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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먼다큐)조태권 광주요 회장 “한식을 고급화해 세계적 음식으로 만들자”
“한식은 대중 서민음식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어 세계화에 걸림돌
궁중ㆍ양반음식 복원 전통도자기ㆍ술ㆍ식자재 산업 함께 발전시켜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궁중과 양반가의 고급 식문화 맥이 끊겼습니다. 허기 채우기에 급급한 상태에서 국밥, 만둣국, 찌개 같은 서민 식문화가 크게 번졌죠. 그게 표준이 돼 한식은 서민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생겼습니다. 이제 국격도 높아진 만큼 고급 식문화를 부활시켜 세계로 갖고 나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고급 음식문화를 일으켜 세계에 퍼뜨리려는 이가 있다. 조태권(64) 광주요그룹 회장이다.

조 회장은 그동안 국내외 유명인사들을 초청해 한식을 대접하는 ‘화요만찬’을 15년째 열고 있다. 화요만찬을 통해 개발한 한식 메뉴만 100여가지에 이른다. 또 지난 2007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와인농장 나파밸리에서 세계적 미식가들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면서 한식 이슈화를 시도했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밑밥 뿌리기 차원이다. 그가 그동안 한식과 관련해 쓴 돈은 600억원 가량. ‘무모한 짓’을 한다는 소리도 여러번 들었다.

조 회장은 “누군가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혁신이나 창조는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엉뚱한 짓’을 하게 됐다”고 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그의 이런 꿈은 연원이 있다. 조 회장은 1982년까지 9년간 옛 대우그룹에서 김우중 회장과 함께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경영을 실천한 경험이 있다. 그 뒤 중동국가를 대상으로 무기사업을 했으며, 1988년 가업인 광주요를 물려받았다. 광주요그룹은 전통자기 전문업체로 고급 증류주업체 화요, 고급 한식 레스토랑 비채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조 회장은 도자기에서 출발해 한식 관련 사업을 24년간 일궈낸 것이다.

전통 도자기, 술, 한식 그리고 한국문화. 언뜻봐도 4자간 연결고리는 금방 떠오른다. 그래서 그는 그릇을 만들고 그 안에 음식을 담아 선보이는 식당을 내고, 그와 함께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 한식을 먹는 예법과 문화까지 담아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채척하려는 새로운 시장은 ‘퀴진 로드(Cuisine Road)’ 쯤 될까.

한식에 비하면 메뉴나 조리법이 단순하기 그지 없는 일식도 최근 30년 사이 세계적인 고급 음식으로 퍼졌듯 말이다. 일식이 고급으로 인식되면서 덩달아 일본 문화도 고급 수준으로 세계인에 각인된 상황이다. 


게다가 청주(사케)에다 막걸리, 김치까지 일식으로 포함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한식메뉴로 유명한 뉴욕 식당 ‘모모후쿠’는 일본인이 운영하고 있다. 결국 우리 식문화가 일본의 아류라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는 게 조 회장의 한탄이다.

한식이 발전하면 관련 산업도 커진다는 게 조 회장의 지론이다. 한식 인구 10억명만 만들어도 우선 좋은 식자재를 공급하는 농어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식당을 건립하기 위해 건축ㆍ인테리어자재, 공예품, 예술 등 관련 산업도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다.

일본이 전세계 주요 도시에 고가의 일식당 보급하고, 슈퍼마켓에는 일식 도시락과 포장초밥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경우만 봐도 식문화 수출을 통한 산업적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 무형유산 자문위원이기도 한 조 회장의 달변을 2시간 넘게 들어봤다.

-어떻게 도자기와 음식, 술을 결합한 사업을 구상하게 됐나.

▶도자기사업을 하면서 내가 만든 그릇과 어울리는 고급 음식과 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멋지고 좋은 그릇엔 그에 상응한 가치를 지닌 음식과 술이 당연하다고 봤다. 저렴한 그릇에 품격 있는 음식을 올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식 레스토랑 사업과 화요(火堯)라는 고급 소주를 만들게 됐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는 음식, 술, 도자기를 연결해서 보지 못하고 부분품만 열심히 만들어온 것이다. 나는 도자기를 시작하면서 바로 느꼈다.

-세계인에게 한식은 어떤 이미지 인가.

▶우리나라 궁중음식과 양반가 고급 음식문화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가난한 시절을 거치면서 단절됐다. 대신 그 자리에는 빨리 값싸게 먹을 수 있는 비빕밥, 국밥, 만둣국 등 서민 음식이 자리잡았다. 종가집 며느리들이 이어오는 전통 식단도 일반 대중과 유리돼 있는 상태다. 그 결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음식문화는 사라지고 ‘싸고 푸짐하게’라는 경쟁만 하게 됐다. 그 여파가 한식은 서민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형성했다. 여기에 서양의 대중식이 보급되면서 무절제한 포식문화가 주류가 돼버렸다. 게다가 한식을 담는 그릇도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이다. 고급 식당에 이런 그릇이 가당키나 한가. 그러니 한식은 고작해야 1만, 2만원을 넘지 못한다. 대중식도 7000원짜리밖에 안되는 것이다. 서양식과 일식은 10만원 20만원씩 하는데 한식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한식 고급화가 내수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하시던데.

