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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로또 1등 3명 인터뷰 “당첨, 그 이후"
[헤럴드경제=이자영 기자]#지난 8월 로또 1등 당첨자 김모(43) 씨가 목욕탕에서 목맨 채 발견됐다. 잇단 주식 실패와 사업 부진으로 상금 18억원은 5년 동안 철근에 녹슬 듯 모두 소모됐다. 무일푼이 된 김 씨는 부인이 친척에게 빌려온 돈으로 연명하다 공중목욕탕 탈의실에서 노끈으로 목을 맸다.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작년 25일 로또 1등에 당첨된 손위 동서를 칼로 찔러 죽인 혐의로 이모(52) 씨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살해된 김모 씨는 로또 당첨금 15억원을 받은 뒤 일을 그만뒀고,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우리는 로또 당첨자의 삶을 비극으로 상상하는 데 더 익숙하다. 일확천금으로 인생 역전을 이룬 승리자가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과도 불화해 삶의 패배자가 된다는 ‘스토리’는 우리네 밥상머리 교육의 주된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 1~2회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극단적인 예가 매년 400명씩 배출되는 1등 당첨자 모두의 인생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의 삶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배트맨ㆍ슈퍼맨보다 더 자신을 꼭꼭 숨기고 살기에 당첨자의 삶을 엿보는 열쇠는 오직 그들 손에만 쥐어져 있다. 어렵게 이들 ‘평범한 행운아’ 3명을 만나 인생역전의 기승전결을 들어볼 수 있었다. 


#1. 43세ㆍ남자ㆍ회사원ㆍ미혼의 경우

“이게 로또 영수증이고, 당첨번호 프린트본, 상금이 입금된 농협 통장이에요.”

정주용(43ㆍ가명) 씨는 파일에 정리해온 증거물을 보여주며 말을 꺼냈다. “괜한 의심을 사기 싫어서 준비해 왔다”고 했다. 푸근한 인상이지만 깔끔한 옷차림과 깨끗이 정리된 파일에서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드러났다. 한때 미술학도였고, 지금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올해 1월 정 씨는 로또 1등에 당첨돼 19억원(실수령액 13억원)을 받았다. 로또 1회차부터 매주 빠지지 않고 2만원어치를 사온 지 10년 만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사기를 당해 5억원의 빚을 떠안으면서 매달 180만~200만원의 월급과 아르바이트비로 빚을 갚으며 살고 있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미술은 물론 결혼도 포기했다. 오직 ‘빨리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당첨금을 받자마자 이틀 만에 남은 빚 3억원을 갚았다. “채권자에게 ‘왜 완납증 빨리 안 끊어주는 거냐’며 큰 소리도 쳐봤어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정 씨는 로또에 당첨되기 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렸던 채무청산ㆍ주택구매ㆍ노후연금ㆍ창업준비ㆍ기부활동 다섯 가지를 모두 실현에 옮겼다.

“부동산 경기가 어려워서 주택 구매는 좀 망설였지만, 부모님 몸이 안좋으셔서 경기도에 2억원대 집을 샀어요. 차를 한 대 뽑은 것 외에 계획에 없던 소비를 한 적은 없어요. 그것도 원래 타던 국산 중고차가 고장나 같은 기종으로 구입했어요.”

월 생활비는 40만원에서 60만원으로 늘었다. “옷을 좀 사고, 제가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하루에 한 잔이 늘어서 그렇네요.”

정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에 작은 카페를 열고 취미로 미술을 하며 사는 것이 그의 꿈이다. 가능하다면 결혼도 하고 싶다. 


#2. 24세ㆍ남자ㆍ대학생ㆍ미혼의 경우

송현종(24ㆍ가명) 씨가 로또에 당첨된 한 주는 말 그대로 극적이었다.

“그 다음주 월요일 대학 자퇴서를 내려고 했는데 덜컥 당첨이 된 거예요.”

그는 앳된 얼굴을 반짝이며 자신도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송 씨는 대학을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하려 했다.

“생산직은 대졸보다 고졸을 선호하거든요.” 울산이 고향인 그는 H자동차의 하청업체에서 스무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로또도 같이 일하던 형이 사기에 따라서 사기 시작한 거예요.”

그는 지난 7월 1등에 당첨돼 총 16억원을 받았다. 제일 먼저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주방 보조로 일하며 살림을 꾸려왔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3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남은 돈은 NH농협 PB의 추천으로 회전식 정기예금에 묶어뒀다. 한 달 이자로 나오는 270만원 중 절반은 생활비로 쓰고, 절반은 적금을 붓는다.

아직 나이가 어린 송 씨는 당장 이 돈을 쓸 계획이 없다. 그는 대학을 다니면서 취업원서를 넣고 있다. 올해 지원한 회사의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며 속상해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이 시대의 20대다.

그는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건 사실”이라고 했다. 


#3. 58세ㆍ남자ㆍ일용직ㆍ기혼의 경우

김수오(가명ㆍ58) 씨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가난의 덫에 걸린 기분이다. 재활치료만 수년째 받았지만 아직 한 쪽 다리가 부자유스럽다. 남부럽지 않았던 직장에선 잘렸고, 일용직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살고 있었다.

지난 10월 로또 1등에 당첨돼 26억원을 수령한 그는 연방 싱글벙글이었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아 들뜬 기분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장인장모를 10년째 모시고 있는데 어르신예게 잘해서 복받은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당첨 2~3일 전 꿈에 나타나 “가족과는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었던 게 예지몽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실수령한 18억1000만원 중 빚 2000만원을 갚고 통장을 두 개로 쪼개 각각 10억원과 8억원을 넣어두었다. 당장 무엇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부인과 상의하고 있다고 했다.

로또로 13억원을 갖게 된 정주용 씨의 생활은 13억원의 자산을 가진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로또로 인생이 망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나와 비슷할 것 같다. 어떻게든 지키고 싶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우연히 부유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곤궁한 집에 태어나듯이 로또의 행운도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복권 당첨자는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이지만, 앞으로의 삶을 꾸려가는 건 개인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평범’했다.

성취된 꿈에 도취돼 있을 것이 아니라 ‘꿈의 실현’을 ‘지금의 일상’으로 재빨리 변화시키는 태도가 필요해 보였다.

nointe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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