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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이해준의 ‘희망가족’> 바람 · 태양 · 물이 에너지원…환경위기, 몸으로 부딪힌 괴짜들…
<28> 대안에너지 개발공동체…영국 매킨레스 CAT
40년전 화석에너지 한계 예지
태양등 지속가능 에너지 이용
대안에너지 개발·생태적 삶 영위

끊임없는 변화·세상과 열린 교류
유럽의 선도적 생태교육장으로 성장
비판보다 앞선 실천에 절로 감탄




[매킨레스(영국)=이해준 문화부장] 북유럽을 끝으로 둘째 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게 되자 끝 모를 허전함과 외로움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200일 동안 아시아와 유럽 곳곳을 티격태격하면서 함께 누볐던 가족이었다. 그만큼 정이 많이 들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가장으로서 혼자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잘한 선택인가 의문도 몰려왔다. 하지만 ‘가장인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꿋꿋하게 하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둘째의 귀국을 배웅한 다음, 허허로운 마음으로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저가 항공에 몸을 실었다. 런던에 도착해선 며칠간 숙소에 틀어박혀 여행기 정리에만 매달렸다. 허전한 마음도 달래고, 이후 일정에 대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3~4일을 그렇게 보내니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풀어놓았던 행장을 꾸리고, 신발끈을 조일 때가 된 것이다.

▶채석장에서 피어오른 희망의 싹=영국에 온 건 중부 웨일스의 CAT(대안기술센터) 때문이었다. 이곳은 관광지라고 하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미래의 희망’을 찾고자 세계를 떠돌고 있는 필자에겐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이 막 시작되던 1973년, 태양과 바람 등 지속가능한 대안에너지를 개발해 실생활에 접목하기 위해 만든 생태공동체였다.

 
풍력 발전 원리와 관련 설비를 전시한 CAT 모습. 오른쪽에 서 있는 바람개비가 이곳의 상징으로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며 왼쪽에 오늘날 사용되는 블레이드가 보인다.


CAT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런던에서 버밍엄까지 버스로 3시간, 버밍엄에서 웨일스의 매킨레스까지 기차로 2시간 이상 걸리고,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지역(로컬)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영국 서부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매킨레스 인근엔 숙소가 많지 않고, 그나마 가격도 비싸 버밍엄의 저렴한 호스텔에 묵으면서 CAT를 다녀와야 했다.

아침 일찍 버밍엄을 출발해 10시반께 매킨레스에 도착했다. 아주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오랜 역사와 공동체가 살아 있는 영국의 전형적인 전원마을로, 시계탑을 중심으로 타운이 형성돼 있었다. 먼저 타운 중앙의 쿼리숍(Quarry Shop)에 들렀다. CAT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작은 상점으로, 유기농산물과 로컬푸드, 공정무역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포장은 세련되지 않았으나 미래를 생각하는 의미와 정성이 담긴 제품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여기서 버스노선과 시간 등을 안내받고 CAT로 향했다.

CAT가 자리잡은 곳은 과거 채석장이었다가 버려진 산기슭이었다. 설립자인 제라드 모건-그렌빌은 “자연이 위기에 빠졌음을 알리고, 미래지향적 기술을 통한 진전을 보여주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었다. 출발은 미약했다. 모금도 신통치 않았다. 지원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장기간 촛불을 켜놓고 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특히 1974년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인 필립 에든버러 공이 방문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 방문자센터를 만들고, 1975년 일반에 공개됐다.

CAT는 곧 유럽의 선도적인 생태교육센터로 자리잡았다. 1980~90년대엔 90여명이 거주하면서 활동했고, 여름에는 150여명으로 늘어났다. 매년 6만명 이상이 방문, 생태와 대안에너지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100개가 넘는 유럽의 생태공동체 대부분이 외부와 단절된 채 평온한 삶을 추구했던 것과 달리, 이곳은 끊임없는 변화와 세상과의 교류를 도모했다.