▶세계적인 음식 없이는 세계적인 도자기나 세계적인 술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식문화가 어떤 수준이냐에 따라 식자재를 비롯해 건축, 인테리어, 주방용품, 공예, 예술, 의복 등 관련 산업이 차등 발전하게 된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산업 전반을 이끌어가는 모태다. 내수경제를 살리는 길이 여기에 있다. 대표적으로 고급 음식은 고급 식자재를 사용해서 만들어지므로 농어촌이 살아난다. 음식은 아름답게 차려내야 한다. 인간은 누구든 아름다운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이런 ‘서비스보상’은 인간에게 예외가 없다. 인간의 욕망은 더 차별화된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7000원짜리 음식은 1000원이 넘는 그릇을 쓰지 못한다. 식자재도 불량한 것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가가치도 3000원 이상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게 저급해진다. 가격경쟁에서는 혁신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음식문화가 그나라 브랜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모든 예의범절은 음(飮)과 식(食)에서 시작됐다. 프랑스도 15세기 이전에는 한상(뷔페)에 가득 차려놓고 먹었다. 이후 궁중에서 고급문화가 시작돼 시민사회로 번지면서 음식이 차등화되고 예법이 규범화됐다. 음식도 가치가 있어야 하고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상징을 만드는 작업이다. 관광객이 그나라에 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게 식당, 특히 대중식당이다. 값싼 대중식당에서 한국문화는 여전히 저급하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 의식주의 정체성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문화적 정체성도 10∼20년만에 압축성장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산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줄 수 있다. 일본의 경우를 봐라.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일본문화가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를 통해 일본의 초밥, 스시, 녹차, 그릇, 의복(기모노), 정원 등이 세계화됐다. 그 이전 서양인들은 스시를 ‘비린내 나는 날생선’이라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뉴욕에선 스시를 먹을 줄 알아야 교양있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일본이 우리것을 넘본다는데.

▶일본은 자국 음식문화 세계화에 이어 한국 것도 넘보고 있다. 일본에는 재일교포라는 한국 음식문화를 이어가는 집단이 있다. 이미 30여년 전부터 교포들이 세계 수준으로 높여놨다. 이를 세계화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의 유명한 식당 ‘모모후쿠’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다. 자칫 우리의 식문화가 일본의 아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막걸리나 김치도 일본의 전통으로 둔갑될 수 있는 셈이다. 일본은 전세계 도시에 고급 일식당을 보급했다. 이어 일식 패스트푸드인 도시락과 포장초밥도 전세계 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통음식과 문화를 그대로 갖고 나가 소비하게 해야 한다. 그 다음 그나라 실정에 적합한 메뉴가 나오게 하면 된다.

-전통의 재해석이란 뭔가

▶우리나라가 5000년이란 긴 역사를 갖고 있지만 현재성이 없다. 연결된 것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찬란한 과거 유산만 자랑하고 있다. 거북선이 어쨌다고. 거북선을 만들던 경험이라면 지금까지 이어져 세계 최고의 철갑선 기술이 나와야 하는데 중간에 끊어졌다. 옛 자산을 현재에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 형성도 안 돼 있고 장인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혀 진화하지 못한 채 사장버렸다. 지금 물려받아 생활에 이용하고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옛것에 더 집착하고 미화하려는 보상심리에 빠져 있다. 전통적 상류층 문화가 사라졌으니 서양식 고급문화만 소비하고 있다. 일본과 우리가 다른 점이 이것이다. 지도층이 사대주의에 빠지지 않고 우리 전통을 귀하게 여기고 즐겨 쓰면 새로운 가치와 시장이 만들어진다. 전통은 그래야 보존되고 계승되는 것이다.

-광주요, 화요 모두 고급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고급화 전략을 고집하는 이유는.

▶상징적 가치가 있는 물건이 나와야 세계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각인시킬 수 있다. 그러한 상징적인 제품이 있어야 우리가 만드는 다른 술도, 도자기도 함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상류층을 위해 고급화한 스타 제품이 그러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포츠분야에서 김연아 선수 같은 스타가 나오면 국내 피겨스케이팅의 인기는 물론 한국 피겨스케이팅 수준 자체가 세계적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몇 년 전 레스토랑사업이 잘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수 년 전에 ‘가온’이라는 고급 한식당을 운영하다 2008년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결코 패배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홍게탕이라는 메뉴에 30만원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가격을 책정해 주위에서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할 때 고급 한식당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가장 먼저 실천한 좋은 선례였다고 본다. 이후 고급화된 한식당이 많이 생겨났다. 그 시도로 한식의 고급화가 실현되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 조금 앞선 시도였지만 나의 기여도 또한 높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최근 서울 한남동에 한식 레스토랑 ‘비채나’를 다시 열었던데.

▶이번에는 한 발 뒤로 빠지고 일본, 미국에서 음식과 경영을 공부한 딸(조희경)에게 ‘네가 한번 해보라’고 맡겼다. 젊고 신선한 감각을 갖고 있는 딸이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비채나란 비움ㆍ채움ㆍ나눔이라는 뜻으로, 딸이 직접 지었다. 내부 인테리어 또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느낌에서,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에도 어울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특히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모여 ‘한국의 의식주’라는 콘셉트 아래 한국 전통의 미를 모던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점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왜 한식 세계화인가.

▶산업적인 발전에 비해 음식문화 발전은 뒤따르지 않았다. 지금은 글로벌 문화전쟁 시대다. 문화전쟁에서 무기는 문화, 그중에서도 음식문화가 가장 중요하다. 음식의 발달이 식기와 공예, 의복과 주거의 발달을 동반하고 궁극적으로 예술과 문화 전반의 발달을 견인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문화는 종합문화이며, 그 나라 문화의 총아라고 부를 수 있다. 한식의 고급화는 ‘상징적 음식, 상징적인 식당’을 운영하자는 것으로 한식이 세계적으로 이렇다고 인식될 만한 상징성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비싼 한식이 팔리면 다음 단계의 중가대 한식이 나오고 가격도 다양해진다. 고급 음식을 통해 고급 한국문화를 먼저 전파하면 국가 브랜드도 함께 올라가게 된다. 결국 우리 음식이 인정받아야 우리 술, 우리 도자기, 우리 문화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글=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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