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청담동 앨리스’ 열어 보니 ‘하드 보일드’…‘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가슴 아픈 거짓말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어차피 결론이 정해진 드라마다. 이야기 전개과정이 어떻게 흘러가던 간에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반복돼 온 ‘신데렐라 이야기’의 또 다른 변주 중 하나란 사실은 변함없다. 결국 ‘신데렐라’ 한세경(문근영 분)은 ‘백마 탄 왕자’ 차승조(박시후 분)와 이어질 것이다. 시청자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이야기’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약자의 모습을 그려내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쉽다. 상투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가치는 상투성을 얼마나 상투적이지 않게 그려내느냐로 판가름 난다. 정해진 결론을 향한 끊임없는 변주가 바로 ‘신데렐라 이야기’의 생명력이다. 이번 신데렐라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대신 직접 찾아서 팔자를 고치려는 ‘노력형 신데렐라’로 변주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문근영의 2년만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청담동 앨리스’가 베일을 벗고 2회분까지 공개됐다. ‘노력형 캔디’의 ‘청담동 며느리’ 입성기를 유쾌하게만 그릴 줄 알았던 드라마가 극 초반에 던진 화두는 노골적이고도 무거워서 서글프다. 드라마는 2회 만에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조로 살아온 젊은 여성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각성하는 과정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세경은 불어 자격증을 비롯해 화려한 공모전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유학파에 밀려 취직이 쉽지 않다. 겨우 ‘백조’ 생활을 정리한 기쁨도 잠시, 세경이 얻은 일자리는 불안정한 1년짜리 계약직이다. 입사 성적이 꼴찌인 세경에게 주어지는 일은 잡무뿐이다. 그나마 세경의 입사조차도 고교 시절 앙숙이자 세경의 회사 안주인인 서윤주(소이현 분)의 유희에 따른 결과에 불과했다. 남자 친구 인찬(남궁민 분)은 어머니의 수술비와 대출금 상환에 치이다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해 세경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믿었던 아버지(정인기 분)의 “노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노력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세상 사람들 모두 그렇게 산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으니까”란 체념 섞인 고백에 세경의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조도 결국 무너지고 만다. 이 같이 의미심장한 대사와 장면의 반복은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드라마 ‘동안미녀’보다 ‘청담동 앨리스’를 무겁게 만드는 요소다. 


드라마는 세상에 발을 내딛자마자 절망부터 배워야 하는 88만원 세대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보여줬다. 먹고 살기도 사랑하기도 원하는 일을 하기도 쉽지 않은 세경의 팍팍한 현실은 윤주의 화려한 삶과 끊임없이 대조되며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연기자들의 눈물 연기가 여느 드라마보다 가슴에 박히는 이유다.

드라마가 끝난 뒤 SBS에선 곧바로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 3부 ‘돈과 꽃’ 편이 방송됐다. 돈 많은 남성을 만나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바느질 시험까지 치르는 중국 여성의 필사적인 모습은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 같은 현실을 보여줬다. 기가 막힌 편성이 씁쓸함을 더한 밤이었다.

123@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