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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준 희망가족 여행기<30>’미래’를 현실로 만든 환경도시...브라질 꾸리찌바
[꾸리찌바=이해준 문화부장]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이어 상파울루를 둘러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두 도시 모두 브라질의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보여주었지만 극심한 빈부격차, 취약한 기반시설 등 사회문제가 복합된 만화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내에만 1200만명, 외곽을 포함하면 1900만명을 거느린 남반구 최대도시 상파울루는 론리플래닛의 표현대로 ’괴물(monster)’과 같았다. 몇 개 도시가 합쳐지면서 상파울루 주가 브라질 GDP(국내총생산)의 3분의1을 차지하는 경제와 산업의 중심지로 변모했지만, 도시화의 문제로 신음하고 있었다. 노숙인과 부랑인, 술 취한 사람들이 넘쳐 길을 걸을 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몰려왔다.

’브라질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의문이 몰려왔다. 상파울루를 떠나 꾸리찌바로 향한 것은 그 희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꾸리찌바는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로 한국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브라질과 남미의 ’환경수도’라 부를 만했다. 한국에 멋진 곳으로 알려진 도시를 방문했다 실망한 경우가 많았지만, 꾸리찌바는 그렇지 않았다.

꾸리찌바의 교통혁명을 가져온 원통형 버스정류장. 인구가 170만명을 넘는 대도시임에도 버스를 위주로 한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교통난을 해결하고 이산화탄수 배출도 최소화하고 있다.

▶대도시 시민들의 발, 탁월한 대중교통=꾸리찌바는 인구 176만명의 대도시다. 파라냐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첫인상부터 달랐다. 대도시가 풍기는 불안함이나 빈곤, 불결함, 번잡함보다는 마치 평화로운 유럽 도시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대중교통 시스템이었다. 꾸리찌바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버스 시스템으로 교통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꾸리찌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원통형(튜브) 버스정류장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고, 시민들은 여기에서 버스요금을 내고 들어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했다. 특히 장애인과 어린이, 노약자를 배려하는 장치를 거의 완벽하게 설치해 놓았다.

하루에 200만명이 이용하는 이 시스템은 콜롬비아의 보고타,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 중남미는 물론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필리핀의 세부, 미국 로스엔젤레스(LA)의 오렌지라인 등 많은 도시의 교통 설계에 영향을 주었다. 1974년 이후 꾸리찌바 인구가 배로 늘어나고 1인당 차량대수가 브라질 최고이지만, 교통량이 30% 줄어들었다는 것이 이의 효율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꾸리찌바의 중심거리로 보행자의 천국인 ’꽃의 거리’. 중심도로를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들고, 중앙에 가로수를 심고 벤치를 곳곳에 설치해 주민들이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꾸리찌바 시내는 보행자의 천국이었다. ’꽃의 거리(Rua das Flores)’라는 길이 1km의 긴 보행자 전용도로로,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져다고 한다. 도로 가운데 나무를 줄지어 심었고, 벤치를 곳곳에 설치해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옆에는 상가가 조성돼 ‘천장이 없는 쇼핑몰’이라 할 만했으며 매주 주말에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의 중심이다.

쓰레기 수거 방식도 흥미로웠다.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지상에서 1m 정도 떨어진 거치대를 집 앞에 만들어 쓰레기를 올려놓도록 했다.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되, 차량이 들어가기 힘든 빈민지역엔 쓰레기 집하장을 따로 만들고 재활용 쓰레기를 가져오는 주민에게 과일 등 식품과 버스 티켓을 나누어 주었다. 이에 힘입어 쓰레기 재활용율을 85%까지 높였다.

▶면적의 70%, 녹지로 둘러싸인 정원같은 도시=꾸리찌바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도심 주변과 외곽의 공원과 박물관, 미술관, 오페라 하우스, 전망대 등 25개 지점을 순회하는 버스다. 웬만한 곳은 다 거친다. 27레알(약 1만6000원)을 주고 티켓을 끊으면 어디든 자신이 원하는 곳에 내려 시설을 돌아본 후 다시 버스를 탈 수 있다.

이 투어 버스를 타고 돌아본 곳 가운데 첫째로 첫째 보태니컬 가든이 인상적이었다. 꾸리찌바의 트레이드 마크인 공원으로, 철제구조물로 된 식물원과 잘 조성된 정원이 도시 한복판에 그림처럼 저리잡고 있었다.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을 1991년에 공원으로 조성한 곳으로, 조깅이나 산책하는 사람들, 관광객들,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 학생들이 공원을 즐기고 있었다.