▶대안에너지 기술의 전시 및 교육장=CAT 입구에 들어서자 절벽에 놓인 철도(Cliff Railway)가 눈에 띄었다. 유럽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푸니쿨라레의 일종이었는데,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주 신선했다. 위쪽 열차의 탱크에 물을 가득 담아 그 무게로 열차가 아래로 내려가면 여기에 매달려 있는 아래쪽 열차가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투입 에너지 제로(0)의 운송장치였다.

CAT에 들어서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바람과 태양과 물, 바이오(Bio)를 이용한 대체에너지 생성 과정은 물론 에너지 사용 자체를 최소화하는 기술을 다양하게 개발해 적용하고 있었다. 지금 바로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생성되고 있는지 실물과 모형을 통해 쉽게 설명하고 있었고, 방문자가 직접 조작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의 상징으로 초창기에 만든 바람개비 풍력발전 장치가 낭만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최신 풍력발전용 블레이드가 그동안의 기술진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환경재앙을 경고하는, 겁주는 방식이 아니라 대안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세련되진 않지만 이보다 훌륭하고 흥미진진한 환경교육장은 없는 것 같았다.

40년 전 이런 것을 구상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외부로의 에너지 배출을 최소화한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의 경우 CAT에서는 1976년부터 실험해오고 있었다. 한국에선 최근에야 주목받고 있는 친환경 기술이 아닌가. 45㎝의 목재 단열장치와 4중 유리 등 초강력 단열 방식의 실험을 하고 있는데, 빌딩 건축비는 10% 늘어나지만 에너지는 20%만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보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이곳의 원칙에 충실한 실험이었다.

CAT의 성과를 잘 보여주는 곳은 웨일스지속가능교육연구소(WISE) 빌딩이었다. 환경친화적 건축을 연구하는 시범건물로, 강당과 기숙사ㆍ연구실 등을 갖추고 있는데, 섬유단열재와 흙 등 환경영향을 최소화한 저강도 소재와 태양열 등 대체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주로 대학원 및 단기코스 과정의 교육 및 실험 건물로 사용하며, 콘퍼런스도 열리는 공간이다. 2010년 완공 후 영국 언론 텔레그라프와 가디언이 선정한 10대 빌딩의 1위와 4위를 차지했고, 2011년에는 영국왕립건축연구소(RIBA) 상을 받기도 했다.

▶현실 비판보다 필요한 소박한 실천=CAT는 처음에는 대안기술과 생태적 삶을 위해 만들었지만, 지금은 에너지와 유기농, 가드닝, 생태적 삶 등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 성장했다. 대안기술 전시장 뒤편엔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가는 거주자의 주택도 마련돼 있었다. 이곳이 협동조합(cooperative)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흥미로웠다. 공동체 구성원이 공동의 주인으로 참여하며, 컨센서스를 통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운영하고, 생물다양성을 존중하며, 친환경적 방식의 자급자족을 지향한다. 주요 수입원은 장단기 방문 프로그램 등 교육과 출판, 외부로부터의 모금 등이다.

물론 그늘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잘 운영되다 최근 무리한 확장과 재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CAT의 배리 베이트 교육담당 매니저는 “2012년 초 구조조정으로 지금은 80명 정도가 일하고 있고, 거주하는 사람은 8명”이라고 했다.

그는 “재정상의 문제로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일시 중단한 상태이며, 일부 건축물도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CAT는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반은 대전환의 시대였다. 거센 반전운동 속에 산업화의 후유증이 집중적으로 표출됐고,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오일쇼크는 화석에너지의 한계가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이때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과 히피문화가 확산됐지만 CAT는 달랐다. 이들은 구체적인 대안을 찾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신기술이 대기업의 소유가 되고 사람들은 이의 소비자로 전락한 현실을 넘어 개인과 소규모 공동체가 적용할 수 있는 ‘적정한’ 기술, 인류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CAT는 “우리는 처음에 ‘괴짜(crazy)’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일반적인 것(common)’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미래를 내다본 이들의 혜안과 고집스러운 실천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CAT를 떠나면서 뿌듯함이 몰려왔다. 참 ‘좋은’ 방문이었다. 가족이 떠난 이후 텅 비었던 마음이 어느새 새로운 여행의 기쁨과 지적 호기심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제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면서 희망의 언어로 마음을 채울 일만 남았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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