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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경계인 충선왕을 통해 본 국가의 정체성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충렬왕으로 시작해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으로 이어지는 원 간섭기는 고려 역사상 유례없는 암흑기였다. 왕을 교체하고 결혼까지 간섭하는 등 내정간섭의 정도도 심했다. 그 중에서도 고려 충선왕은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시작되기 전까지 암흑기의 한가운데 살았던 비운의 왕이었다.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에 이어 ‘몽골제국과 고려’ 두 번째 시리즈인 ‘혼혈왕, 충선왕’(푸른역사)은 충선왕을 집중 조명했다. 몽골의 지배 아래 원의 힘을 빌려 왕권을 강화한 충렬왕은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의 딸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해 충선왕을 낳는다. 저자는 충선왕에 대해 혼혈왕이란 표현을 쓴다. 지금의 시각에서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부왕 충렬왕의 방탕함에 자주 마찰을 일으켰고, 그의 정책을 부정하며 내정개혁에 힘을 쏟은 충선왕은 즉위 이후 4학사를 핵심 참모로 삼아 개혁을 펼친다. 관제를 개혁하고 인사행정을 바로잡으려 했으며, 권세가의 대토지 소유 등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이들에 의해 왕에서 물러나게 되고 한 임금이 중복해서 왕위에 오르는 중조(重祚)란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원나라 조정에 의해 왕위는 얼마든지 바뀌었고, 충선왕은 부마국 체제 속에서 왕위를 이어간다. 저자는 충선왕을 원 황실의 일원이었으나 동시에 원의 지배 아래 변방의 인물이 된 독특한 삶을 가진 경계인으로 그를 그려낸다. 태생적으로 몽골과 고려 두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선왕과 갈등하고 세자인 아들을 살해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간 인물을 통해 일제 강점기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비쳐보려는 시도다.

가까운 과거였던 35년의 일제 강점기와 달리 왕이 4번이나 바뀌었던 고려시대 원 간섭기는 사람들의 관심과는 조금 멀다. 개혁과 중조, 망명과 유배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원 간섭기 충선왕 읽기는 역사를 바라보는 폭넓은 안목을 제공한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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