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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검찰, 기업엔 영원한 甲인줄 알았는데…
‘무뎌진 칼끝’에 기업들 느긋
리스크 대비 서초동안테나 가동
사안따라 할말은 하는 관계로



검찰과 기업의 질긴 악연사(史)는 한국적 상황에선 필연에 가깝다. 압축 성장을 위해 기업은 대관(對官) 로비ㆍ비자금 축적 등을 당연시하던 시절을 지내왔고, 사정 기능이 존재 이유인 검찰의 칼끝은 이런 습관을 수십년간 유지해온 기업의 폐부를 언제든 찌를 자료를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검찰과 기업 간 이런 식으로 설정된 관계는 ‘갑(甲)ㆍ을(乙)’ 콘셉트로 정리된다. 기업 총수가 각종 비리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하는 기업은 한 줄의 수사 정보라도 얻기 위해 검찰 동향 파악에 진력한다. 정보와 총수의 생살여탈권을 양손에 쥔 검사가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원할 것만 같던 이 ‘갑을 관계’는 그러나 최근 몇년 새 균열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을이 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것. 사회정의 구현의 최전방에 있어야 할 검찰로선 자존심 구겨지는 일이다.

하지만 기업은 생존을 위해 법률적 사안에 관한 한 전력을 풀가동하는 반면, 검찰은 능력을 갖춘 수사자원의 한계 등으로 칼끝이 무뎌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만큼 ‘갑을 관계’의 지각변동은 예견된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기업, 총수 리스크 대비 서초동 안테나 상시 가동=검찰이 갑의 위치에 있다는 점은 검찰에 소환되는 총수를 둔 기업 관계자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파악된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문제작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 기업이 정기적으로 ‘떡값’을 검사에게 주며 ‘관리’를 했다고 주장한 것의 진위는 접어두고서라도 ‘총수 리스크’로 곤욕을 치르는 기업인들은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이 있는 서초동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내로라하는 기업의 한 부장은 “서초동 사람들(법조인)과 10년 넘게 얼굴을 익히고 친분을 쌓은 우리 그룹 모 인사는 ‘법조통’으로 통한다”며 “비상 상황에선 법무팀 외에 그의 정보력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 ‘총수 리스크’를 경험해보지 않은 기업들은 ‘서초동 사안’이 발생하면 갑인 검찰의 동향 파악을 위해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았던 중견기업의 한 관계자는 “작은 정보라도 얻으려고 법조 출입기자들을 만나고 다닌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뛰는 기업, 기는 검찰=검찰이라면 납작 엎드렸던 기업의 태도는 몇년 전부터 바뀌고 있다. 2010년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이 기점이 됐다고 봐도 무리 없다. 검찰 내 대표적인 ‘강골’ ‘칼잡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은 그의 스타일대로 좌고우면 없이 한화그룹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기업 비자금은 꽁꽁 숨겨놓는 특성 탓에 수사는 검찰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재계와 언론은 남 전 지검장의 수사 스타일에 비판을 가했다. 당시 검찰이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를 강조했지만, 남 전 지검장은 ‘먼지털이식 수사’를 한다고 압박한 것. 결국 남 전 지검장은 옷을 벗었고, 검찰은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기업으로선 검찰에 제대로 ‘카운터 펀치’를 날린 셈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건의 당사자 기업은 느긋했었다”며 “대형 로펌 소속의 내로라하는 전관을 변호인으로 기용한 만큼, 검찰과 정면승부를 해도 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검찰 수뇌부와 특정 그룹과의 인연이 세간에 회자되면서 검찰 수사의 객관성과 진위에 의문을 표시하는 여론이 생겼다는 점. 검찰과 기업이 ‘갑을 관계’ 균열의 단계를 넘어 ‘공생 관계’로까지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한 중견 검사는 “검사의 대다수는 국민만을 바라보고 업무를 하는데 돌발적으로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져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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