과거 쓰레기장에 만든 식물원 공원 너머로 도심의 고층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꾸리찌바는 전체 도시 면적의 70%가 녹지이며 1인당 녹지면적에서도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두번째 관심을 끈 것은 1991년 세계 최초로 녹색교육을 특화한 환경대학 캐퍼스였다. 꾸리찌바 외곽의 열대우림 속에 있던 채석장을 대학으로 탈바꿈시킨 곳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로 생각됐다. 강의실과 연구실이 들어간 대학건물은 오로지 재활용 목재로만 만들었다. 숲과 연못과 건물이 조화를 이룬 이곳에서 환경과 생태 연구, 학생과 주민에 대한 교육이 이뤄진다. 이곳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환경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생태적 삶의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외에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 위에 투명한 원형구조물과 투명천장으로 자연채광이 이뤄지도록 하고, 폭포까지도 볼 수 있도록 설계한 아라메(Arame) 오페라 하우스도 인상적이었다. 곳곳의 낡은 시멘트 건물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탕구아(Tangua) 공원은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보여주는 교육장이었다. 하나같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의 추구하는 곳이었다.

시청사 직원은 대규모 공원 28개를 포함해 꾸리찌바 도시 면적의 70%가 녹지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 1인당 1㎡에 불과하던 녹지면적이 지금은 52㎡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녹지 확보를 위해 시는 150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건축주가 녹지를 조성하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시 외곽의 넓은 공원은 홍수 때 물을 가두어 재난에도 대비한다고 했다.

꾸리찌바 외곽에 자리잡은 환경대학 건물. 환경교육을 특화한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열대우림 한 가운데의 채석장을 개조해 캠퍼스로 만들었으며, 건물도 재활용 목재로만 만들었다.

▶녹색의 확장과 주민참여, ’생태도시’로의 변화=시와 외곽을 돌아본 다음, 환경정책을 담당하는 시 환경부를 방문했다. 건물부터 신선했다. 시 외곽의 공원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목조 건물로, 관공서 건물 같지 않았다. 환경 전문가이기도 한 카를로스 알베르토 꾸일렌 환경부장은 “콘크리트와 철골로 대체되면서 버려진 기존의 목재 전봇대로 건물 뼈대를 만들었고, 계단과 바닥, 천장도 재활용 목재로만 만들았다”며 “이산화탄소(CO2)를 추가로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건물”이라고 강조했다.

꾸일렌 부장은 “시민들이 자신의 주택이나 생활에도 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친환경 건물을 만들었다”며 “정부가 먼저 실천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존의 환경도시에서 한걸음 나아가 정부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바이오 시티(Bio-City)’로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과 생태를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꾸일렌 부장은 “생태도시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 참여”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요인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호응하고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정치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면서 “재활용 쓰레기와 과일을 교환하는 프로그램은 1980년대 말에 도입됐지만, 어떤 정부도 이를 되돌리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오 시티 프로그램은 생태적 다양성을 고양함으롰 궁극적으로 ‘사람의 도시(city of people)’, ‘삶의 질이 높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다른 도시에 비해 한참 늦은 19세기 중반 유럽 이주자들이 몰려들면서 꾸리찌바가 본격 형성된 점, 지금도 백인 비중이 80%를 넘는 점은 친환경 개발에 큰 힘이 됐다. 그렇지만 자미머 레르너라는 선각자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도시 디자이너였던 레르너 전 시장은 꾸리찌바의 도시화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 새로운 도시설계를 제안했다. 그의 제안이 관심을 끌면서 채택된 후인 1971년 시장에 당선돼 3차례 연임하고, 이후 파라냐 주지사를 두 차례 연임하면서 도시를 탈바꿈시켰다.

40년 전 먹고 살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경제성장과 개발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제어하면서 친환경 개발을 밀고 나갔다. 결국 그것이 꾸리찌바를 브라질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 1인당 소득이 상위권에 속하는 도시로 만들었다. 미래를 내다본 개발이 도시의 가치와 삶의 질을 높인 것이다. 꾸리찌바 여정은 리우와 상파울루에서의 실망을 만회해주며 여행에 힘을 불어넣었다.

/hjlee@heraldcorp.com


<여행 메모>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해준 헤럴드경제 문화부장은 지난해 10월12일 한국을 출발, 아시아에서 유럽~남미~북미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희망찾기 세계일주’를 펼쳤습니다.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아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아들, 중학생 조카 등 5명이 시작한 이번 여행을 통해 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각자의 삶과 우리 사회의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진한 가족애도 쌓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확인한 사람이 하나씩 귀국해 마지막 여정에선 아빠 1명만 남게 되는 이들의 생생한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카페 ’하루 한걸음(cafe.daum.net/changdonghee)’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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