이다.

지역 가치가 높은 곳은 또한 비전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 주민 간 단합이 잘 되어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이나 생태마을, 장수마을, 정보화마을 조성사업 등 각종 국가 지원 사업을 따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마을은 농업소득 뿐 아니라 농업외소득을 추가로 창출해 주민 소득이 다른 마을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예비 귀농·귀촌인들은 이런 비전있는 마을, 지역가치가 높은 마을 주변에 집터를 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각종 마을사업과 연계한 소득 아이템을 발굴해 전원생활의 최대 걸림돌인 경제적인 문제 해결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시골정착에도 물론 수월하다.

전원 집터를 잡는데 있어 정부의 각종 귀농·귀촌 지원책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귀농할 경우 집을 신축하거나 매입할 때 최대 4000만원까지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농지나 임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를 매입할 경우에도 최고 2억 원까지 지원해준다. 모두 3%의 저렴한 금리에 5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조건이다.

서민 신한옥 짓기는 터 잡기로 시작한다. 다음에 그에 필요한 용도와 주변 기후에 적합하도록 건물을 설계한다. 이어 건물이 들어갈 자리를 다듬는 기초공사를 하고, 기둥과 보 등 골조를 세운 다음 서까래 등 지붕 부재를 조립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기본 구조가 완성된다. 이후 통나무벽돌과 황토를 이용해 벽체를 완성하고, 창호 데크 등 마감공사를 시행한다. 이후 조경 등 주변 가꾸기로 마무리한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cafe.naver.com/rmnews)

<도움말 주신 분:서경석 신한옥연구소장,부동산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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