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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화균> 얼굴없는 천사, 얼굴있는 천사
대선 최대 화두로 경제민주화가 등장한 데는 총수 일가의 책임도 있다. 올겨울, 개인 기부행렬에 동참하는 ‘얼굴 없는 총수 기부천사’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아니 개인 기부를 내놓고 천명하는 ‘얼굴 있는 천사’라도 좋다.


# 지난 10일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모금액을 집계하던 구세군 관계자는 깜짝 놀랐다. 흰 봉투 속에 편지와 함께 1억570만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봉투는 60세 안팎의 한 남성이 지난 9일 서울 명동의 구세군 냄비에 넣은 것. 편지 속에는 “꼭 어려운 노인분들을 위해 써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에도 명동 구세군 냄비 속에서 1억1000만원짜리 수표가 편지와 함께 발견됐다. 구세군 측은 허술한 맞춤법, 똑같은 필체의 편지를 근거로 기부자를 동일 인물로 추정하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가 2년 연속 거액을 익명으로 기부한 것이다.

# 요즘 헤럴드경제가 입주해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에는 기업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달 26일 가장 먼저 200억원을 냈다. 지난해보다 50억원을 올렸다. 사흘 뒤에는 삼성그룹이 지난해보다 무려 200억원 늘어난 500억원을 쾌척했다. 사랑의 열매의 올 연말연시 성금 모금 목표액은 2670억원. 지난해 2592억원보다 3% 정도 증가한 것이다. 모금회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도 잇따라 성금 기탁을 준비 중”이라면서 “경기가 어렵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마냥 기쁘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난다. 회사가 사랑의 열매 건물에 자리한 덕택에 연말연시면 공짜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특히 기업을 담당하는 산업부장으로서 국가 대표기업들의 이 같은 통큰 기부가 주는 감동은 남다르다. 혹한기를 보내고 있는 다른 기업들도 졸라맨 허리띠를 더 졸라매서라도 기부금 액수를 늘리려 한다는 소식에 고맙기까지 하다. 내일은 또 어떤 기업이 올까, 그리고 모레는? 기대감도 생긴다.

그러나 2% 아쉬움이 남는다. 기업들의 연말 기부금은 대부분 회사의 비용이기 때문. 일부 기업 총수들이 사재를 출연한 적도 있다. 하지만 자발적인 개인 기부는 여전히 드물다. 개인 재산을 스스럼없이 사회에 환원하는 해외 사례는 여전히 남의 나라 일이다.

개인의 기부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구세군 냄비에 2년 연속 거액을 쾌척한 남성, 그리고 돼지저금통을 들고 찾아오는 고사리손… 이들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 기부는 그 파급력이 더 크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의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아너소사이어티에는 올해만 76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들의 얼굴은 드물다.

올 대통령선거의 최대 화두는 경제민주화다. 후보별 편차는 있지만 이 공약은 대기업 총수 일가에 대한 견제로 압축된다. 이를 통해 부의 편법 대물림과 전횡을 줄이고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것이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공세 성격도 띠고 있지만, 적어도 상당수 국민들의 정서 속에 ‘꼭 필요한 공약’으로 자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기업 총수 일가의 책임도 있다. 그런 만큼 기업 총수들의 자발적 해결 노력도 절실하다. 어느 때보다도 더 춥다는 올겨울, 개인 기부행렬에 동참하는 ‘얼굴 없는 총수 기부천사’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아니 개인 기부를 내놓고 천명하는 ‘얼굴 있는 천사’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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